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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Mar 23. 2023

아줌마라고

부른 죄

아줌마 유감


이정아


"아줌마"라 불렀다고 지하철에서 승객에 칼부림을 한 30대 여성이 기소되었다는 한국 신문 기사를 봤다. ”아줌마“ 가 이 정도로 듣기 싫은 말이었나?


한국 갔을 때를 가만 생각해 보니 “어머님” “여사님 “ ”어르신“하고 부르지, 대놓고 ”아줌마“ 하는 호칭은 듣지 못한 거 같다. 내가 충분히 늙은 사람이어서 호칭이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경계가 모호한 30대 여성에게 그랬다면 화날만하겠다 싶다. 남에겐 되도록 후한 말을 하는 게 상식이 아닌가.


오래된 농담 중에 남자보다 세고 군대보다 무서운 '아줌마'가 있다는 조크가 있었다. 물론 웃자고 하는 말이겠으나 '아줌마'를 특별한 사람으로 분류를 하는 것이다. 푸근하고 아량 있는 중년여인을 지칭하던 아줌마라는 단어가 많이 비하된 기분을 들게 한다. 그들의 분류법에 의하면, 초강력 파마에 화장과 분장의 차원을 넘는 변장 수준의 단장을 하는 그룹이라고 비아냥거린다.


바겐세일이라면 새벽부터 설치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다하지 않으며, 어딜 가나 본전생각을 하느라 실컷 먹고는 남은 음식은 꾸려와야 직성이 풀리고, 붐비는 곳에서는 핸드백으로 친구 자리까지 챙기는 뻔뻔하고 무교양한 여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나이로나 외모로나 여지없이 아줌마그룹인 나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은근히 부아가 났다. 어려운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의 말장난이거니 하고 치부했었다. 엄마세대에 대한 반발로 만든 치기 어린 농담이려니 하고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관찰해 보니 나를 비롯해 나의 주변에서 그런 일이 자주 목격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찔리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 들어 두 번의 출판기념회와 두 번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출판기념회엔 아무래도 문인들이, 결혼식엔 초대한 쪽과 비슷한 수준의 손님들이 참석하는 것이 상식이리라. 모든 모임에 소위 말하는 아줌마들이 많이 참석했다. 유심히 관찰한 바로는 젊은이들이 표현한 대로의 '아줌마'들이 많았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그들이 글을 쓰는 문인이건 다정한 교인들이건 부유한 상류층의 부인들 이건간에 무교양과 무경우는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 있었다.


#1


어느 모임이건 식탁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꽃이 있게 마련이다. 열명 정도 둘러 앉은자리에 꽃은 가운데 하나뿐이므로 식사 전부터 꽃을 찜 해놓느라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피로연 끝까지 남아있지도 않고 밥만 먹고 가는 실례를 하면서도 남의 테이블의 꽃까지 챙겨가는 '아줌마'들 정말 싫다. 리츠칼튼호텔에서 있던 결혼식에 참석한 타운의 내로라하는 집의 마나님도 교양 없긴 마찬가지. 먼저 자리를 뜨면서 가운데 꽃장식을 가져간다. 키 큰 꽃을 쩔쩔매고 들고 가다 미끄러진 '아줌마'는 웃음거리에 앞서 측은한 느낌을 주었다.


한 모임에선 재치 있는 사회자가 식사 전에 미리 멘트를 했다. 식사 후에 꽃은 그 테이블의 연장자가 가져가라고. 속이 시원했지만 그런 말을 기어이 해야 하는 우리의 수준이 부끄러웠다.


#2


음식도 예외는 아니다. 먹거리가 흔하디 흔한 이곳에서, 다만 공짜라는 이유로 손해 볼세라 경쟁하듯 챙긴다. 집으로 가져가선 며칠 동안 냉장고에서 뒹굴다 버려질 음식들. 호텔의 식탁보에 남은 음식을 뒤 섞어 싸가는 문인도 계시다. 그분의 습관이다. 여러 차례 목격해서 이젠 낯설지도 않다. (그런데 호텔 식탁보는 돌려주실까?)


#3


어느 결혼 피로연에선 음식을 일일이 나눠주질 않고 각자 알아서 덜어가도록 했었다. 통제할 사람이 없었던 탓에 산더미 같은 음식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나. 배불리 먹고 바리바리 싸갔다고들 했다. 사진 찍느라 늦게 온 가족들과 신랑신부는 중국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다 먹었다고 들었다. 창피한 '아줌마'들 때문에.


# 4


주일 교회에 올 때, 아예 찬합을 들고 오는 분도 있다. 배식이 끝난 후 남은 음식을 싸도 싸야 하건만 미리 싸서 숨겨 둔다. 음식이 부족해 봉사가 늦게 끝나 못 먹는 사람이 있어도 모르쇠이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실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줌마가 되고 싶다. 사양할 줄도 양보할 줄도 아는 아줌마도 있다는 걸 보여야겠다. 젊은이들의 우스갯거리에 등장하는 '아줌마'가 아닌지 나 자신을 한번 돌아볼 일이다.



피로연의 꽃 장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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