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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Mar 07. 2020

실향민

아버지의 눈물


[ 아침에] 실향민 아버지의 눈물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3.06.15 18:57
  
연일 매스컴을 통해 영화 '국제시장'  이슈가 되어도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평안남도 진남포가 고향인 친정아버지는 1.4 후퇴  피란 내려와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돌아가셨다. 나는 전쟁을 겪진 않았지만 실향민의 가족으로 살았기에 가질  있는 마음의 앙금 같은 것이 있다.

이북에서는 토지개혁이 1946년에 있었다고 한다. 땅을 몽땅 환수당하고 급격히 가세는 기울고, 할아버지는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의 10남매  다섯 남매만 남쪽으로 피란 나오고 할머니와 시집간 누이들과 막내는 이북에 남았다고 했다. 잠시 이별일  알았던 것이 영영 이별이 되었다며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이북에 남은 가족들을 그리워하곤 했다.

작은 집의 사촌동생은 차례 후에 가족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이북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며 자신의 아버지가  편지를 대신 읽었다. 절절한 구절에 쑥스러운 나머지 낭송 중간에 "아이, 신경질 " 하고 자신의 말을 넣어서, 숙연했던 자리가 웃음바다가  일도 있었다. 젊은 우리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조금 낯설기도 하고 심지어 유치하다고까지 여겼다.

 아버지나  아버지, 작은 아버지는 자기에게 딸린 가족들을 보호해야  사람들이지 누굴 그리워해야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감상에 젖어있다니 철없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지나고 나니 이제야 알겠다. 애나 어른이나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감정이란 것을.

친정아버지의 시집을 보면 생이별한 어머니를 향한 사모곡이 여러  실려 있다. 엄격하고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가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린애처럼 우는 것을 보았다. 믿었던 아버지께 배반당한 기분이랄까. 잊지 못할 묘한 광경으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국제시장' 열기가 식어가는 지난 주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에 마침내 영화를 봤다. 가슴 아픈 것은 영화일망정 피하려고 했는데, 마치 숙제 안 한 아이처럼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의  한마디로 자신을 희생해 가며 모든 가족을 책임진 주인공 덕수는 훌륭했다.

덕수처럼 나도 우리 집안의 맏이다. 우리 부모님은 내게 아무런 짐도 지우지 않았고 덕분에 편히   있었다.  하나에 남동생이 셋이니 공주처럼 대우받았다.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지만, 우리 집에선 명절이면 남동생들이 만두 빚고 전을 부쳤다. 이번엔 몸까지 아파 온 동생들의 관심과 후원을 받고 있으니 '민폐 맏이' 셈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 영화. 많이 그리워서 울었고 50%, 맏이 역할을 못한 나를 돌아보니 속상했고 30%, 전쟁의 공포 10%, 이산의 두려움 10% 정도 간접 체험할  있었다. 며칠  아버지의 기일이다. 어머니를 그리며 아이처럼 울던 아버지를 이제는 이해할  있을 것 같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지금의 나와 같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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