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나무가 왔다
[이 아침에]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4.01.01 17:58 수정 2024.01.01 18:58
이정아:수필가
오래전에 풍수를 잘 아는 이로부터 집 앞에 소나무가 있어야 학생은 공부운이 풀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점사가 아니라 풍수지리여서 크리스천인 나도 별 거리낌이 없이, 그렇다면 소나무 한 그루 심어야겠다 생각했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 라든가 ‘불로장생’의 의미로 한국인과는 이미 친근한 소나무가 아니던가?
거기에 다가 소나무의 꽃말은 '굳셈'이라니 언제, 어디서나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굳세게 해결해 나가고 열심히 공부해 어려운 이웃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는 의지를 상징하고 있다고 나무 심을 때 아이에게도 일러주었다.
내심 아들아이의 공부도 공부지만 나의 글 쓰는 운도 문운이니 그것도 소나무 덕을 보자는 속셈이 있었다. 글재주가 부족하면 운에라도 기대면 어떨까 싶었다. 소나무를 구해 앞마당에 심었다. 그 때문인지 아들아이의 공부도 나의 글쓰기도 잘 풀렸다.
열정과 시간대가 맞은 것이다. 이럴 때 남들은 운이 좋다고들 말한다. 이러구러 세월이 흘러 20년이 넘었다. 그 사이 아들아이는 공부를 마치고 직업을 갖고 결혼도 했다. 나는 나대로 아파서 한국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일 년 정도 글쓰기를 쉬었지만 1998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의 두 신문에 쉼 없 글을 쓸 수 있었다. 소나무의 덕인지 하늘의 보살핌인지 모르나 행운이었다. 문학상도 여럿 받았고 개인 수필집도 다섯 권을 냈다.
번식력 좋은 소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키가 엄청 커져서 공중의 전선과 닿았고 땅 속으로 뻗은 뿌리는 콘크리트를 들뜨게 했다. 온갖 새의 보금자리이기도 하고 나쁜 너구리의 파수대 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지치기와 관리가 점점 어려워져서 베어버릴 때가 온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기 마련이다.
대체할 나무를 눈여겨보다가 예쁜 올리브 나무를 구해놓았다며 소나무가 나가고 올리브 나무가 들어왔다. 소나무 자른 둥치가 덤프트럭 한가득 나가는데 우리 집안의 역사를 다 아는 나무여서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는지 아쉽고 미안했다.
그 자리에 밥캣이 들어 올린 올리브 나무가 안착했다. 오래전 와이너리 구경을 가던 이탈리아의 토스카니에서 본 광경이 생각났다. 집집마다 올리브나무가 있었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올리브 나무를 흔들어 나무 밑에 깔아놓은 담요로 수확하는 장면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나무 사전을 찾아보니 올리브나무 (Olive)의 꽃말은 abundance, peace, glory라고 한다. ‘풍요’’평화‘ ’ 영광‘ 얼마나 대승적 차원의 이로움인가? 인류가 재배한 가장 오래된 나무. 새해엔 이 나무의 꽃말처럼 지구상의 무서운 전쟁이 종식되어 속히 평화가 오고, 나무 옆을 지나는 모든 이웃들이 함께 풍요롭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