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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Mar 01. 2019

졸업 45주년에 부쳐

여고동창 113, 나의 우렁각시들



                                                                                                   62회 임정아
 
 “이 신장으로는 일 년도 못 삽니다.” 신장 내과의인 주치의의 선고였다. 내 귀를 의심했다. 자리보전하고 몸져누운 사람에게나 하는 것이 ‘시한부 선고’인 줄 알았다. 이날 이때껏 눈썹이 휘날리도록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바쁘게 일하고 다니던 사람에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식 절차를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그러더니 간호사에게 UCLA 신장센터에 바로 등록을 하란다.
 
워낙 중증의 환자를 많이 접하는 의사선생인지라, 나만 청천벽력이지 의사 선생님에겐 자동차 부품 갈아 끼우는 정도의 일인 듯 무심하게 말씀하신다. 무슨 사형선고가 심각하지도 않고 이다지도 심심하단 말인가? 내겐 생사가 달린 일인데 야속했다.
 
졸지에 나는 시한부 인생의 주인공이 되었다. 선천적인 유전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조심조심했을 터인데 약한 신장인 줄도 모르고 무분별한 식생활을 했던 것에 대한 후회, 지나치게 열심을 내었던 회사일과 사회활동에 대한 자책, 병치레로 가족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데 대한 미안함 등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신장 기증자를 형제나 자매 가운데 찾는 것이 가장 좋다는데 나의 남동생 셋은 모두 나와 같이 좋지 않은 신장을 가지고 있어서 나누어 가질 형편이 되질 못하였다. 다행히 혈액형이 같은 남편의 것을 받기로 하고 일단 큰 걱정을 덜었다 싶었는데, UCLA 신장센터 의사와 상담을 하니 50세 넘은 사람의 신장은 받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나? 낙담하여 맥없이 있는 내게 한국의 여고동창들이 일단 한국에 나와서 길을 찾자고 채근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62회 동기인 김양수는 같은 교회의 장로님(아산병원의 신장이식 권위자인 한덕종 교수님)과 약속을 잡고, 의사인 박선옥은 면담에 입회를 하고 변동주는 힘내라며 손잡아 주고 함께 병원 대기하며 육친보다 더 마음을 썼다. 여고 동기들이 환자인 나 하나를 둘러싸고 전시체제로 돌입한 듯 치열하게 돌봐줬다.
 
수술을 한 아산병원에서 퇴원하여 3주 동안 경찰병원에서의 회복기를 거쳐, 다음번 이식 수술을 기다리며 투석 병원과 가까운 곳의 오피스텔에서 지내게 되었다. 투석 병원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 편리하다. 여고 동창들이 손을 써서 동기 백현욱이 있는 병원에서 투석을 하도록 조치했다. 모든 것이 낯선 한국에서 합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을 실감했다.
 
병원일을 전적으로 돌봐주는 박선옥은 부탁을 하면 동기와 선배 의사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한 시간 안에 모든 일을 처리해준다. 다른 병원의 의사 친구들과 선배들도 모두 자문단 역할을 하는 것이다. 김양수는 오피스텔과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수시로 드나들며 장을 봐오고, 부부의사인 오명희 내외는 늦은 밤에 찾아와 간절히 기도해주곤 했다. 한국 있는 동안의 용돈을 책임진다며 큰돈을 송금해주는 친구도 있고, 유기농 농사를 짓는 친구도 잣죽, 호박죽에 겨울 옷가지까지 들고 온다.

가히 62회 우렁각시 그룹인 것이다. 그 충실한 써포터즈는 박선옥, 김양수, 변동주, 이경희, 오명희, 김문자, 백영주- 일명 113 모임(*113은 수학여행 때의 방 번호인데 모임의 이름이 되었다) 이 주축이 되었다. 내게 제2의 삶을 살도록 도와준 눈물겹도록 고마운 이름들이다. 선배와 친구의 친구까지 하면 일일이 다 부르기 벅찰 정도이다.
 
이제 이식이 끝나고 몸이 그런대로 회복이 되어 본연의 무수리로 돌아오니 대접받던 그 왕비 시절이 많이 그립다. 이젠 나도 남들의 ‘우렁각시’가 되어 사랑의 빚을 은밀히 갚으며 살게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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