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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Mar 12. 2023

아버지의 기일

아버지 생각

아버지 가방엔 늘 신간서적이 들어있었다. 우리 어릴 적에는 누런 서류 봉투에 담아 다니셨는데, 내가 결혼한 후 사위(내 남편)가 사우디에 나가 일할 때 사다 드린 브라운 가죽가방을 말년에는 애지중지하시며 옆구리에 끼고 다니셨다. 오늘은 무슨 책이 들어있을까 가방 속이 매일 궁금했다.


토요일밤이나 일요일 새벽엔 나무 도시락에 초밥이나 김밥을 싸서 낚시를 가셨다. 낚시를 못 가는 추운 겨울엔 집에서 붓글씨를 쓰셨다. 그럴듯한 문장이 아니라 청첩장, 인사장, 사주단자에 넣는 혼서지등을 신문사의 선후배 동료들의 부탁으로 쓰셨다. 단정한 글씨체로 인기가 많았다. 우리 집 축하봉투의 삽지도 아버지가 써주고 가신 것을 복사해 20년 넘게 쓰고 있다.


아버지께 미국에서 첫 집을 샀다고 알렸더니, “나는 네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길 바란다.”라고 답장을 보내오셨다. 그 집에서 그 언덕길에서 35년째 살고 있다. 좋은 이웃이란 게 다만 동네사람들에게만 선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그때의 한국은 초봄, 봉분 위에 노란 나비가 한 마리가 날아다녔다. 오늘 이곳은 난데없는 장마로 춥고 비가 온다. 오늘이 아버지 기일이다.


아버지는 아직도 나의 안쪽에 가득하시다.


#아버지기일#늦은 후회#고맙고#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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