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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Aug 03. 2022

복권, 골드러시,갬블

그 신기루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골든 스테이트'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필시 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눈치챘으리라. 1848년 어느 날, 빚을 지고 야반도주한 스위스 사람 존 서터는 캘리포니아의 광산촌에 정착을 하였다. 어느 날 그의 광산에서 난데없는 소동이 벌어졌다. 현장감독이 들고 온, 아직 튀기지 않은 팝콘 크기의 두 조각의 금을 도화선으로 노다지 캐기의 소문은 열병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농촌에서, 대도시에서, 상인도 교사도 신문 편집인도 모두 본업을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건강도 재산도 생명까지도 돌보지 않고 주야로 금 광맥을 찾기에만 혈안이 되었다. 당시의 믿을 수 없을 만큼 천정부지로 높아갔던 물가는 이 노다지 캐기 현장의 탐욕과 살벌함을 생생하게 말해준다. 지금부터 거의 175년 전쯤의 일이다.


그 전해까지 6달러 하던 말 한 필이 3백 달러로 뛰고, 빵 한 덩이는 2달러, 계란 한 알에 3달러, 납작한 생선 통조림 하나가 16달러였다니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칼 한 사실은 1855년 골드러시가 막을 내리기까지 금광으로 실제 부자가 된 사람은 몇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때 탄생한 부자 중 한 사람은 리바이 스트라우스 이다. 튼튼하고 질긴 데님천 한 자루를 지고와 광부들의 옷을 지어 팔던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바이스 블루진을 만든 사람으로, 청바지로 대 부호가 되었다. 금맥을 찾아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묵묵히 옷을 지어 팔다 보니(분수대로 자기 일을 하다 보니) 응분의 보답을 받은 것이다. 만고의 진리를 모르는 채 일확천금을 벼르는 사람들은 새겨두어야 하겠다.


이곳의 골드러시 망령이 씌운 탓인가? 내겐 도박사의 피가 흐르는 듯하다. 도박 동네인 라스베이거스나 리노에 가면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한다. 몇 년 전에도 여고동창인 동주와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밤을 꼬박 새우고 돈을 다 잃고 분한 적이 있었다. 남편이 정해준 한도액을 쓰고 또 잠든 남편의 주머니에서 잠시 빌린(훔친)돈도 잃었다.


친구 동주가 한국에서 점을 쳤는데 횡재수가 있다는 바람에 생일이 비슷한 나도 덩달아 덕을 볼까 했는데, 말 그대로 '꽝'이었다. 15시간 기계와의 사투 끝에 얻은 것은 빠질 듯 한 어깻죽지와 충혈된 눈 시커먼 동전 때가 묻은 손가락이었다. 눈을 감고 자려는 데 잠은 안 오고 잭 팟의 화면이 눈앞에 어른거렸었다. 그렇게 중독이 되는 것 같았다.


연말에 갔던 레익 타호의 스키장은 도박의 도시 '리노'와 가까웠다. 남편과 아이는 스키를 나가고 나는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샬레에 있었다. 허리가 아프다며 일행 중 한가족도 같이 머물렀다. 그 가족은 내가 가르친 제자의 가족이다. 대학 졸업하고 한국에 있을 때 여고에서 훈장 노릇을 잠시 했었다. 사명감 없이 시집갈 자금 마련 차 한 것이니 오죽했으랴. 그저 학생들과 수다 떨기 일쑤요. 방과 후 학생지도를 핑계로 공짜 극장 가기를 즐겼으니 한심한 선생이었다. 그때 본 공짜 영화가 내 평생 본 영화의 절반 이상이다.


우연하게 그때의 제자를 만나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역만리 이국에 와서 오래전 제자를 만나니 참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싶은 게 잘 지냈다. 친구처럼 함께 늙어 가는 7살 차이밖에 안 나는 제자. 늘 신세만 지기에, 갚을 겸 제자의 가족을 초대하여 간 스키장이었다. 허리가 아파 샬레에서 쉬던 제자와 그 남편이 책만 읽는 내가 답답해 보였는지 타호 시내로 드라이브를 가자고 한다. 별생각 없이 입던 옷차림으로 덜렁 따라나섰다. 타호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가려는 데 제자 남편인 미스터 신이 선생님을 모시고 나왔는데 몸 바쳐 봉사한다며 리노에 잠깐 들리자고 한다.


당근 좋지. 내 취미가 갬블인데(속 마음), 주머니에  달랑 50불짜리 하난데 그걸 밑천으로 슬롯머신에 도전했다. 10분 만에 다 날리고 제자에게 100불을 빌렸다. 선생 망신 다 시키면서..."선생님 100불 가지고 괜찮으시겠어요?""돈 떨어지면 연락하세요." 하며 휴대용 전화를 주고 간다. 스승과 제자의 대화치곤 우스운 대화. 조심조심 조려가면서 했는데 그마저 다 날리고... 조금만 더 하면 대박이 나겠다 싶어...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제자 남편에게 전화했다.


안 받으면 그만둘 것이지 메시지를 남겨 이날까지 놀림을 받으니 메시지의 내용인 즉 "사이먼 아빠... 임선생이에요. 판돈이 떨어졌으니 여자 화장실 앞 슬롯머신 7번으로 와 주세요" 대대 망신 후 제자의 남편 앞에서 얼굴을 못 들고 산다.


인간의 탐욕이란 얼마나 끝이 없는 것일까? 죽을 때까지 물질만 추구하게 되면 얼마나 서글픈 인생일까? 내 속에 그렇게 사악한 도박심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러고 보면 마이다스 임금님처럼 우리 손에 닿는 것이 다 황금으로 변한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반짝인다고 모두 금은 아니다(All that glitters is not gold)”란 말이 있다. 이 말은 William Shakespeare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쓴 말이기도 하다. 이문장은 요즘 책인 반지의 제왕에도 인용되었으니 일확천금에 대한 로망은 인류의 역사와도 같지 않을까?


며칠 전 1조 7천억이 걸린 메가밀리언 로또가 이곳의 여러 사람을 흥분시켰다. 우리도 $20 투자했으나 역시나 ‘꽝’ 이었다. 허황된 꿈을 버리고 분수껏 살 일이다.


2022 그린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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