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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숙 Oct 29. 2019

재테크 편식해도 될까?

소소한 재테크

"지금 당장 읽지 않더라도 책을 사서 꽂아두면 언젠가 손이 갈 때가 있고 그걸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나는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몇 권씩 사 오곤 했다. 당장 손이 가는 책은 그 자리에서 후딱 읽기도 하고, 영 손이 안 가는 책은 그냥 꽂아두었다가 한 달 후, 두 달 후 심지어 일 년 후에 읽기도 했다.


은행에 입행하고 나서는 너무 바쁜 나머지 책을 외면하게 되었는데, 읽으려고 꺼내 들었다가 열 페이지도 읽지 못한 채 읽은 부분을 무한 반복하기도 하고, 또 어떤 책은 책 제목만 수십 번 보다가 첫 장을 넘겨보지 못하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로 세례는 받았으나 종교적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행위를 '냉담'이라고 한다. 냉담자라고 하여 반드시 신앙이 부족하다는 것과 연관이 되지는 않는데, 말하자면 내가 책에 냉담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깐 책에 대한 신앙이 줄어든 것은 아니나 독서활동을 하지 않았다.

재테크도 마찬가지. 은행에 가서 재테크 상담을 받는 고객들은 직원이 쏟아내는 알 수 없는 경제용어와 무수한 상품 리스트에 압도당한 채 도대체 어떤 상품을 가입해야 하는지, 어떤 포트폴리오에 분산하라는 건지, 냉담하고 싶은 마음도 들겠다 싶다.


남들 다 한다는 펀드에 가입은 했는데, 영 불안한 마음에 밤잠 설치기도 고, 그렇다고 예금에 가입하자니 요즘같이 한없이 금리가 낮은 시기에 손해가 아닐까 불안하다.


은행 창구 나오는 것도 귀찮아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으로 거래하며 은행 창구를 냉담하 갑자기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싶어 창구 직원에게 매일같이 눈도장을 찍으며 열과 성의를 다하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펀드 하나를 가입했는데 다음 날 은행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고객님 자필서명은 하셨나요?

투자설명서는 잘 받으셨나요?"

결정적으로

"고객님,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데 알고 계신가요?"

이 마지막 질문에서 모든 통과의례를 거쳤다고 생각한 "나"는 후다닥 달려 나와 펀드 가입을 취소한다.

"아, 잘했어. 잘했어. 역시 원금보장은 돼야지."


반면 연령이자금 스케줄을 고려하여

"금리가 낮아도  예금으로  권유드립니다."

라고 했음에도

"그건 너무 낮지, 그래도 4프로는 돼야지..

좀 더 높은 거 없어?"

하는 공격투자 어르신다.


"안전하면서 금리 높은 걸로 추천해주세요."

"(네 고객님, 그런 상품이 있을리가요.)

. OOO상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추천 원칙이 있다.

최우선적으로는 고객의 자금 스케줄에 맞는 상품,

다음으로 고객 감성 맞는 상품이다.


감성이라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고객의 감성은 즉 투자성향이다. 고차장이 억지를 부려봐야 상대방은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펀드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집에 돌아가서 고차장을 내내 원망할게 분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고객의 감성에 맞는 상품을 팔면 은행이 고차장을 불편해한다.


은행에 상품을 사러 온 고객 역시 이리 생각할 터이다.

"아니, 내가 좋아하는 상품을 편식하는 건데, 편식 하면 어때?"
"나랑 맞는 상품이 ELS이면 ELS를 줄줄이 할 수도 있고, 정기예금이 맞으면 정기예금을 줄줄이 할 수도 있는 거지."

실제로 매월 소액 정기예금을 하면서 수십 개의 정기예금 계좌를 보유하는 고객도 있고, 십여 개의 ELS를 보유하는 고객도 있다. 창구에서 직원이 오퍼레이팅을 직접 해야 하는 경우라면 직원 입장에서도 만만치는 않겠지만(실제 우리 지점 창구에 그런 고객도 몇몇 있다.) 요즘은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너무나 잘 되어있지 않은가.
시황분석을 꽤 잘하는 장 OO사모님은 주가지수가 내려가면 ELS, 주가지수가 올라가면 단기예금을 반복하는 현명한 패턴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ELS만 하는 고객이 이렇게 물어본다.

"고차장, 맨날 ELS만 하니깐 지겨워, 좀 색다른 거 없어?"

"그럼요, 있죠,

지금 시황맞는 OOO 추천드립니다"며 한참을 설명한다.

"자, 이걸로 가입할까요?"
"고차장, 설명 고마워! 근데 그냥 els 할래. "

네! 재테크 편식하셔도 됩니다!

너무 냉담하지는 마시고요.

오르락내리락하는 시황에 맞추어 냉담했다 다시 돌아오셔도 됩니다!




*ELS(Equity-Linked Securities)

특정 주식이나 주가지수의 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사전에 정한 수익을 지급하기도 하고 가격 하락 시 손실이 날 수 있는 파생결합증권.

은행권에서는 삼성전자 같은 개별종목보다는 변동성이 덜한 코스피 200, 홍콩 H, S&P 500 지수 등 대표 주가지수로 상품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HSCEI, EUROSTOX50, NIKKEI 225 지수로 꾸려진 ELS의 구조가 

쿠폰 연 5%

배리어 90-90-85-85-75-60

6개월 단위 3년 만기라고 가정해 보겠다.


6개월 후 세 가지 지수가 가입 당시보다 90% 이상이면 조기 상환된다. 조기상환이라 함은 연 5%의 수익과 함께 원금을 지급하 것이다. 지수 중 하나라도 90% 미만으로 떨어졌다면 6개월 연장하여 다시 90% 이상인지를 보고 청산 여부를 결정한다.

배리어에 못 미치면 다시 6개월 연장된다. 배리어라고 하는 % 는 점점 하락하며 청산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최종만기일인 3년이 되었음에도 지수 중 하나라도  60% 못 미쳤다면 원금손실이 확정된다.

(배리어는 다양함)


세 가지 종목을 국영수 점수라 가정해 보자.

국영수 점수가 6개월마다 정해진 커트라인 이상 올랐냐 내렸냐 보고 용돈을 줄까 말까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수 있다.

낙인, 리자드 배리어 등의 요소로 리스크를 높이거나 낮추는 추가 요소도 있다.(더욱 자세한 건 냉담하지 말고 은행 창구에서!)


창구에서 투자상품 판매 비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ELS에 대한 선호도가 높긴 하지만 최근 일어난 DLS사태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다. 은행에서 정한 스케줄에 따라 운영되는 상품이라 중도해지를 신청하는 고객은 거의 없으나, 중도 해지 시 중도해지 수수료 등으로 추가 손실도 있을 수 있어 구조를 잘 파악해 보아야 한다.


DLS(Derivative Linked Securities)는 주가지수 대신 이자율, 유가, 금리 등 실물자산을 기초자산으로 연계한 상품이다. 최근 손실이 확정되어 이슈가 되었던 상품은 독일 국채금리와 연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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