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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Dec 29. 2023

홈리스를 보고

끝없는 욕심을 반성하다



이정아:수필가


회사 야적장의 긴 담과 주차장 사이의 공간은 별로 쓸모가 없는 공간이다.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인데도 외진 곳이어서 직원이나 방문객들은 그곳에 차를 세우지 않는다. 대형 쓰레기통과 기계실 사이는 조용한 공간이 된다.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만 그곳으로 갈 뿐이다.


어느 날부터 인지 모르게 홈리스(무숙자)가 한 명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니 무숙자 에겐 안성맞춤의 장소였으리라. 약간 거슬리기는 했지만 큰 방해도 안될 뿐 아니라, 얄팍한 동정심이 발동하여 싫은 소리 않고 두었다. 여비서 쥬디는 흑인이어서 무섭다고 하기도 하고, 쓰레기 비우러 갈 때 가까이 가면 냄새가 진동한다며 코를 싸쥐곤 했다.


빈 박스를 구해와서 사방을 두르기도 하고 깔고도 자는 모양인지 누런 박스가 몇 개 쌓여있었다. 사무실에 새 의자를 사고 기다란 박스가 생겼길래 가져다주었더니, 박스 안에 들어가 자기에 좋다고 새 침대가 생긴 것 마냥 좋아한다.


돈 안 들이고 좋은 일 한 것 같고, 나의 배려심에 잠시 우쭐하였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빈 상자까지 갖다 바치니 그곳에 살림 차려도 좋다고 허락한 것으로 알았는지 그다음 날 보니 여자 한 사람이 더 늘었다. 아침에 차를 주차하려는데 일부러 쫓아와 인사를 시킨다. 자기 걸 프렌드라나? 며칠 두고 보니 그저 잠시 방문한 걸프렌드가 아니라 아예 동거를 시작하는 걸프렌드인 모양이었다.


여자를 들이더니 살림이 늘기 시작했다. 빈 박스를 여러 겹 쌓아서 침대와 같은 기분을 내더니 어디선가 자동차에서 떼어낸 의자를 주어와서는 응접실도 만들었다. 둘이 앉아 끌어안기도 하고 낯 뜨거운 장면도 연출하더니 잠잘 때 만 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살림을 시작하였다. 2인용 소파도 들여놓고, 먼저 주워온 자동차 의자에 나무로 된 스탠드형 옷걸이까지 세워 두었다. 그러고 나니 주차면적 세 개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자의 살림 솜씨가 좋은지 이웃 마켓에서 슬쩍 해온 철제 카트 에는 옷가지며 슬리핑 백에 텐트까지 살림이 가득했다. 그것도 모자라 카트의 쇠창살마다 비닐주머니에 담은 살림을 주렁주렁 달아 놓았는데 한 주머니에는 바나나가, 한 봉지엔 빵과 음료수가, 또 다른 주머니엔 리사이클용 깡통들이 들어 있었다.


더 우스운 것은 아기용 접는 유모차도 하나 주어다가 카트에 달고 다니는 거였다. 운동화도 매달려있고, 사발시계도 얹혀있다. 움직일 때마다 같이 흔들리는 그들의 살림들은 서로 부딪치며 달그락 소리도 낸다.


나가라고 하기엔 살림이 너무 늘었고 미안하였다. 청소하는 이가 와서 일주일에 한 번 주차장을 물청소할라치면 가구는 둔 채 살림살이를 가지고 건너편에 가서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리곤 한다. 사무실 창 너머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살림이 가득 담긴 두 개의 카트를 밀고 쩔쩔매며 길을 건너는 두내외를 보았다. 차는 마구 오고 가는데 카트가 너무 무거워 잘 굴러가지가 않는다. 보다 못해 거들어 주려는 다른 이에게 몹시 화를 내는 모습이 보였다. 자기 짐에 손도 못 대게 하면서 뺏길까 봐 방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무숙자의 카트에 담긴 짐이 무에 부러워 손을 댔으랴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홈리스가 되었을 땐, 모든 것을 자의 건 타의 건 다 빼앗긴 상태였을 것이었다. 경험을 해보진 않았어도 홈리스라 하면 욕심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날그날 먹을 것만 해결하면 만족할 사람들로 막연히 여겼었다.


거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우리는 도둑맞을 염려가 없으니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컨트롤이 안 되는 것 인가보다. 한뎃잠을 자는 마당에 그저 끌어모으는 무숙자를 보면서 나의 삶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악착을 부려 공연히 지니고 있는 것은 없는지, 무소유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하면서 남들 모르는 숨겨져 있는 욕심은 없는지 생각해 보니 참 부끄러웠다. 우리 집에만 해도 정작 필요도 없는 물건과 물건이 얼마나 넘쳐나는가 말이다. 가구와 가전제품 사이에서 겨우 몸을 비집고 사는 격이 아닌지.

 

주위의 불평 때문에 "방 빼~"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내겐 큰 숙제이다. 시청에 이야기하면 그들은 무숙자 보호소로 수용이 되고, 살림은 청소차가 치워간다고 한다. 그들의 스위트 홈을 깨려는 나의 맘을 눈치 못 채고, 오늘도 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그들에게 "굿모닝~" 했지만 마음은 무겁다.


metro news 1월 2024년


설종보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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