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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Apr 24. 2021

별을 보면

겸손해 집니다


이정아/수필가


이곳에서 글을 쓰시는 김 시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김 시인은 교회에서 '면사모(麵사모)'라는 그룹에 끼었다. 정치적인 그룹이 아니고 예배 후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면서 담론 하는 모임. 면발의 국수 면(麵) 자를 쓰는 것이다. 원로 교수, 시인, 신학자, 약사, 성악가들로 이루어진 구성원만 보아도 흥미가 있을 듯싶은 모임이다.


김 시인이 첫 모임에 간 날, 면사모 후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던 중 원로교수인 Y교수가 일어났다. "먼저 일어납니다. 오늘 밤에 일을 하려면 지금 가서 잠을 좀 자 두어야 하니까." 하며 미련 없이 찻집을 나가더란다. 당연히 번역이나 강연 준비등을 생각하였단다.


그러나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칠순도 지난    교수는  인쇄 회사의 야간 시큐리티 가드(경비원) 한단다. 그는 백발 때문에 낮에는 일을  수가 없다나? 보는 이들이 "백발에 무슨 시큐리티 가드냐?"  핀잔을 주거나, 또는 몇몇 이들의 값싼 동정 때문이라고 한다. Y교수는 한국의 J대학에서 문과대학 학장도 역임한 석학이다. ‘Korea Herald' 영자신문을 최초로 만들었으며, 'Times' 편집도 했던 한국의 영어 박사라  분이다.


이곳의 제자들도 야간 경비가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오히려 Y교수는 제자들을 질책했다고 한다.

"자식들도 다 출가했는데 나보고 집에서 빈둥대라고? 이건 나의 생활 터전이야. 내겐 잘해 주어야 할 아내가 있고. 그 아내를 위해 일을 하는데 얼마나 떳떳한가 말이야. 야간근무를 하면서 튼튼한 두 다리로 서서 밤하늘과 대화하지. 어느 땐 별이 하늘 가득 쌓이고, 또 손 닿는 데까지 내려오는데. 이런 대우주의 절경, 자연과 대화의 감격을 누가 알겠어?"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가슴이 메어오면서 형용 못할 감동이 일어나는 거였다. 동정 따위의 치졸한 감상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정정 당당하게 사는 이에 대한 부러움이랄까? 참 아름답게 사는 분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이 한인타운에는 모두들 한국에서 왕년에 한가락하셨다는 분들이고, 그들이 키웠다던 두고 온 '금송아지'도 만만치 않게 많다.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으나, 가식으로 마음의 가난을 가리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에 대한 멀미 그리고 연민.


부질없는 과거의 체면을 과감히 벗어버린 노 교수의 이야기는 연두 빛 봄처럼 신선하였다. 노 교수야말로 정신 빈곤의 이민사회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이가 아닐까?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이 어느덧 물질의 풍요로만 정의 내려진 이 세태에 진실로 '넉넉하다'의 의미를 가르쳐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우주에 있다는 2000억 개의 별을 상상해본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별로 크지도 않은 별인 태양을 돌아가는 조그만 행성. 인간은 그 지구의 작은 한 점에 불과할 뿐이니. 매일 그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노 교수는 겸손을 배웠으리라.


나도 돌아갈 때까지 되도록 하늘만 바라보고 살리라 생각했다. 내 영혼의 알맹이에서 포장을 벗겨내고 훨씬 더 겸손하게 내려서는 법을 배우고 싶다. 오늘 밤엔 별을 오래도록 바라보아야겠다.    



사진:이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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