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미숙 Apr 03. 2023

3. 오늘의 일기

<동네책방 그래더북 쓰기 챌린지>

어려운 주제를 던지면 회원분들이 부담을 느껴 아무것도 쓰지 않을까 봐 주말은 일기 쓰듯 했던 일 위주로 써 내려가보자 했다. 


쓰고들 계시려나..



나의 아침 강아지 산책으로 시작한다. 요일이나, 시간대에 따라 코스가 달라지는데 예민한 이 녀석이 다른 강아지와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게 목표다. 계획했던 코스에 강아지들이 많으면 코스가 급변경되기도 한다. 개과천선 시켜서 말 잘 듣고 짖지 않는 개로 만들어보려 무던히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타고난 기질도 있는 것 같다. 무려 늑대 DNA와 가장 가까운 시바견이니 그래, 내가 이해하자.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사방을 살피는 녀석의 신경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조용한 길을 찾아다닌다.

(언젠가 동네 친구 눈에 띄어 사진 찍히다)



토요일이라 조금 여유롭게 집을 나섰다. 평소에는 기미가 염려되어 선크림도 꼼꼼하게 챙겨 바르지만, 주말이니 게으름 피우며 모자만 눌러썼다. 산책 갈 때 입는 옷을 입으니 녀석, 빙글빙글 돈다. 무사히 아파트를 빠져나오나 싶었는데 두어 번 컹컹 짖었다. 아파트 안에서 짖으면 몹시 불안하다. 몸무게는 10킬로도 안되지만 목소리는 우렁차기 때문이다.



언젠가 뒤따라와 오줌 치워라, 입마개는 왜 안 했느냐 하는 아주머니를 만난 뒤로는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 뒤로 생수통을 들고 다니며 흙바닥이 아닌 곳에서 싸는 오줌은 다 치운다. 아무튼 예년보다 일찍 떨어지는 벚꽃 잎을 맞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 근처. 녀석 오늘도 버티기 시전이다. 집에 들어가기에 날이 참 좋긴 하다.


(버티기 시전)



얼르고 달래어 겨우 집에 들어와 큰 아이 라이딩에 나섰다. 아직 중학생이지만 벌써 입시 준비를 하는 것 같아 짠하다. 그리고 고맙다. 토요일도 학원에 가줘서..



주 토요일은 둘째  녀석과 녀석의 친구에게 국어를 가르친다. 어휘력이 하도 달려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고작 삼사십 분 정도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늘겠지. 책을 펼치자마자 아이들이 창밖을 쳐다본다. 아이들 눈에도 흩날리는 벚꽃 잎이 예쁜가 보다. 얘들아, 수업부터 끝내고 나가 놀으렴..

(멍~~~)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뛰쳐나가고, 앉은 김에 읽던 책을 마저 끝냈다.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탐구 중이라 '책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좋은 책이었다..)


서점도 서점이지만 출판도 힘들어 보인다. 돈 벌기 힘들어 보인다는 이야기다.



둘째가 성당 주일 학교에 가고선 또 짬이 생겼다. 오늘은 웬일로 여유로운지 감사할 따름이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마저 보려다 친구가 알려 준 비법으로 카레를 만들기로 했다. 양파를 캐러멜라이즈드 하는 건데 양파가 이리 많이 들어갈 일인가! 싶을 정도로 많이 넣는 게 포인트라고 했다. 세 개정도 채를 썰어 넣어보았다. 과연 이리 많이 들어갈 일인가 싶으면서도 6개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며칠 전 동네 친구들에게 카레에 토마토를 넣으면 맛있다는 얘기를 했더니 나만 모르고 다 알던 사실이었다. 세상에는 나만 몰랐던 사실이 꽤 많은 듯하다.



둘째 녀석은 포켓몬 가오레 게임으로 하루를 마무리짓겠단다. 이제 질릴 때도 되지 않았나? 게다가 가까운 쇼핑몰에 있던 게임기기가 없어져 멀리까지 가야 한다. 귀찮다고 나 몰라라 하면 더 귀찮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에 그러자고 했다.


(서서 기다리는 게 힘드니 의자도 챙기라고 했다)


주말 저녁이라 대기가 좀 있었다. 지난주에도 만난 아저씨와 반갑게 인사도 하더라. 당근에서 비싸게 팔리는 오성 디스크를 얻으려고 줄을 선 어른들이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여기선 흔하다. 처음 만나도 자신의 가장 강력한 디스크를 빌려 주기도 하고, 오성 디스크를 얻는 사람이 나오면 내 일처럼 탄성을 지르고 축하해 준다. 세상이 포켓몬 가오레 줄 선 아이들, 어른들만 같다면 굉장히 평화로울텐데..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하기에 근처에서 또 다른 책을 읽었다. 역시 책에 관한 책이다. 주말, 알차고 힘든 하루가 이렇게 저물었다...

작가의 이전글 2. 작년 이맘때 사진을 보며 뭐라도 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