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희 수필가의 출간을 축하하며
미더운 글이 주는 즐거움
교회도서실에서 만난 젊은 교인이 반가워하며 묻는다. “신문에서 뵌듯한데 땡땡무늬 옷 그분이 아니냐? “ “맞다”했더니 심심한 이민 생활에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줘서 감사하다며 팬이라고 한다.
교회 옮긴 지 얼마 안 되고 그녀 가족도 같은 시기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여 낯선 환경에서 서로 어울리며 친해졌다. 뒤에 알아보니 대학 후배이기도 했다.
내 남편과 그녀의 남편은 함께 성가대로 봉사하기도 하고, 지금은 탁구동호회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 영문학전공의 그녀에게 글쓰기를 권하였고 후배는 나처럼 수필을 공부하는 이가 되었다.
매주 교회도서실에서 만나 독후감도 나누고 책도 돌려 읽었다. 글 연습을 하여 재미수필에서 신인상을 받고 로컬에서 등단하였고, 7년 후에 그린에세이를 통해 본국 등단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서둘지 않고 내공을 쌓아가며 마침내 문학의 길에서 도반이 되었다.
세상이 바뀌어 물질적인 것들이 주류로 군림하게 되면서 문학은 점차 주변부로 밀려나 버렸다. 사회의 고령화 현상으로 특히 수필은 은퇴자들의 놀이정도로 전락하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요즘 수필잡지에 발표되는 글들에서 절실함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글연습도 없이 단시간에 이름이 나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이도 있고, 이리저리 장르를 바꾸며 불안한 글쓰기를 하는 이들이 많은 세태가 되었다.
안갯속 같은 문학의 길에 자진하여 들어선 우리에게 서로 질문해 본다. “이 길을 가야만 하는가. 이 길을 계속 가려는가? ” 그냥 가려는가, 아니면 흔적을 남길 한 발을 딛으려는가?” 격려인지 단속인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이 길이 물질보다 훨씬 우위의 길이기에 가고 또 가려는 것이 아닐까?
이 길도 운동선수처럼 매일 연습해야 하는 길이고 결코 쉽지 않은 길이란 걸 알았다. 공부할수록 더 어려운 길이 되었다. 수필의 길, 수도(隨道)는 도량에서의 수도(修道)와 다르지 않다는 말을 실감한다.
최숙희 수필가의 초창기글부터 모두 읽어왔기에 어떻게 글이 발전해 왔는지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여러 장르를 넘보지 않고 수필 하나만 붙들고 진지한 고민을 하는 이의 글이 좋을 수밖에 없는 건 자명한 일이다.
문학 전공으로 기초를 다진 단단하고 미더운 문장에, 생동감 있는 삶을 조미한 글을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한다. 심신이 건강한 수필가의 첫 책을 함께 기뻐하며.
이정아(수필가, 전 재미 수필문학가 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