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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Oct 24. 2023

30년 만에 찾은

낡은 사진첩



이정아


                                                          

친정집에 있던 내 물건들을 들여다본다. 오래전 미국 가면서 맡겨두었던 것으로 졸업앨범, 결혼사진첩 등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미국에 눌러살게 되면서 30여 년 만에 주인을 찾은 셈이다.

 

대학시절의 꽃다운 나를, 결혼식장의 화사한 나를 만난다. 아, 내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지 비로소 기억이 난다. 옛 사진을 보니 웃거나 찡그리거나 간에 젊은 날의 나는 모두 예뻐 보인다. 인물보다도 그 젊음이 눈부신 탓일 것이다. 조카들이 다투어 말한다. “고모, 젊을 땐 예뻤네요!” 지금은 별 볼일 없다는 이 말이 그래도 반갑다. 어려선 ‘크면 예쁠 아이’ 였다가 지금은 ‘젊을 땐 예뻤던’ 이라니 나는 언제쯤이나 예쁠 것인가?


예전엔 내가 예쁘게 나온 사진을 좋은 사진으로 분류했었다. 그러나 그  좋은 사진들이란 것은 나 같지 않게 포장된, 사실은 가짜인 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에도 여고동창들과 예전의 교회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인증사진을 찍었다. 모두들 세월만큼 연륜이 보인다. 이젠 내가 잘 나온 사진보단 모두가 잘 나온 사진을 택해 간직하게 된다. 나이가 주는 너그러움 인가보다.

 

미국에 오래 살면서 간절하게 다시 보고 싶어 했던 한국의 가을을 맞는다. 병원 검사 차 방문한 한국에서 체류가 길어지니 드디어 가을을 만난 것이다. 귀뚜라미 등에 업혀, 뭉게구름과 같이 온다는 한국의 가을. 처서가 지나고 추석이 지나니 아침저녁으론 제법 서늘하고 풀벌레 소리도 들린다. 어느새 가로수가 노랗고 붉게 옷을 갈아입었다.


여고동창들 9명이 모였다. 수학여행 때 같은 방을 썼던 10명의 친구들이다. 40년 넘은 세월을 공유하는 사이 한 친구는 일찍이 세상을 뜨고, 두 친구는 남편과 사별했다. 부모님들은 거의 다 소천하셨다. '나이가 든다는 건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기다리고 있던 슬픔을 순서대로 만나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이 실감된다.


오래된 사진첩을 보면서 이 조락의 계절에 물러남과 사라짐에 대해 되새겨본다.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가을 되니 사라지듯 때가 되면 물러나고 사라지게 되어있다. 명예도 젊음도 우쭐함도 영원한 것은 없다. 앨범 속 많은 인물들은 대부분이 가까이 있지 않다. 내가 멀리 살고 있는 탓에 마음도 멀어진 탓일 것이다. 어떤 이는 가물가물 하지도 않고 전혀 기억 속에 없기도 해서 놀라웠다.

 

어느새 내 인생에도 가을이 왔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오래전 읽은 책의 한 구절을 기억한다. 이 가을에 사람이든 사랑이든 숙고하여 잘 정리하고 싶다. 버릴 것과 취할 것을 분별하여 내 인생의 가을을 아름답게 갈무리해야겠다. 마침내 곱게 나이 든 노년을 맞는 것이 소원이다.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과거의 한 장면이지만 그것이 되살리는 것은 그때와 그 장소를 감싸고 있던 분위기며 그 감정들이다. 지금의 순간순간도 나중에 찾아보면 소중한 추억이기를 바래보는 고국에서의 가을날이다.



2020 가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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