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아 Jul 12. 2021

선한 부메랑

착한 바이러스

[이 아침에] 선한 마음을 나누는 ‘물물교환’

이정아 / 수필가  | [LA중앙일보] 2021/07/12 미주판 20면

| 입력 2021/07/11 19:00


아침 일찍 들러 오이와 가지, 호박을 따간 S 시인이 저녁 무렵 식혜 2병과 무짠지를 현관 앞에 두고 갔다. 식혜는 주겠거든 한 병만 달라고 노래를 해도, 인심 후한 시인은 아들네도 주라며 내 말은 듣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식혜 맛을 모르는지 아들 집 냉장고 구석에서 구박받는 식혜를 보곤 아들네는 보내지 않기로 했다. 교회에 가져가서 구역 식구들과 친교시간에 먹으면 딱인데, 요즘의 교회 형편과 맞지를 않아 선배님께 SOS를 쳤다.


식혜 한 병을 픽업하러 오신 선배는 망고 한 상자와 맛난 붕어빵을 사 오셨다. 텃밭채소가 식혜가 되었다가 식혜는 망고로 3단 변신을 했다. 며칠 전 친구가 얻어간 채소를 나눠먹었다는 얼굴도 모르는 친구의 친구는 집으로 음식 배달을 보냈다. 호박과 파파야를 가지러 온 친한 아우는 함박꽃 부케와 슈크림을 들고 와 물물교환을 했다. 어지러웠다. 작은 사랑이 바이러스처럼 급속히 퍼지며 확산이 되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가져가는 것보다 보답이 훨씬 후하다.


끝없이 달리는 대왕 호박은 교회에 가져가 구역원 가정마다 하나씩 나눠드렸다. 달아보니 5파운드가 넘더라며 놀라워하셨다. 농부는 자기가 농사를 잘 지어 받는 칭찬인 듯 으쓱 인다. 사심 없이 무언가를 나누면 반드시 몇 배로 돌아온다는 걸 살면서 많이 체험한다. 나는 그걸 선의의 부메랑이라고 생각한다.


마켓에서 세일할 때 파는 열 단에 불과 1불이며, 풋배 추도 4단에 1불에 살 수 있다. 감자, 오이, 가지, 고추, 토마토 모두 사는 값이 키우는 것보다 훨씬 싸다. 그러나 키우는 과정을 즐기는 농부의 활동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본의 아니게 농부의 아내로 엮인 셈이다. 농사의 프로세스에서 남편은 행복을 느낀다. 나는 나눠주면서 행복을 느낀다. 나누면서 받는 칭찬과 보상(?)은 다 내 것이어서 큰 수고를 하지 않고 웬 떡인가 싶은 요즈음이다. 농사는 나누려고 짓는다는 말이 맞다.


자연은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에게 선물을 준다. 그 선물은 도로 갚아야 할 선물이 아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듯 주변과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는 뜻이 아닐까?


여름 한철 텃밭 채소가 끝날 무렵이면 무화과와 단감과 대추가 줄줄이 열매를 맺고 나눔을 기다린다. 여름과 가을 두 계절 잠시나마 인심 좋은 농부의 마음을 누려보는 것이다. 무얼 나눌 땐 참으로 신바람이 난다. 선한 부메랑, 착한 바이러스가 주변에 널리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마음.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가문의 영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