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아 Jul 30. 2022

글이란 마땅히

온몸으로 쓰는 것





2018년 이곳의 해변 문학제에 강사로 오신 복효근 시인을 뵈었다. 안성수 수필가와 함께 세미나 차 오셨는데, 만나기 전 시인님에 대해 미리 공부를 했다.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이라는 아름다운 시를 지은  분이란 걸 알았다.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 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 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 떼가

누우들이 몰래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 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여러 편의 감동적인 시를 찾아 읽었다. 시인님의 팬이 되었다. 그 뒤 ‘어머니의 젖은 바지를 빨면서’라는 산문을 읽고는 펑펑 울었다. 시도 산문도 기막히게 잘 쓰는 이 분은 천재가 아닐까 싶었다.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고 작품에 매료되었고 추앙 중이다. 작년에 신작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가 나오자 바로 사서 탐독했다. 어머니 장례 치르고 두 달가량  한국에 머물 때 내 곁에서 친구가 된 시집이다. 감탄해 마지않던 시편들이 심사위원들 눈에도 들어 올해 제9회 박재삼 문학상을 받으셨다. 받으실 분이 받으셔서 참 기뻤다.


며칠 전 경남 사천의 박재삼 문학관에서 열린 시상식에 상 받으러 가신 시인이 내 페북에 사진을 남기셨다. 본인의 시상식 사진이 아닌 박재삼 문학관에 걸린 내 아버지 사진을 찍어 보내신 것이다. “이정아 선생님의 선친을 뵈었습니다” 하시며. 박재삼, 김동리, 임진수 시인의 대형 사진이 문학관에 걸려있더라며 인증사진을 찍어오신 게 아닌가? 경황없는 시상식 와중에 페이스북 친구를 생각하며 찍은 사진. 얼마나 따스한 마음이며 큰 배려심인가? 가슴이 뭉클했다.


무명시인이면서 시집도 한 권뿐인 아버지가 웬일로 박재삼문학관에 사진으로 남게 되었을까? 사진으로 미루어 누군가의 출판기념회에서 건배 후 찍은 것 같다. 술이라면 빠지지 않는 아버지여서 술잔을 드신 모습이 정답다.


53세로 졸 할 때까지 2만 권이 넘는 책을 읽은 간서치 이덕무의 소품문 ‘이목 구심서’엔 이런 구절이 있다.


“ 머리로만 글을 쓰는 사람은 애써 꾸미거나 자꾸 다듬으려고 할 것이다. 심장으로만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뜻과 기운을 어떻게든 새기려고 힘쓸 것이다. 그러나 온몸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몸 구석구석 가득한 말과 글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토하고 뱉어낸다. 이것은 자연이고 천연이다. 글을 머리와 가슴으로만 쓴다고 할 수 있겠는가? 글이란 마땅히 온몸으로 쓰는 것이다.”


이덕무의 글을 통해 알게 된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복효근 시인님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쓰기 마련이다.


2022년 9월호 한국수필



*실은 박재삼 문학관 개관 초기에 사천이 고향이신 부산 가톨릭대학의 배채진 교수님(수필가)께서,

그곳에 선친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고 처음으로 알려주셨다. 나는 박재삼 문학관에 아직 가보지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아름다운 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