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해 집니다
이정아/수필가
이곳에서 글을 쓰시는 김 시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김 시인은 교회에서 '면사모(麵사모)'라는 그룹에 끼었다. 정치적인 그룹이 아니고 예배 후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면서 담론 하는 모임. 면발의 국수 면(麵) 자를 쓰는 것이다. 원로 교수, 시인, 신학자, 약사, 성악가들로 이루어진 구성원만 보아도 흥미가 있을 듯싶은 모임이다.
김 시인이 첫 모임에 간 날, 면사모 후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던 중 원로교수인 Y교수가 일어났다. "먼저 일어납니다. 오늘 밤에 일을 하려면 지금 가서 잠을 좀 자 두어야 하니까." 하며 미련 없이 찻집을 나가더란다. 당연히 번역이나 강연 준비등을 생각하였단다.
그러나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칠순도 지난 그 노 교수는 모 인쇄 회사의 야간 시큐리티 가드(경비원)를 한단다. 그는 백발 때문에 낮에는 일을 할 수가 없다나? 보는 이들이 "백발에 무슨 시큐리티 가드냐?" 고 핀잔을 주거나, 또는 몇몇 이들의 값싼 동정 때문이라고 한다. Y교수는 한국의 J대학에서 문과대학 학장도 역임한 석학이다. ‘Korea Herald' 영자신문을 최초로 만들었으며, 'Times'의 편집도 했던 한국의 영어 박사라 할 분이다.
이곳의 제자들도 야간 경비가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오히려 Y교수는 제자들을 질책했다고 한다.
"자식들도 다 출가했는데 나보고 집에서 빈둥대라고? 이건 나의 생활 터전이야. 내겐 잘해 주어야 할 아내가 있고. 그 아내를 위해 일을 하는데 얼마나 떳떳한가 말이야. 야간근무를 하면서 튼튼한 두 다리로 서서 밤하늘과 대화하지. 어느 땐 별이 하늘 가득 쌓이고, 또 손 닿는 데까지 내려오는데. 이런 대우주의 절경, 자연과 대화의 감격을 누가 알겠어?"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가슴이 메어오면서 형용 못할 감동이 일어나는 거였다. 동정 따위의 치졸한 감상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정정 당당하게 사는 이에 대한 부러움이랄까? 참 아름답게 사는 분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이 한인타운에는 모두들 한국에서 왕년에 한가락하셨다는 분들이고, 그들이 키웠다던 두고 온 '금송아지'도 만만치 않게 많다.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으나, 가식으로 마음의 가난을 가리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에 대한 멀미 그리고 연민.
부질없는 과거의 체면을 과감히 벗어버린 노 교수의 이야기는 연두 빛 봄처럼 신선하였다. 노 교수야말로 정신 빈곤의 이민사회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이가 아닐까?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이 어느덧 물질의 풍요로만 정의 내려진 이 세태에 진실로 '넉넉하다'의 의미를 가르쳐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우주에 있다는 2000억 개의 별을 상상해본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별로 크지도 않은 별인 태양을 돌아가는 조그만 행성. 인간은 그 지구의 작은 한 점에 불과할 뿐이니. 매일 그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노 교수는 겸손을 배웠으리라.
나도 돌아갈 때까지 되도록 하늘만 바라보고 살리라 생각했다. 내 영혼의 알맹이에서 포장을 벗겨내고 훨씬 더 겸손하게 내려서는 법을 배우고 싶다. 오늘 밤엔 별을 오래도록 바라보아야겠다.
사진:이원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