"요즘 애들이 그렇더라니까." 새로 들어온 후배 사원의 흉을 보는 친구 이야기를 듣다 흠칫 놀란다. "야, 우리도 아직 요즘 애들이야~" 손을 내저어 보지만 알고 있다. '요즘 애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우리는 이미 그 바깥의 영역에 속함을 뜻했다. 근래 들어 이렇게 종종 스스로의 나이 듦을 자각하곤 한다.
이를테면 알콩달콩한 대학생 커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좋~을 때다.” 결혼 전 소위 ‘어른들’에게 익히 들었던 말을 똑같이 되뇌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순간 당황한다. 사실 돌이켜 보면 어느 한순간도 마냥 좋았던 때는 없었다. 모든 지나간 것들이 그러하듯 때때로 애잔하고 그리운 마음이 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삶이 더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매 시기 할당된 나름의 고민과 고충이 있었고, “내가 네 나이였으면~” 류의 조언은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런데 글쎄 내 입에서 나온다는 말이 그렇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어른은 내게 ‘좋~을 때다’를 외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뿐인가. “요즘 노래는 가사에 감동이 없어.” 어떤 노래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답을 하며 으레 덧붙이던 말이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조합으로 누더기가 된 가사를 들으면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누군가 노래에 대해 물어오면 나는 짐짓 아쉬운 표정으로 현 세태를 개탄하곤 했다. 돌아보니 낯 뜨거운 일이다. 어쩌면 이게 우리 엄마나 아빠가 내가 좋아한다는 노래들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노래가 이러니?” 류의 질문에 나는 ‘엄마 아빠가 뭘 몰라서 그런다’며 응수했던 것 같다.
이럴 때, 나는 내가 점점 ‘기성세대’가 되어감을 느낀다. 기성세대의 사전적 의미는 ‘나이 든 세대’이다. 내가 나보다 나이 든 이들로부터 익히 들어왔던 말들을 나보다 나이가 어린 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있을 때, 그것은 내가 이미 ‘나이 든 세대’가 되었다는 방증에 다름 아니다.
개인의 특성을 태어난 연도로 무 자르듯 나누는 세대별 구분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전체 기류를 파악하는 데에는 퍽 유용하다. 그에 따르면 흔히 일컫는 '요즘 애들'은 개인주의와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Z세대(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출생)이다. 나서부터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 전화받는 시늉을 엄지와 약지가 아니라 손바닥으로 한다는, 저장 아이콘이 왜 플로피디스크 모양인지, 아니 당초 그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모른다는 설을 달고 다니는, 가깝지만 먼 세대. 그래서일까. 이들을 주제로 한 서적과 리포트가 쏟아지는 요즘이다.
그중 하나를 골라 집어본다. 그저 그런 윗세대가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이 듦이 어쩔 수 없듯 ‘나이 든 세대’가 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작은 소망이 있다면 싫은 소리만큼은 대물림하지 않고, 새로운 흐름에만큼은 개방적인 어른이고 싶다. 최소한 내가 싫어했던 어른의 모습은 닮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