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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Sep 13. 2022

허세 보단

분수에 맞게

오래전 우리가 미국에 와서 구입한 첫 차는 1976년도형 올스모빌 델타88 이었다. 85년에 샀으니 이미 남이 10년 동안 타고 다닌 중고차를 산 것이었다. 8기통의 기름을 하마처럼 먹는 탱크 같은 차였다. 크기도 크고 소리도 요란한 하늘색의 긴 세단을 그 당시 700불을 주고 샀다.


미국이 오일쇼크일 때여서 기름을 많이 먹는 차는 환영을 받지 못할 때였다. 그때의 유학생들의 차가  거기서 거기였으므로 별로 창피하지 않았다. 아이가 생기자 남편은 모터 싸이클을 마련해 그걸 타고 학교를 다녔으므로 나와 아이의 전용차 격인  차로 Austin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운전 초기  차의 운전이 서툴었던 나는 다니던 미국 교회의 주차장에서 아주 작고 허름한 차를 박았는데 주인이 없기에 메모를 적어두었다.


전화번호와 이름과 주소를 적고 연락하라고. 작은  옆의  캐딜락엔 피해를  주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교회로 전화를  보았다. 상황을 말하자 전화를 받는 이가 말하길  알고 있다고 한다. 웃으며  작은 차가 자신의 차라며 자기는 pastor ooo 이라는데, 맙소사   미국 교회의 목사님이었다. 고물차여서  나빠질 것도 없다며 드라이브할  있으니  고친다며 염려 말란다.


연락을 안 해 우리의 걱정이 더 했나 보다며 연신 미안하다고 한다. 미국에서 산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놀랐다. 우리보다 낡은 차여서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상상외여서.


후에 인사하러 가보니 새 캐딜락은 뜻밖에도 교회를 청소하는 이의 차였다. 열린 트렁크에 청소용품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여러 군데를 다니며  청소를 하는 모양인지 바빠 보였다. 그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연봉이 목사보다 더 높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지는 물건에 실력 이상의 돈을 쓰거나 허세를 부리는 이는 자격지심의 표현일는지 모른다. 청소업을 하기엔 세단보다는 트럭 같은 실용차가 적당할 듯한데 말이다.


잘 아는 자동차 세일즈맨의 말에 의하면 요즘 고급 차를 사러 오는 사람들은 주로 단체장이거나 부유층 자제인 유학생들이라고 한다. 차를 가지고 존재의 과시를 하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나타나 있다. 다른 것으로는 남보다 나을 게 없으니 허세를 부리는 것일 것이다.


어느 추한 단체장의 웃지 못할 이야기이다. 한인타운에서 제법 알려진 단체장이 타고 다니던 벤츠 500이 고장이 나서 아는 장로님 댁 정비소에 맡겨졌다. 보통 벤츠같이 고급 차를 타는 이들은 일반 정비소에 안 맡기고 딜러의 서비스를 받건만 어찌 된 일인지 일반 정비소로 가지고 왔단다. 큰 문제가 아닌 간단한 부품만 갈아 끼우면 되는 것이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정비소에선 파트를 주문하였다.


주문한 파트를 끼웠는데도 잘 안되어 몇 차례  부품이 불량 인가하여 바꿔오고 하니 자존심이 있는 벤츠 부품센터에서 사람이 직접 나왔다. 벤츠 부품센터의 사람이 보더니 이 차는 벤츠 모델 500이 아니라 모델 320이라고 했단다. 그러니 부품이 안 맞은 것이라고. 벤츠의 등급을 올리려 겉의 숫자를 바꾸었다는 이야기인데, 남들의 눈을 의식한 얼마나 유치한 짓인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런 사람이 단체장으로 한인타운을 대표한다고 다니면, 하는 짓은 안 봐도 알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돈만 벌면 다라는 사람들은 세상에는 돈 이외의 질서가 있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한다. 돈을 못 번 사람의 변명처럼 들릴지 몰라도 큰 부자가 못된 것이 억울하지는 않다. 적어도 나에게 맞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의 축소판 격인 나성에 살다 보니 조국의 세태를 대강 알 수가 있다. 유학을 시킨다고 해서 과연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한국의  많은 어떤 이는 이곳의 유학생의 실태가 겁이 난다며, 대학에 낙방한 자신의 아이를 맡아주면 큰돈으로 보상하겠다고 기별이 왔다. 물론  돈을 생각하면 유혹적이나, 아이를 맡는다는 것은  아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따르는 것이니 거절하였다. 심사숙고하여 내게 부탁하였다는 말은 고맙지 않았다. 부모가  거두는 아이를 뉘라서  거둘 것인가?


“나는 간소하면서 아무 허세도 없는 생활이야 말로 모든 사람에게 최상의 것. 육체를 위해서나 정신을 위해서나 최상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으로 알베르토 아인슈타인 선생이 새삼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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