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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Apr 20. 2021

온 마을이 돌보는

장애인

내가 장애인이 되어보니 

                                                                                               이정아/수필가


교회에 가서 내가 앉는 자리는 출입문과 가까운 자리입니다. 예전엔 훈련된 왕실 신장을 가졌다고 해서 로열 키드니(royal kidney)라 불릴 정도로 하루 종일 생리현상을 참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예배시간이 길어지면 염치 불고하고 중간에 한번 화장실을 다녀와야 합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참을성만 나의 방광이 허락하기 때문이지요. 전에 받던 투석으로 인해 방광의 용량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출입문 가까운 곳은 장애인 전용좌석입니다. 앞자리의 청년은 가끔 설교시간에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몸을 혼자서 잘 가누지 못합니다. 엄마의 시선은 늘 청년을 향하고 잠시도 눈을 떼지 않습니다. 옆자리엔 다리가 불편한 꽃미남 청년도 있습니다. 예쁜 엄마는 늘 미소를 잃지 않고 아들을 돌봅니다. 오랫동안 아픈 7살 꼬마도 있습니다. 젊은 엄마가 찬양팀에서 봉사를 하는 동안 교인들은 돌아가며 그 아이의 유모차를 밀고 돌봅니다.


장애인 자리에 앉아 예배를 보면서 유심히 그들의 부모를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볼 때마다 눈시울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더워옵니다. 어디선가 나직이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보기에 참 좋구나. 그동안 애 많이 썼다. 고맙다." 하늘이 잠시 맡긴 아이를 잘 돌봐주었다고 칭찬하는 소리가 천상에서 내려온 듯 내 귓전을 스칩니다. 바람결에 들려온 환청이었을까요. 그 마음의 소리는 부모의 가슴을 적시며 조용히 위로하였을 것입니다.


지난한 세월을 견디고 나면 웃음도 되찾게 되나 봅니다. 아이의 작은 변화에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젊은 엄마를 봅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아들 자랑을 하면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게 됩니다. 얼마만큼의 고통을 견디어 내야만 저리 투명한 얼굴로 기꺼이 손뼉을 칠 수 있을까요?


이번 여행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공항에서 휠체어 서비스를 부탁하면 아주 편하게 심사대를 통과하고 기내의 출입에도 우선권을 줍니다. 크루즈 배에서도 온갖 편의를 제공받고, 여행지의 길고 긴 화장실 대열에서도 맨 앞 순서를 부여받습니다. 관광버스에 오르내릴 때에도 운전기사와 가이드의 에스코트를 받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한 명의 장애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배려합니다.


선천적인 장애는 사람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타고난 것입니다. 후천적인 장애도 사람의 부주의나 사고일망정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장애를 원해서 장애인이 된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지요. 사람이 어쩌지 못하는 것은 신의 영역일 테니, 신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한 이들을 돕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인간의 도리이자 신을 돕는 숭고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오른쪽 관절 수술로 미국에서 핸디캡 판정을 받았고, 신장 이식 수술로 한국에서 복지카드를 받은 글로벌 공인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잠시나마 장애우의 입장을, 그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나 봅니다. 힘든 세월을 통과해 오늘에 이른 것에 대한 감사. 잃은 것 때문에 원망하지 말고 아직 남아있는 것도 있음에 또 감사해야겠습니다.


무탈한 하루를 살 수 있음이 기적이고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2021 ‘장애인의 날’에 예전에 쓴 글을 소환해 보았습니다.


#장애인#돌봄#배려#온마을#감사#신의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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