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이 아침에]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3.10.22 18:19
이정아/수필가
집안에 행사가 있어서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셨다. 비싼 항공료를 부담하고 오신 축하사절(?)들께 보답을 해야겠기에 곰곰 생각해 봤다.
15박 머무는 손님들을 위해 숙소는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에어비앤비를 잡고, 틈틈이 일일 관광은 전문업체에 의뢰했다. 마침 우리 뒷마당에 대추와 감이 풍성히 열려 손님들이 열광했다. 이번 추석에 한국에선 너무 비싸서 못 사 먹은 대추라며 들며 나며 밥처럼 드셨다.
행사 마친 후엔 멕시코 크루즈를 함께 다녀왔다. 4박 5일의 짧은 크루즈여서 말만 멕시코크루즈이지 멕시코와 미국 국경의 엔세나다만 밟고 오는 멕시코 분위기만 잠시 느끼는 여행이었다.
롱비치항을 출발해 카탈리나섬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엔세나다항에 내려 관광지 몇 곳과 와이너리를 휭 돌아보고 오는 싱겁기 짝이 없는 4박 5일이었으나 남편은 남편대로 시누이와 함께 긴 이야기를, 나는 오랜 친구와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혹은 타주에서 일가친척이 와도 서로 바빠 밥이나 한 번 먹고 헤어지는 것이 일반이었는데 이번 크루즈는 뜻밖에 좋았다. 떠나기 전엔 기항지 코스가 별로여서 불만이었으나 볼게 많지 않아 오히려 대화할 시간이 길었다.
배 안에서 삼시 세끼를 제공하니 시간도 절약되고 매일 공동 공간에서 만나 회포를 풀 수 있어 그동안 세월의 간격이나 그리움 앙금등이 다 사라진 기분이었다. 많이 웃고 많이 말하고 많이 즐거워서 모두가 행복했다. 손님 중 한 분인 친구의 남편은 중국 보이차 전문가인데 여행용 다기를 준비해 오셔서 보름 내내 심지어 크루즈 배 안에서도 팽주 역할을 한 덕에 호사를 했다.
한국 손님들이 온 가장 큰 이유였던 혼례식은 구불구불 산골짝에서 했는데 하필 올 들어 가장 더운 이틀에 걸쳐 리허설과 예식을 했다. 아들과 며늘아기가 전적으로 진행하고 부모는 손님처럼 참석한 터라 그저 군말 없이 따르기로 했다. 날씨를 탓할 수도 없고 수십 계단 계곡을 내려가는 식장도 이제와 어쩌랴. 산속에 모기가 극성이라 리허설 동영상엔 손으로 모기 쫓기 바쁜 모습만 찍혔다. 다음날 예식에는 엽렵한 사돈 마님이 모기퇴치 스프레이와 한국에서 공수한 모기향을 피워서 향내 그윽한 혼인식을 했다.
옥에 티라면 아침부터 준비하고 한복을 떨쳐입은 신랑의 엄마가 땡볕에서 기다리다가 일사병으로 신부 대기실에 널브러져 누운 사건이었다. 한복은 참 좋다. 댓 자로 뻗어도 가릴 데 다 가려주는 품위 있는 옷이란 걸 이번에 체험했다.
사모관대 신랑에 원삼 족두리의 신부는 폐백에서 밤 25개 대추 30개 득템에 뜻도 모르고 희희낙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