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책은 내 삶의 가장 친밀한 동반자였다. 당시만 해도 책과 텔레비전은 미지의 세상을 향해 열린 첫 번째 문이었다. 포르투갈어를 단 한 마디도 못 하던 이민 초창기였지만, 눈에 보이는 만화책부터 잡지, 신문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탐독했다. 그렇게 활자를 쫓다 보니 어느덧 문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행간 사이로 세상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읽는 것 자체가 커다란 즐거움이었기에, 소년 시절 나의 소박한 꿈은 나만의 작은 책방을 하나 갖는 것이었다.
척박한 타향살이 속에서 책을 통해 익힌 지식은 삶의 커다란 자산이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책에서 배웠고, 옛 성현들의 지혜를 빌려 삶의 희로애락을 갈무리하며 고통의 시간을 견뎌냈다. 남들이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저을 때, 나는 할 수 있다며 자신 있게 나설 수 있었던 바탕 역시 책에서 얻은 지혜를 실전에서 응용한 덕분이었다. 내가 평생을 바치고 있는 요리 또한 그 수많은 지혜의 갈래 중 하나였다.
지금과는 달리 한국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던 시절, 우리 문화와 음식을 알리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의 차이를 설명해야 했고, 우리가 어느 땅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부터 가르쳐야 했던 때였다. 책에서 배운 역사와 생활 습관을 엮어 한국을 설명하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먹는 즐거움은 만국 공통의 언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다.
지난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한식을 알리기 시작하며 요리 교실의 문을 열었다. 단순히 조리법을 전하는 것을 넘어, 보다 체계적으로 우리 음식을 소개하고 싶다는 열망에 한식의 원리와 역사를 담은 요리책을 2022년에 출간했다. '한식'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내건 이 책은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2024년에는 상파울루의 문화적 자부심인 마리오 데 안드라지 시립 도서관에 기증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되어 자유롭게 책을 빌려볼 수 있는 이 유서 깊은 공간에 내 책이 놓인다는 것은 작가로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이번에 두 번째 책이 세상에 나오며 다시 한번 도서관 기증을 결심했다. 이번에는 특별히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도서관을 찾았다. 공공 도서관 서가에 나란히 꽂힌 아빠와 엄마의 책을 보여주는 기분이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가슴이 벅차올라 목이 메었다. 아이들에게 서가를 보여주며 우리가 왜 그토록 고생하며 이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조용히 일러주었다.
사실 이 모든 결실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내 모든 저서에는 아내의 이름이 공동 저자로 나란히 새겨져 있다. 세상에 홀로 서는 남편은 없다. 아내가 뒤에서 묵묵히 중심을 잡아주고 발을 맞춰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내의 헌신이 없었다면 이 책들은 결코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부부가 함께 일궈낸 이 기록들이 브라질 사회에 한식을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중요한 역사적 이정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지난 2024년, 마리오 데 안드라지 도서관에서 진행했던 한식 강의는 나에게도, 청중들에게도 잊지 못할 교감의 시간이었다. 서가에 꽂힌 두 권의 책을 보니 그때의 열기가 다시금 되살아나는 듯하다. 조만간 이 유서 깊은 공간에서 다시 한번 한식의 깊은 맛과 멋을 나누는 강의를 열어볼 생각이다. 책방 주인을 꿈꾸던 소년은 이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을 도서관에 남기는 작가가 되어, 세대를 잇는 그 오랜 꿈을 마침내 완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