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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Feb 25. 2019

“우분투(Ubuntu)!”

외칠 수 있는 친구


[이 아침에] ‘우분투‘를 외칠 수 있는 친구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2.25.16 21:37
    
포터랜치 개스 누출 사고로 호텔에 임시숙소를 정하신 Y 선생님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신다. 잠만 호텔에서 자고 매일 아침 집에 들러 메일도 체크하고 청소하고 화초 건사하고 호텔로 다시 돌아오는 어정쩡한 생활을 하신 지 오래이다. 호텔 숙식이라니 속으로 부러워했는데 실상은 아닌가 보다. 안정감이 없어 독서도 글쓰기도 못하신단다. 샌타클라리타의 호텔에 계신다기에 위로차 가서 아예 하룻밤을 자면서 실컷 수다를 떨었다. 이미 예상을 하고 파자마도 준비해 간 터였다.

발렌시아의 일식집에서 근사한 점심 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와인과 간단한 안주로 저녁을 대신했다. 초저녁부터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여자 셋이 모여 밤을 새웠으니 깨진 접시만 수북한 게 아니었다. LA 문단에서 함께한 20여 년을 돌아보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사건을 되짚어 보기도 했다. 각자 가진 기억의 조각을 퍼즐 끼우듯 맞춰보니 옛날 일도 방금 전의 일처럼 생생했다.

문학이라는 공통분모 안에 공유하고 있는 정보와 인물들이 무척 많아서 놀라웠다. 책을 아주 좋아하는 것, 발표에 상관없이 꾸준히 쓰는 것, 문인이 가져야 하는 도덕성이나 정의감 등에 대한 의견이 같으니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았다. 소소한 일치와 그 확인의 즐거움으로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몰랐다. 두 분 선생님은 이미 10년 넘게 독서클럽에서 만나 교제를 나누던 사이이니 잘 통하는 건 당연하지만, 밤새워 함께한 시간은 처음이어서 새로웠다.

오랜만에 남의 이야기나 가십이 아닌 진지한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알지 못했던 극히 사적인 일, 깊은 곳 숨겨둔 속내를 투명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예전 일도 술술 풀기 시작했다. 누구나 자기 몫의 감당해야 할 여건이나 고민이 있기 마련이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 위안받고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사람을 알려면 여행을 함께 해보라고 했다. 우리의 하룻밤 수다도 여행이라면 여행일 것이다. 낯선 장소에서의 허심탄회는 마음을 맑게 청소해준 듯했다. 실컷 울고 난 뒤의 개운함처럼 속이 시원했다. 못내 헤어짐이 아쉬워 LA 한인타운까지 나와 서점 나들이를 한 후, 냉면과 빙수로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아프리카 반투(Bantu)족의 아이들에게 과자가 담긴 바구니를 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시합을 시켰다. 빨리 뛰어가 먼저 잡으면 바구니 속 과자를 모두 주겠다고. 그러자 모든 아이가 손을 잡고 천천히 가서 정답게 나누어 먹더라는 것이다. "우분투(Ubuntu)!" 하면서. 그 말은 원주민 말로 '네가 있어 내가 있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누구를 안다, 누구와 친하다 섣부르게 말하기 전에 진심이 통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남들에게 과시할 쇼윈도 친구나 전시용 트로피 같은 친구가 아닌 진실한 친구 말이다. 당신은 그러한 친구를 가졌는가? '우분투'에서 진정한 친구의 모습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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