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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Apr 12. 2019

동주와 서시

문학강연회에서


[이 아침에] ‘동주‘와 ‘서시‘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4.12.16 22:07
    
국제펜클럽 봄 문학세미나 초청강사인 윤석산(한양대 명예 교수)시인의 '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었다.

영국 작가 알프레드 테니슨의 장편 서사시 형식의 소설 '이녹 아덴'을 예로 들어 소설의 감동과 울림을 말하고, 김훈의 에세이를 들어 산문 속 아름다운 문장의 매력을 통한 진지한 삶을 이야기했다. 시 가운데는 윤동주의 '서시'를 해설하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를 다루었다. 척박해진 삶을 한 단계 높여주는 유익한 강의였다.

강연 며칠 뒤, 마침 신문에 영화 '동주'가 LA에 들어왔다기에 좋은 기회다 싶어 구경했다. 윤동주의 대표시가 장면마다 깔리니 훨씬 효과적으로 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깊은 여운이 있는 영화였다.

해마다 피라미드 레이크의 이성호 시인의 산장에서 '윤동주 문학의 밤'이 열린다. 그때 하는 윤동주의 시 암송대회엔 '서시'를 외우는 이가 가장 많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여서 그런지, 암송대회 참가자뿐 아니라 청중들도 떼창으로 낭송하곤 한다.

서시(序詩)는 제목 그대로 윤동주의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첫머리에 수록된 작품이다. 몇 해 지나니 '서시'로는 승부 가리기가 어려워 조금 긴 시를 외워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내가 심사했던 어느 해엔 '별 헤는 밤'을 완벽하게 외운 분이 상을 받았다.

동주의 서시를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에 견주어 풀이를 한다. 부모가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고(父母具存 兄弟無故 一樂也),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고(仰不愧於天 俯不?於人 二樂也),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삼락중 두 번째가 '우러러보아 하늘에 부끄럼 없고, 내려다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어서 윤동주의 서시와 아주 흡사하다나? 아마 맹자의 삼락을 외우라 했으면 딱딱한 그걸 기꺼이 외우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윤동주의 섬세한 시어로 옮겨져 애송시가 되고 국민시가 되지 않았을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교시적인 맹자의 군자삼락에 비해 얼마나 부드럽고 마음이 일렁이는가. '이는 바람'이라는 표현이 절묘하다고 윤석산 시인은 감탄한다. 공감했다.

각박한 삶 속에서 욕망과 경쟁으로 비루해지기 쉬운 우리를 돌아보게도 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해 주는 문학. 쓰는 이도 읽는 이도 행복해지는 현실 너머의 '그 무엇' 언저리에 말석이나마 끼어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서시' 강연에 '동주' 영화까지 더하니 보람 있게 산 기분. 한결 유식해진 4월,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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