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아버지의 눈물

by 이정아

[이 아침에] 실향민 아버지의 눈물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3.06.15 18:57

연일 매스컴을 통해 영화 '국제시장' 이 이슈가 되어도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평안남도 진남포가 고향인 친정아버지는 1.4 후퇴 때 피란 내려와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나는 전쟁을 겪진 않았지만 실향민의 가족으로 살았기에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앙금 같은 것이 있다.

이북에서는 토지개혁이 1946년에 있었다고 한다. 땅을 몽땅 환수당하고 급격히 가세는 기울고, 할아버지는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의 10남매 중 다섯 남매만 남쪽으로 피란 나오고 할머니와 시집간 누이들과 막내는 이북에 남았다고 했다. 잠시 이별일 줄 알았던 것이 영영 이별이 되었다며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이북에 남은 가족들을 그리워하곤 했다.

작은 집의 사촌동생은 차례 후에 가족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이북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며 자신의 아버지가 쓴 편지를 대신 읽었다. 절절한 구절에 쑥스러운 나머지 낭송 중간에 "아이, 신경질 나" 하고 자신의 말을 넣어서, 숙연했던 자리가 웃음바다가 된 일도 있었다. 젊은 우리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다 큰 어른들을 보면서 조금 낯설기도 하고 심지어 유치하다고까지 여겼다.

내 아버지나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는 자기에게 딸린 가족들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지 누굴 그리워해야 할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감상에 젖어있다니 철없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지나고 나니 이제야 알겠다. 애나 어른이나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감정이란 것을.

친정아버지의 시집을 보면 생이별한 어머니를 향한 사모곡이 여러 편 실려 있다. 엄격하고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가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린애처럼 우는 것을 보았다. 믿었던 아버지께 배반당한 기분이랄까. 잊지 못할 묘한 광경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국제시장'의 열기가 식어가는 지난 주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에 마침내 영화를 봤다. 가슴 아픈 것은 영화일망정 피하려고 했는데, 마치 숙제 안 한 아이처럼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로 자신을 희생해 가며 모든 가족을 책임진 주인공 덕수는 훌륭했다.

덕수처럼 나도 우리 집안의 맏이다. 우리 부모님은 내게 아무런 짐도 지우지 않았고 덕분에 편히 살 수 있었다. 딸 하나에 남동생이 셋이니 공주처럼 대우받았다.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지만, 우리 집에선 명절이면 남동생들이 만두 빚고 전을 부쳤다. 이번엔 몸까지 아파 온 동생들의 관심과 후원을 받고 있으니 '민폐 맏이'인 셈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 영화. 많이 그리워서 울었고 50%, 맏이 역할을 못한 나를 돌아보니 속상했고 30%, 전쟁의 공포 10%, 이산의 두려움 10% 정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며칠 후 아버지의 기일이다. 어머니를 그리며 아이처럼 울던 아버지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지금의 나와 같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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