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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의 조앤 Dec 06. 2022

런던에 크리스마스가 찾아오면 1

런던의 식탁 - 포트넘 앤 메이슨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다. 내년, 아니 오래가면 내후년이면 버려질 수도 있고 차마 버리지는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어 평생 박스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하찮아도, 그렇다고 해도 기꺼이 사고 싶다. 크리스마스 에디션 얘기다. 


슈퍼마켓이나 숍에 갔을 때 핼러윈 스페셜 에디션을 마주치면 나는 그때부터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핼러윈은 크리스마스의 전초전 같은 것. 이제는 안다. 11월이 되는 순간 호박과 해골, 유령은 순식간에 매대에서 사라지고 빨강 초록 옷을 입은 온갖 것들이 쏟아져 나올 차례라는 걸. 


유럽인들이 여름휴가와 크리스마스만 바라보고 일 년을 산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유럽인도, 영국인도 아니지만 어쨌든 영국 사회의 사이클에 맞춰 몇 해를 살았다고, 8월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의식적으로 크리스마스 계획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서울에 있었다면 크리스마스보다는 추석과 설 연휴에 맞춘 계획을 짰겠지. 보통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는 혼자, 혹은 누구와 여행을 떠날지, 간다면 어디로 갈지를 생각하며 천천히 그 설렘을 즐긴다. 구글 맵, 스카이스캐너, 호텔 예약 앱을 보면서 순간 떠오르는 이에게 대뜸 메시지를 보내면서. 크리스마스에 뭐할 거야? 마라케시 고? 슬프게도 올해는 아무도 마라케시에 호응해주지 않았다. 대신 사촌동생들과 서유럽 렌터카 여행을 할 계획이다. 핼러윈이 다가오는데 크리스마스 계획을 마무리하지 못했을 때는 불안해진다. 곧 모든 금액이 오를 것이 분명하니까. 새벽녘까지 나를 몰아 묻혀 동선을 짜고 온갖 렌터카 웹사이트를 비교하고 예약을 마치 후에야 평온해진다. 지도를 하도 들여다봐서 이미 여행을 다녀온 기분은 덤. 


2022년 포트넘 앤 메이슨의 쇼윈도 디스플레이



나의 크리스마스 쇼핑은 피카딜리의 포트넘 앤 메이슨 Fortnum & Mason* 에서 시작한다. 시즌별로 바뀌는 쇼윈도 디스플레이가 일 년 중 가장 화려한 때. 300년 넘은 브랜드의 유산에서 길어 올린 콘텐츠가 기발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통해 펼쳐진다. 그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사진첩에 가득 담는 것으로 나는 한껏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시즌용 빨간 재킷을 입은 직원들이 말 끝마다 정중히 'Madam'을 붙여 부르고 매장 곳곳에는 트리와 오너먼트, 크리스마스 에디션 쿠키, 차, 커피, 푸딩, 초콜릿, 잼 등이 가득하다.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 사람의 취향, 이걸 받았을 때 기대되는 표정, 그 얼굴을 볼 때 내가 느낄 행복. 매장 안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나뿐 만이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이 시즌의 포트넘 앤 메이슨을 특히 사랑한다. 가끔은 대뜸 다가가 물어보고 싶은 욕망이 일기도 한다. 오늘은 누구를 위한 선물을 사러 나왔는지, 왜 이걸 골랐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말하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은 정말 아름답다. 수줍고, 순수하다. 눈이 즐겁자고 찾아 오지만 결국은 마음이 잔뜩 포근 해지는 곳. 그곳이 나에겐 윈터 원더랜드고 크리스마스. 





포트넘 앤 메이슨 Fortnum & Mason: 포트넘 앤 메이슨이 300년 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비단 영국을 대표하는 차 브랜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브랜드 아카이브를 활용한 우아하고 독특한 패키지 디자인, 쇼윈도 디스플레이로 포트넘 앤 메이슨의 오프라인과 온라인 매장 재방문을 끊임없이 유도한다. 계절에 따라, 핼러윈데이·부활절·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시즌에 따라 출시하는 한정판 상품은 선물이나 영국 방문 기념품으로 적합하다. 쇼윈도 디스플레이는 마치 입체적인 매거진 혹은 팝업북 같다. 이 디스플레이는 극강의 디테일을 자랑하는데 사람들이 유리창에 바싹 붙어 바라보는 것을 감안한 디자인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은 연간 쇼윈도 디자인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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