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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Jul 29. 2022

아름다운 문인

문인의 립스틱




오래전 이곳을 다녀가신 김남조 선생님과 함께 한 식사자리 에서였다. 이곳 문인들을 유심히 둘러보시던 선생님께서 K 시인을 향해 “당신, 입술연지가 너무 화려해. 문인의 입술이 아니야.”하셨다. K시인의 대학 은사이기도 한 김남조 선생님의 말씀에 핫 핑크색 고운 립스틱을 바르고 온 K시인을 비롯한 모두가 민망했었다. 문인다운 화장이나 치장이 있다며 노시인은 조근조근 말씀하셨다. 돈이 많아도 문인은 명품이나 화려한 차림을 지양하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하고, 말씨나 행동도 늘 문인답게 하라고 하셨다.


글 쓰는 사람 치고 끼와 감성이 풍부하지 않은 이는 없다시며 그런 것을 함부로 내놓지 말고 품위를 지키며 사는 것이 문인이라고 조용히 훈계하셨다. 팔십 노인의 잔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같은 문인이기에 말씀하신다는 대가의 조언이 옷깃을 여미게 하였다.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셨으리라 생각하니 오히려 존경스러웠다.


그 일 이후 늘 마음에 두고 살았다. 본디 볼품없이 태어난 데다 글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적어도‘문인의 품위’는 지키며 살아야겠다며 결심 아닌 결심을 한 셈이다. 같은 시대를 사는 동료 문인들에게도 엄격하나 따스했던 시인의 조언을 알려주리라 생각했다. 한국의 김남조 선생님 댁을 방문했던 분들이나 여행을 함께 다녀오신 문인들 사이에 김남조 선생님 언행과 어록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이곳 문단엔 ‘자칭 문인’을 포함하여 ‘공증된 문인’까지‘문인’이 넘쳐난다. 한글을 깨치면 다 문인으로 불리고 싶어 한다는 부끄러운 조크가 있는 문인 사회이다. 등단이라는 절차를 밟아 ‘문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나면 그게 다인 줄 알고 본분인 글쓰기에 게으르다. '문인’이라는 간판의 프리미엄만 누리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페친 손웅익 (건축가이자 수필가)님께서 얼마 전 용산 효창동의 김남조 시인 댁을 방문한 방문기를 올리셨다. 김세중 교수님과의 인연이 김남조 시인으로 연결된 사이이시다. 지금 93세의 노시인은 정신은 맑으시나 척추골절로 운신은 어렵다신다. 싸인 하신 글씨는 옛날과 변함없는 소녀체 글씨였다. “품위 있는 문인이 돼라”던 그분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품위의 끝판왕은 김남조 시인 자신일 터이다. 끝까지 고우시고 편한 여생이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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