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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Sep 16. 2022

오래 기다려온

스승의 한 마디



며칠 전에 K 화백을 만나 뵈었다. 화실을 이전하고 새 장소에서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화가의 아내인 김 권사님이 교우들을 초청했다. 그 남편인 K화백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심방 예배를 반대하지는 않았기에.

가끔 뵙는 그분은 잘 알려진 화가이다. 짧게 깎은 머리로 인해 스님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신다. 스님들처럼 얼굴도 편안하게 보이며 광채가 나는 듯도 하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가 도를 닦은 분 같다. 목사님과도 말이 잘 통해서 한 가닥 불안하던 마음을 놓았다.


고집스러운 예술가가 목사님과 의견 충돌이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기우였다. 목사님도 대화를 해 보시더니 도사끼리 통한다는 말로 조크를 하시는 걸 보면, 마음 수련을 쌓은 이들은 종교를 초월하는 무엇인가가 있나 보다.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김창렬 선생의 제자인 그분이

스승과의 대화를 들려주신다. 늘 "작품 많이 그렸나?" 하고 물으시던 스승이 몇 년 전에 뵈었더니 “요즘, 내 그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자신을 이젠 작가로 인정해 주시는 듯하여 감개무량했노라고 말을 한다.


그림을 50년 동안이나 그리신 70대의 유명 작가도 스승의 그 한마디를 기다려왔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제자인 그의 말에 의하면 김창렬 선생의 물방울은 진짜 물방울처럼 그린 사실성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방울을 위해 수 십 년 쏟으신 정열과 그 역사가 다 들어있기에 귀하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이는 그림을 통해 배우는가 보다.


김 화백님이 말하기를 자신의 그림은 요즘 유행의 한 줄기인 ‘개념미술'이라고 한다. 상형문자 같기도 암호 같기도 한 것을 화면 가득 그렸는데 그림 같기도 하고 글씨의 집합 같기도 하였다.


십자가와 절이 있고 아이와 엄마 새와 꽃 달과 해가 섞여있었다. 세계, 평화, 우주 등을 표현한 것으로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모성이라고 생각한다며, 초월자를 자신은 모성으로 이해한다고 한다. 모성은 조건 없이 만물을 포용하기에 모성 시리즈를 자신의 화두로 삼아 그린 지 오래라는 것이다. 작년 그분의 전시회에 갔을 때를 기억해보니 컨셉이 모성이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해설을 듣고 보니 글씨로 보였던 것이 그림으로 보였다. 내가 그리 말하자 바로 그것이 '개념미술'이라는 것이란다. 초월성을 화두로 오랜동안 그렸어도 완성을 못하고 계속 그리는 이유는 절대자의 침묵을 그릴 수 없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무것도 안 그리고 침묵할 때가 절대자를 만난 순간이라고 이해하란다.


'절대자의 침묵'도, 그의 '절대자 앞에서의 겸손한 침묵'도 무슨 말인지 알 듯하였다.


작가의 말을 들으며 수십 점의 작품을 감상하였으니 행복한 날이었다. 얼마 안 있어 열릴 판화 전시회에 걸릴 작품을 미리 다 구경하였다. 지루한 듯 일찍 돌아간 사람도 있었으나, 나는 아주 열심히 경청했다.

화가는 착한 학생이라며 포상으로 그림 한 점 선물로 주셨다.


그분의 작품은 점 하나만 찍어도 비싼 값이고, 의도적인 점이라면 점 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을 텐데 잘 배우고 상까지 받다니 말 그대로 횡재했다.


말 수 적은 스승의 말문이 트이면, 그만큼 이루어내었다는 인정을 받은 것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스승으로부터 한마디를 기다린 노화가의 마음이 얼마나 귀한가? 그런 마음으로 글도 쓰고 다듬어야겠다. 주변의 모든 이로부터 배우고 또 배운다.


우도문학 12월-2022


화가: 김소문/ 작품명: <모성>   

서울예고와 경희대 미대를 졸업했다. 1974년 미국으로 이민 온 후 LA와 뉴욕, 한국 등지를 무대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33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수많은 그룹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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