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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Oct 16. 2016

Circus Circus!

조련사 남편

우리 집 달력 귀퉁이엔 자전거 5, 뒷마당 10, 수영 20, 이런 암호가 적혀있다. 이 난수표의 해석은 어렵지 않다. 운동용 자전거 타면 5불, 뒷마당 계단 오르내리면 10불, 수영 다녀오면 20불을 남편이 내게 지급한다는 약속이다.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밖에 모르는 나를, 운동시키고자 만든 남편의 고육지책이다.

평소에도 머리를 쓰지 왜 힘들게 몸을 쓰냐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머리 나쁜 이들이 사서 몸고생을 한다는 주장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이식 수술 후 운동만이 살 길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지시로 '살기 위한 운동'을 해야만 한다. 내가 오로지 할 수 있는 운동은 수영이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 수영장에서 체육시간에 수영을 배웠다.

요즘 같이 더운 날엔 더위도 식힐 겸 스포츠 센터에서 조금씩 수영을 하는 중이다. 남편은 30회 왕복을 하는 동안 나는 10회 왕복이 고작이지만 더 이상은 기진해서 하지 못한다.

그것도 큰 생색을 내며 안 해도 될 운동을 남편 위해 해주는 듯 유세를 떨고, 어떻게 하면 빼먹을까를 머리로는 늘 연구하고 있다. 감기 기운이 있다거나, 손님이 오기로 했다거니, 전화받을 일 등의 핑계는 이미 다 써먹은 방법이다. 보다 못한 남편이 상금을 건 것이다.

요 며칠 동안의 성과로 보아선 꽤 괜찮아 보인다. 나를 위해 꼭 해야 되는 운동을 하면서 공돈이 생기니 웬 떡인가 싶은 것이다. 그 돈으로 교회에서 친교시간에 구역원들에게 아이스커피 열 잔을 쏘기도 했다. 작심 3일이 아니라 작심 3시간 정도인 나의 인내심으로 비추어 보건대 대성공이다.

수영을 가지 못한 날엔 실내에서 자전거를 탄다. 10분 타면 5불을 벌 수 있으니 꿩 대신 닭으로 쓰고 있다.

대추를 따러 손님들이 자주 오는 요즘엔 뒷마당의 계단도 손님 따라 저절로 내려간다. 그것도 한 차례 내려갔다오면 목적과 관계없이 10불을 준다니 쏠쏠하다. 남편의 주머니에서 나오니 '주머니 돈이 쌈짓돈'인 셈이고 '소경 제 닭 잡아먹기'이나 돈이 걸릴 때와 안 걸릴 때가 확실히 다르다. 동기부여에는 역시 상금이 최고이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땐 한 달에 두 번씩 받는 고정수입이 있어서 용돈을 마음 놓고 썼다. 일을 하지 않는 요즘엔 필요한 건 카드로 뭐든 사라고 하지만, 현금을 손에 쥐고 하는 나만의 오롯한 쇼핑은 물 건너갔다.

돈 쓰는 일이 곁방살이하듯 눈치도 보이고 자린고비 남편에게 일일이 영수증을 제출하는 것도 성가시다. 그러던 터에 운동 상금이 숨통 트이는 일이 된 것이다.

"자전거 타기 오전 오후 두 번 10불에 뒷마당 두 번 20불, 수영 하기 20불 오늘의 수입 토털 50불." 저녁때 퇴근한 남편에게 보고하고 결제받으려는 데 온몸이 쑤신다. 돈에 눈이 멀어 너무 무리를 한 탓이다. 에구구.

남편은 나를 훈련하는 조련사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려고 위로 기어오르다 보면, 나는 어느새 재주넘는 곰탱이가 된 기분이다.


Pandemic으로 피트니스센터가 문을 닫은 요즈음엔 수영을 못하니 용돈도 많이 줄었다. 돈보다도
그 하기 싫던 운동이 하고 싶으니 참으로 희한한 COVID-19 시대가 아닌가. 살다가 처음 겪는 전쟁 아닌 전쟁이다.


남가주 경기여고 문집/09222020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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