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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Aug 03. 2021

신발 좋아하는 나

신발 3제



신발  3제(三題)

                                                                                                                                                                     이정아

 

 대학을 졸업하고 여자중학교의 가정 선생으로 발령을 받았다. 부임 전에 준비물을 챙기는데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이 중간 굽이 있는 빨간 가죽 슬리퍼였다. 여선생님들이 교내에서 실내화를 신은 것을 본 지라 여교사의 필수품이려니 하고 큰 맘먹고 명동의 양화점에서 마련한 것이다.


 학생들도 동료 교사들도 예쁘다며 칭찬을 하고 내 별명은 ‘빨간 구두 선생님’이 되었다. 한 달 여쯤 지나자 교무주임 선생이 신임교사를 소집한다.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있을 거라는 귀띔이어서 단정히 하고 교장실로 들어갔다. 교장 선생님이 조목조목 지적을 한다. 긴 생머리가 학생인지 선생인지 구별이 안되니 파마를 하라는 분부가 나를 향한 것이었고, 우리나라는 아직 전시체제이므로 전시의 국민들은 슬리퍼를 한가하게 끌고 다녀선 안된다며 내 발을 보며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78년도에 전시체제라니 이해불가였지만 이북 출신 또순이 여교장 선생님에겐  통일이 안된 나라의 상황이 전시로 생각되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는 여교사를 보다 못해  그런 자리를 마련하신 듯싶은데, 그땐  사회인이 되어서도 왜 그런 제약을 받아야 하나 야속했다. 별 수 없이 머리는 펌을 하고 실내화는 학생들과 같은 하얀 운동화로 바꾸었다. 40년 전 이야기인데도 엊그제 일처럼 섭섭하다. 평소 구두를 좋아하는 내가 구두 때문에 받은 핍박이어서 그럴 것이다.

 

  며칠 전 동인집의 북사인회가 있었다. 북사인회 준비로 여러 가지 물품 준비도 해야 하고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하건만, 나는 구두를 샀다. 아주 높은 킬 힐이다. 남들이 보면 “위쪽 공기는 어떻수?”하고 물어볼만한 샌들이다. 키가 커 보이면 상대적으로 덜 퍼져 보일 것이란 계산이었다. 당일 아침 미리 신고 연습을 하는데 너무 높아 삐끗하고  발목이 접혀서 다쳤다. 그 신을 신어 보기는커녕 발이 너무 부어올라 가장 낮은 (굽이 아예 없는) 신발을 겨우 꿰고 참석하였다. 종일 발이 욱신거리고 아팠다. 인생은 이리 대책 없거나 더 불리한 쪽으로 종종 진행되곤 한다. 그러니 매사에 무리수는 두지 말라는 교훈을 얻었다. 사람 잡는 신발이어서 킬 힐인 모양이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는 윤흥길 소설가의 오래전 소설 제목이 생각난다. 내가 죽으면 ‘수십 켤레의 구두로 남은 아줌마’가 될 정도로 신발이 많다. 오죽하면 남편이 나를 부를 때 종종‘임멜다여사’라고 할까? 두 식구만 남은 집의 현관에  남편 신발 한 켤레면 내 신발은 열이다. 남편은 일부다처 몰몬의 집 같다며 종종 푸념을 하곤 한다.

 

  잘 알던 분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장의사에서 평소에 고인이 좋아하던 옷을 챙겨 오라고 했다며  따님이 묻는다. 타주에 살던 고인의 딸은 엄마의  옷을 잘 모른다기에 집에 가서 즐겨 입던 옷을 찾아주었다. 그 옷과 매치하여 편한 신발도 들고 장의사에 갔더니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신발은 필요 없단다. 주검은 영원히 자는 것이므로 잘 땐 신발을 안 신는다나?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였다.

                                                            

  북 아메리카 인디언 수우족의 기도문 중 신발에 관한 금언이 있다. ‘남의 모카신을 신고  두 달 이상 걸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비난하지 말라.’는 말이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라는 역지사지의  사상이 담긴 것이다. 이렇게 신발 하나에도 철학이 담길 수 있다.

 

 죽을 땐 관 속에 넣어가지도 못할 신발, 생전에 실컷 신어봐야 하겠다. 조만간 이 핑계를 대고 나는 또 신발 한 켤레 살 것이다. 불황의 여파로 전시체제와 다름없는 요즘엔 아무래도 질기고 튼튼한 군화 같은 신발을 사야 하려나?  홍 교장 선생님의 어드바이스를 떠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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