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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Feb 26. 2020

향기일까 냄새일까

향내 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향내일까 냄새일까?

이정아 어릴 적 대청마루 한가운데 놓인 난로 위, 양은냄비에서 나던 밥 익는 냄새를 기억한다. 그건 밥 냄새가 아니라 밥의 향기라고 해야 옳았다.  늦게 오시는 아버지의 밥을 엄마가 따로 지으면 뜸 들고 있는 밥의 향기에 다시 배가 고파지곤 했다. 그 추억을 되살리려 한동안 냄비 밥을 지어먹었다. 
교회 식사 당번이어서 대형 국통에 넣을 마늘을 5파운드 샀다. 일손을 도우려고 집에서 갈았다. 미니 블랜더에 한참을 돌려 마늘을 간 후 운동하러 짐(Gym)에 갔다. 늘 하던 대로 수영 후 사우나실에  들어갔다. 먼저 들어와 있던 내 또래의 여자가 주변의 허락을 구하더니 스프레이를 사우나실 공중에 뿌린다. 가만있자 내게서 마늘냄새가 났나? 자격지심에 공연히 미안했다. 그녀가 뿌린, 스팀에 섞인 스프레이에선 유칼립투스 향기가 났다. 1년을 성실히 참여해준 구역원들께 연말에 선물을 나눠드렸다. 추수감사절 찬양대회 때 교회에서 참가상으로 받은 비누를 2개씩 넣고, 크리스마스 빛깔의 키친타월, 바디워시와 향긋한 로션을 담아 오간자(망사주머니)에 담았다. 망사 주머니마다 향기가 피어난다. 한 가정에 한 주머니씩 드리니 모두 기뻐하신다. 선물이 아니라 향기를 배달한 기분. 성탄절과 새해를 맞아 이와 비슷한  향기로운 주머니가 이웃집 담장을 넘기도 하고, 친지들에게 다정한 인사와 함께 전달되었다. 선물을 주고받으며 동시에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하고 외쳤다. 우체부와도 택배기사와도 정원사와 청소회사 직원과도 마치 “Cheers!”하듯이 즐겁게 나누었다.  향기를 마다할 사람은 없으나 종종 그 향기가 냄새로 변해 공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곳 사람들 중에 향수를 쓰는 이들이 많다. 남성들도 많이 쓴다. 향수 자체로는 문제 될 게 없으나 사람의 체취와 섞이거나 밀폐된 공간에서는 안 쓰느니만 못한 경우가 생긴다. 오래전 성가대에 멋쟁이 권사님께서 진한 향수를 뿌리고 다니셨다. 바로 뒤에 앉는 남편은 그 냄새가 독해서 교회에만 오면 늘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러더니 직접 권사님과 이야기를 하고 문제를 풀었다. 배려의 마음으로 권사님이 더 이상 향수를 뿌리지 않기로 양보하셨다. 후각이 유난히 예민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사람이 많이 모이는 회의장에서는 안내 광고문을 붙인다. “ 화학물질에 민감한 사람들을 위해 향수나 콜롱 바디 스프레이 등을 자제해 주십시오.”  향기도 지나치면 피해를 준다는 말일 터이다. 개인적으로는 세숫비누나 면도크림 정도의 날듯 말듯한 은은한 향기가 좋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것은 사람 자체의 향기, 인간의 향기가 아닐까? 불가에서는 향을 싼 종이에선 향내가 생선을 꿴 새끼에선 비린내가 난다하질 않던가? 선업을 짓고 사는 사람은 향을 쌌던 종이가 향내를 풍기는 것처럼 그 사람의 마음에서 향기가 나오고, 향기 나오는 사람의 마음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고 들었다. 매일 세수를 하며 얼굴을 씻듯이 마음의 때를 씻고 살면 나의 향기가 세상을 향기롭게 할 것이다. 나머지 생은 향내 나는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2020 <한국수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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