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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Aug 28. 2017

수확의 계절

과일 나무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이 아침에] 정원에서 배우는 공생의 지혜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8.27.15 20:36
    
탐스러운 무화과가 맛있는 단내를 풍기고 대추가 붉게 익어가는 요즈음 주변 사람들의 전화가 잦다. 물론 병치레가 많은 나의 안부를 묻는 겸해서이나, 실은 우리 뒤뜰 과일나무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마치 지주가 소작농에게 묻듯 "내 무화과 잘 있냐? 열매는 실하냐?" 이러기도 하고 "대추는 작년보단 많이 열렸나요?" 하기도 한다. 과일나무가 해걸이를 해서 작년 작황이 나빴으니 올해는 기대가 많다는 뜻인가 보다.

맛있는 자두를 올해는 맛도 못봤다거나 복숭아는 감춰 두고 먹었냐고 하면, 우린 게으른 농부가 죄지은 듯 내년엔 열심히 수확해 꼭 드리겠다며 미안해 한다. 석류와 아보카도, 10월의 감까지 해서 은연 중에 자기 몫의 과일을 찜해 두고서 안부는 끝난다.

우리집은 비탈을 계단식으로 개간해 나무를 심어 그런지, 볕을 잘 받아 과일이 무척 크고 달다. 맛본 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마켓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크기와 맛이라며 열광한다. 미니 농장이어도 과실수의 종류가 많아 관리가 장난이 아니다. 남편은 퇴근 후 매일 내려가 물도 주고 손전등을 비춰가며 들여다 본다. 주말에는 거름 주고 가지 치고 종일 매달린다. 먹는 사람들은 절로 열매가 맺는 줄 알겠지만 말이다.

올해도 많은 이들의 기대가 있기에 열매를 잘 간수해야 여럿이 나눌 수 있어서 수시로 내려가 본다. 잘 익은 무화과는 피그 이터(fig eater)라는 녹색 풍뎅이가 갉아먹어 골치거리다. 대추도 잘 생기고 맛난 건 다람쥐가 갉아먹고 새가 반쯤 쪼아먹다 버려둔 게 부지기수다. 포도는 탐스러운 송이가 예뻐서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청설모가 몽땅먹고 껍질만 수북이 남겨두어서 사진으로만 남았다. 자두도 익으면 따야지 뜸들이다 동물들에게 거의 다 뺐겼다.

열매를 따먹는 동물을 막으려고 남편이 마일라(Mylar) 풍선을 사다가 나무마다 매달았다. 호일로 된 풍선이 번쩍거리면 동물들이 덜 올거라는 조언을 들었다며. 푸른 풍선이 날고 있으니 영문 모르는 이웃들은 멀리서 보고 물어본다. "오늘 파티 하냐?"

풍선을 달고 나서 이틀이 지나지 않아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대추나무 가시에 풍선이 찔린 탓이다. 지금은 감나무에 매단 세개의 풍선만 건재하다. 풍선 값만 비싸게 들고 별 효과는 없었다. 그물로 나무 전체를 쌀까도 했는데 그도 보통 일이 아니고 해서, 남편은 "그래, 함께 나눠먹자"로 마음을 비웠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항상 동물과 먹을거리를 나누지 않았던가?

감을 딸 때는 까치밥이라고 해서 꼭대기의 열매는 남겨놓고, 새참을 먹을 때는 "고수레"하고 외치면서 음식을 땅에 던져 동물과 나누어 먹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몸에 좋다고 하면 동물의 몫은 생각조차 않고 모두 채취해 간다고 한다. 한국에선 등산객들이 도토리를 배낭에 싹쓸이 해서 담아가버려 다람쥐와 청솔모가 굶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들었다.

자연에서 나는 모든 먹거리는 하늘이 동물과 사람에게 준 선물일 것이다. 동행과 공생의 뜻을 생각하며 나눠먹어야 할 것을, 인간의 욕심만 채우려고 동물 퇴치 방도를 이리저리 궁리한 것이 부끄럽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고, 가을이 깊어갈수록 익어가는 열매들. 그걸 나누는 기쁨은 수확의 계절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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