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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인가 도둑인가? 룰라 그리고 브라질

'그것이 알고 싶다' 대통령 5촌 살인사건을 보고

by 손정수

요즘 한국 정국이 혼란스럽다. 브라질도 항상 어렵다. 좌파 대통령 룰라에 대한 환상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던 때. 한국에서 바라보는 룰라 이미지는 신적인 존재였다. 언론에서도 함부로 룰라를 비판하기 어려웠는데 결국, 꼬리를 잡혀 실형을 선고 받아 구속됐고 후임 지우마 대통령은 탄핵됐다. 요즘 브라질과 한국 정치를 보면 좌우 방향만 다를 뿐 결과는 똑같다는 사실이 놀랍다. 언젠가 비교해 보겠지만 둘 다 여자 대통령이었고 탄핵을 당했으며 외교자원 비리가 똑같고 골수 지지파를 등에 업고 일방통행하다 결국에는 민심에 무너진 것도 똑같다.


아랫글은 요즘 같이 룰라에 대한 글이 넘쳐나기 전 수년 간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한 것이다. 찬란하게만 보였던 룰라 대통령의 과거에 관해서도 썼다. 그리고 요즘 정권이 바뀌며 다시 조사되고 있는 셀소 다니엘 성베르나르도 시장 살인사건은 초대형 사건인데 정권의 압력으로 묻힌 것이다. 이 글은 지난 2013년에 쓴 글이며 정치성향보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으며 원리 원칙을 지키지 않는 리더의 말로는 무엇인지 그것을 바로 알려 주고자 쓴 글이다.





멘살렁(Mensalao) 2002년에 집권한 노동당과 대통령 비서실장, 국회의장 등 실세들이 모여 비자금을 조성하여 국회의원들에게 매달 용돈 형식으로 매수한 사건이다. 지금은 비리의 온상으로 손가락질을 받는 노동당 정부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룰라를 알아야 한다. 한 때 천사.영웅.신적인 존재로 그러나 지금은 도둑이라고 표현된다. 현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 브라질의 대통령 룰라, 빈민 출신, 노동당 당수, 공부도 못했지만 한 국가의 대통령을 지낸 입지적인 인물 등 룰라를 칭하는 명칭은 많다.


그러나 정작 브라질에서는 룰라 반대를 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세상은 공평하게 누구 한쪽 말만 들어서는 안 되지만 일단 룰라의 일생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45년 8월 27일 브라질에서 북동부 뻬르남부꼬주(pernambuco) 까에떼(caete)시에서 8형제 중 7번째로 태어남.

1952년 일거리를 찾는다는 핑계로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와 8 형제 온 가족, 차를 얻어타고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사, 새살림을 차린 아버지 집에서 함께 기거함. 7살부터 길에서 오렌지 팔고, 주말에는 홍합, 게를 잡아 팔아 집에 도움을 줌.

1954년 아버지를 떠나 어머니.형제들과 상파울로로 이사, 12살부터 구두닦이.사무실 보조원 등으로 근근히 일을 함.

1956년 14살 때 처음으로 볼트 공장에 정규직원이 됨. 프레스에 왼쪽 새끼손가락이 끼는 사고로 잘림, 평생 한이 됨. 보상비로 집에 가구와 조그마한 땅을 삼.

1960년대에는 오랫동안 직업이 없었음.

1966년 Villares 금속회사 입사.

1968년 공 차기를 좋아했으나 브라질 공산당 열성 당원이었던 형 주세 페레이라 실바(Jose Ferreira Silva)의 영향으로 금속노조에 가입

1969년 금속노조임원에 선출, 이때부터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정치에 맛을 들임.

1975년 금속노조 대표로 선출.

1978년 다시 대표로 선출되며 전국파업주도. 국가안전법 위반으로 구속, 노조대표 해임 정치적임 힘의 필요성을 느낌.

1980년 사회운동가, 해방신학자, 노조, 지식인 등을 통솔 노동당(Partido dos Trabalhadores) 창설.

1981년 군사정권에서 30일간 구속.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혐의로 판결. 본명 Luiz Inácio da Silva 에서 Luiz Inácio Lula da Silva로 바꿈. 룰라(LuLa)는 애칭이었으나 친근감 있게 들려 인기를 얻음.

1982년 상파울로 주지사 도전, 낙선!

1984년 후일 대통령이 되며 정치적인 원수 사이가 되는 페르난도 엔히끼 까르도소(Fernando Henrique Cardoso) 등과 민주주의 운동인 Diretas Ja 에 동참.

1986년 연방하원에 선출됨 1988년 새 헌법 개정에 동참.

1989년 20년 넘은 군사정권 후 처음으로 시행된 대통령 직선제에 후보 출마. 이때 각종 미디어에서 당시 무너진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낡은 인물 그리고 개인 자산을 빼앗는 인물로 폭격함. 전 애인까지 동원 룰라가 당시 임신했던 딸을 낙태 강요했다고 주장하는 등 인물의 흠집을 냄. 낙선했으나 세계적인 조명을 받으며 정치적으로 거물로 태어남. 남미 좌파를 주무르기 시작함.

1994년 다시 대전에 도전했으나 정적이기도 하고 수십 년 된 초 슈퍼 인플레를 잡은 엔히끼 대통령과 경함, 결과는 패배.

1998년 다시 대선에 도전. 또다시 엔히끼 대통령에게 패배, 또다시 붙는 이미지 도둑, 자산몰수, 공산당.

2002년 유명 광고인 두다 멘돈사(Duda Mendonca)에게 의뢰 룰라 자신을 새롭게 재포장함. 먼저 노동당 로고에서 낫과 망치를 제거함, 빨간색을 분홍색으로 교체, 항상 열성적으로만 보였던 이미지를 양복으로 깔끔하게 입고 넥타이를 매고 나옴. 정치색도 중도좌파 그리로 우파를 두루 섭렵함. 당시 여당의 강한 후보였던 주세 쎄하(Jose Serra)를 물리치고 드디어 대통령에 당선. 선서식에서 울먹이며 유명한 말을 함. "평생 (고등교육)졸업장 하나 없던 내가 받는 첫 번째 증서가 바로 이 나라 대통령이구나".

여기까지가 간단한 룰라의 일대기이다. 내용을 보면 정말 극적이다. 배경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그 어려움을 이겨낸 성공 이야기다. 룰라가 태어난 지역은 브라질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인 북동부 지역이다. 북동부 지역은 포르투갈 왕정 시대부터 유럽과 가깝다 보니 일찍 깨우친 신지식인들이 몰려 살며 독립운동을 많이 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로부터 버림을 받은 지역이며 수백 년간 지속한 차별정책으로 산업이 없고 또 멀리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은 토지를 사막화시켜 물도 없는 황무지 지역이다. 1년 강우량은 너무 적고 땅은 황폐해서 먹고 살기 힘든 이들의 고통은 멀리 아프리카 오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니다. 이런 각박한 지역에 살던 주민은 자존심이 강하고 백인계임에도 불구하고 못 먹어서 키가 작지만 가족 단위로 똘똘 뭉쳐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고향을 등지고 다른 지역으로 일하러 간다.


특히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20세기부터는 상파울로, 리우데자네이로 등 대도시로 대거 이동하여 청소부 잡일 등으로 먹고 살아간다. 산업 밑바닥에서 생활하며 끈끈한 가족주의로 성장한다. 이들의 단결심은 못 사는 지역에서 벗어나 잘사는 지역에 와서 느끼는 박탈감. 사투리와 외모에서 받는 차별화로 극심한 이기주의가 발달하고 싸움이 일어나면 온 형제.가족.친지들이 힘을 합친다. 룰라 가족도 이러한 도심을 벗어나 고향을 등지고 당시 브라질 전국 산업의 70%를 생산해내던 상파울로로 위성 도시로 이사한다.


성베르나르도 공업 도시에 온 룰라는 공장에서 일한다. 월급 받으며 일 하지만 단순 노동자로 성장의 한계를 느낀다. 룰라가 한창 일할 60~ 70년대는 최고의 공업과 성장 시대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서슬이 시퍼런 군사정권의 세상이였다. 이런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노조와 노동당 설립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한국의 옛 군사정권 시절 남산행과 같이 특별경찰의 표적이 되면 암살은 물론 징역과 고문을 받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련을 이겨내고 힘과 목소리를 모으는 저변은 대단하다.


배우질 못했어도 특유의 뚝심과 언변으로 사람들을 모아 1980년 노동당을 창설하는데 사실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교수와 지식인의 지지 아래 나선 것이다. 일부는 무식해서 그냥 앞에 세운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그래도 대단합니다. 다행히 군사정권이 1984년도에 공식적으로 끝나고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89년, 직선제 첫 대선에 후보로 출마한다. 노동자와 저소득층에 대한 목소리를 모으고 지지를 모아 부패에 대항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걸고 출마한다.


당연히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지만, 머리와 수염은 더부룩하고 소매를 걷고 굵은 목소리로 “동지들이여 모두 함께 나눌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소리를 내치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는 전혀 준비가 안 된 듯한 모습, 그리고 과격한 파업을 주도하던 모습이 겹쳐진다. 당시 벌써 무너지기 시작한 공산당을 상장하는 빨간 깃발에 낫과 망치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보여 흔드는 것은 사람의 지지를 끌어내지는 못한다. 당시 기성세대와 대부분의 국민은 노동당과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여당의 물량공세에 휩쓸려 페르난도 꼴로르 대통령이 당선된다. 결과적으로만 봤을 때 젊은 기수였던 꼴로르 대통령은 무역개방.혁신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며 1992년 탄핵된다. 이때부터 노동당은 항상 30%의 지지율을 받는다. 브라질 선거방식은 직접 선거에서 51%의 과반수를 차지 못하면 상위 1.2위가 결선으로 가는데 가장 많은 득표를 하면 이긴다. 결선이 결정되면 군소 정당은 물밑 협상을 벌인다. 소수 좌파 정당은 아무리 지지해줘도 2차 결선에서는 절대적으로 우파를 이길 수 없는 구도가 형성된다.


하여간 이후 94년과 98년도에 두 번 더 출마한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똑같이 떨어지고 만다. 아무래도 국민은 좌파에 대한 무지가 컸고 노동당을 필두로 하는 브라질 노동당(PTB), 브라질 공산당(PC do Brasil), 공산당(PC)등도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정책을 내세워 국민들에 반감을 산다. 이 중에서도 몇 개 공약을 보면, IMF 추방, 전 기업들의 국영화, 균등분배 등 위험한 발상이 전부였다. 처음부터 불평등하게 시작했으니 모든 분배를 다시 하자고 주장한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 국민의 대다수는 호응하지 않고 특히 은행.기업은 기겁한다.


그럼 어떻게 해서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는가? 벌써 3번이나 대선에 출마했지만 확실한 결과를 얻지 못한 룰라, 1998년 대선에서 낙선한 후 노동당 당수직도 던지고 공부에 집중한다. 정치에 미련이 없고 일반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노동당과 노조에서는 대체 인물을 찾아 나서나 워낙 카리스마 있었던 룰라를 대표하는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같은 좌파 안에서도 여러 파를 어우르는 인물이란 더욱 없었다. 결국, 2002년 대선에 룰라가 후보로 돌아온다.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룰라 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내놓아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룰라가 대선 후보로 나선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단단히 준비한다. 먼저 원단.원사를 생산하는 기업가 주세 알렌깔(Jose Alenca)을 찾아간다. “난 더는 노조위원장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 나갈 사람입니다. 같이 세상을 바꿉시다”. 나이 많고 성공한 기업가 주세는 당장 손을 잡고 부통령 후보에 나선다. 노조 출신과 기업가, 절대 어울리지 않을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


두 번째로 유명 광고맨 두다 멘돈싸를 영입한다. 두다 멘돈싸(Duda Mendonca)는 말루피 전 상파울로 주지사의 선거운동을 도운 유명한 광고인이다. 선거는 정치뿐만 아니라 마케팅 즉 홍보가 중요한 것을 파악한 룰라는 두다를 찾아가 끈질기게 구애작전을 펼친다. 룰라의 카리스마에 설득당한 두다는 이기기 위해 몇 가지 제안한다. 먼저 양복을 입도록 한다 노동자와 저소득층을 대표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표 만을 가지고는 당선될 수 없기에 과감히 양복을 입고 넥타이는 붉은색에서 분홍색으로 부드럽게 한다.


머리와 수염도 다듬어 나이 먹은 친근한 이웃 아저씨처럼 탈바꿈한다. 가장 중요한 노동당 상징 즉 별도 분홍색으로 바꾼다. 이런 이미지 변신은 반감을 누그러뜨린다. 모든 행동과 말에서 과격한 표현을 버리고 중도좌파를 껴안아 친근한 사람을 강조한다. IMF와는 당선돼도 모든 계약을 이행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당시 여당이며 전임 대통령 엔히끼 대통령과 연립정당을 구성한 브라질민주운동당(PMDB)과 손을 잡는다.


당시 정세는 수십 년 된 고인플레이션을 잡아 물가를 안정시켰고 호황을 즐겼으나 1999년 IMF를 재신청 하는 등 경제문제가 있었다. 국민은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전국적 가뭄으로 수력발전소 가동률이 일어난 전력 파동으로 불만이 있었다. 자원도 많고 인구도 많은 브라질이 왜 이리 어려워졌는지 그리고 왜 외국에 돈을 줘야 하는지 이제는 한 번 바꾸자는 분위기가 퍼진다. 이를 눈치챈 PMDB는 승부수를 던진다. 정작 자기들이 속한 연립정당에서 바로 오랜 정적인 노동당과 손을 잡는다.


그리고 엔히끼 대통령의 정당인 브라질사회민주당(PSDB) 를 비난한다. 여담이지만 이 PMDB가 옛 군사정권을 지지하던 출신 즉 여당이었으며 돈 많은 정당이다. 2016 지우마 탄핵 당시 또 승부수를 던져 떼멜 부통령은 노동당과 결별하며 탄핵당한 대통령을 이어 브라질 대통령에 취임한다. 역사는 빠르게 변하는 사람만 살아남는데 그 후 정작 떼멜 대통령도 비리로 구속되는 등 파동은 계속있다. 역시 진실은 밝혀지나 보다. 하여간 룰라는 중도좌파라고 수없이 말하며 친기업 정책을 선언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상파울로 상공업연맹. 브라질 변호사 협회의 지지를 하나씩 거두어들이고 드디어 선거를 치른다. 뚜껑을 열고 보니 장장 4번 도전 끝에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된다. 당시 신문을 보면 룰라 자신보다는 국민, 특히 저소득층의 환호가 생생하다.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드디어 세상이 바뀌어 '우리의 세상이 왔다. 드디어 분배의 시대가 왔다'고 환호한다. 일부 과격파는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은 사람 중 몇 명은 대통령궁에서 식기나 집기를 들고 가려는 등 분배에 집중하라고 한다.


이제 국민의 나라이니 기업의 돈을 빼앗아 균등분배하자는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말한다. “모두 순서가 있고 예전과 같이 나누자고 하면 이 나라 망한다. 조금만 참자”. 그렇다. 우둔한 국민들은 새 세상이 온 줄 알았는데 바로 탈바꿈한 룰라에게 처음으로 배신감을 느낀다. 룰라는 친기업정책을 남발하고 급진적인 좌파들은 배신자라는 말을 처음으로 내뱉으며 거리를 둔다. 대통령에 취임한 룰라는 이들을 달래려 몇 가지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는다.


먼저 외교부 고시에서 필수과목 중 영어를 뺀다. 즉 브라질과 거래하려면 포르투갈어를 배워오라고 한다. 자존심 살리는 정책 같지만 결국 고립되는 위기를 가져온다. 고위 공무원 고시에는 대학 졸업을 안 해도 되다는 조건을 내렸다. 공부 못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몇 가지 사람을 깜짝 놀래키는 일은 세상을 정말 뒤집아 놓는다. 얼마 전만 해도 벌이도 없던 오랜 노조 친구를 국영 기업으로 보낸다. 비전문가인데 전문직에 임명한다. 물론 이 일로 국영기업 운영과 정책은 모두 한 걸음씩 뒤로 후퇴한다.


그래도 2002년부터 시작된 경제호황으로 브라질 국민은 먹고사는 것에 큰 지장 없었다. 1차 산업, 광물과 농산물 수출로 돈을 많이 벌었다. 호황기에 국민은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어 정치에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룰라는 이 시기를 자기가 정치를 잘해서 그랬다고 지금도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룰라가 발표한 정책은 모두 전임 대통령이 기획하고 시행하던 것을 이름만 바꿔서 내놓은 것이다. 큰 공사는 모두 착공이나 아니면 시작도 못 하고 만 것이 수두룩하다.


즉 아무것도 바꾸고 만들고 이뤄 놓은 게 없다는 것이다. 그저 세계가 호황이라 돈이 돌고 돌아 브라질 국민들도 혜택을 본 것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불황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룰라 대통령이 잘했다면 브라질은 잘 살아야 하는데 바로 실직률이 높아지고 결국 돈맛을 안 국민만 어려워졌다. 2002년 초에 상파울로 인근 도시인 성베르나드로의 쎌소 다니엘(Celso Daniel) 시장이 납치 된 지 이틀 만에 총상을 입고 시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단순 납치 사건으로 보고 수사했는데 파헤칠수록 노동당과 연계된다.


즉 납치된 날 타고 있던 차량은 쎌소 시장 친구 방탄차였고 정작 차 주인은 납치를 피했다. 며칠 동안 수사를 보완한 경찰은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사건 장소에 있던 친구를 지목한다. 그 친구는 성베르나드로 시에서 버스회사를 운영하며 자금을 만들어 노동당에 보냈는데 새로 취임한 시장이 이를 발견하고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즉 이 친구는 저녁을 핑계로 시장을 불렀고 강도들을 따로 불러 납치하도록 한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특별한 것이 없는데 문제는 이 친구가 빼돌린 돈이 노동당에 정기적으로 기부됐다는 것이다.


쎌소 시장의 가족과 형제들은 이 돈 뒤에 룰라가 있다며 수사를 넓힐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우선 납치범과 은닉 장소를 제공했던 범인 2명이 의문의 암살을 당한다. 즉 누가 사건을 지시했는지 더는 알 수 없다. 사건과 연계된 것으로 지목된 현직 경찰관도 집 문 앞에서 총격을 받고 죽는다. 시장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접대한 식당의 웨이터, 즉 이날 누구와 있었는지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도 죽는니다. 더 희한한 건, 이 웨이터 살해장면을 목격한 증인도 며칠 후 총격을 받고 암살당한다.


시장의 시체를 처음으로 발견한 경찰 또한 시체의 옷과 발견 당시 모습을 증언했다가 두발의 총격을 받고 죽는다. 그리고 고문의 흔적이 있다고 보고한 검사관도 사무실에서 총격을 받고 죽는다. 우연한 일치치고는 7명이 연달아 죽었다. 더는 떠들면 다칠 것을 알아챈 시장의 형제는 조용히 뿔뿔이 도망간다. 협박을 받고 외국으로 망명한 형제도 있다. 위의 사건을 보면 우연한 일개 사건일 수 도 있지만 그래도 노동당과의 연계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 노동당은 항상 돈이 없었다. 노조원이 내는 돈으로 당을 운영하던 상황에서는 위와 같은 거미줄 같은 비리가 많았다. 그러나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돈이 흘러넘쳐 들어간다. 노동당 출신은 조직적으로 이 돈을 빼내어 간다. 돈이 많은 지주로 구성된 정치인을 비난하던 자신들이 이제는 바로 그 자리에 올라가자 개인이익을 누리기 위해 엄청난 일들을 저지른다. 룰라 대통령 정부 초기만 해도 자산이 하나도 없던 사람이 지금은 수백만. 수천만 불의 자산가로 둔갑했다.


이게 바로 역설적인 노동당의 문제다. 자기들이 그런 사람들로 변한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비리를 모두 열거하기에는 너무 힘들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은 바로 맨 위에 열거된 멘살렁이다. 맨날 야당만 하다 여당이 되자 노동당은 할 일이 없어진다. 비판만 하다가 갑자기 정책을 만들려고 하니 좀 헷갈린다. 그래도 열심히 정책을 내놓으면 야당 의원들이 야유를 퍼붓고 협조를 안 해준다. 이에 표를 끌어모으고자 브라질노동당(PTB)등 의원에게 매월 당시 15만 헤알을 준니다.


그러기 위해서 국영 은행을 사용하여 자금을 끌어모은다. 결과는 40명이 연계되는데 여기에는 전임 국회의장, 대통령 비서실장, 노동당 당수 등 오랜 룰라 친구이자 핵심인물이 있다. 이들은 정치하려고 돈을 모은 것이고 나눈 것이기에 불법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정당을 위해 비자금을 만들고 나눠 준 것이기 때문에 개인비리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오랜 노동운동으로 정신들이 마비된 것이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기는 커녕 우스갯 소리로 회자된다.


희한하게 룰라 자신은 정작 모든 비리를 비켜 간다. 그렇다고 몰랐을리는 없다. 오히려 조용히 있다가 연방법원에서 판결을 받자 연루자들이 잘 못했다고 지적한다. 위의 모든 거물을 보더라도 대통령이 몰랐을리는 없다. 즉 대통령의 인가 없이는 이들이 이런 일을 실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살려면 대통령을 보호해야 하기에 조용히 있다. 이후 지우마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라바자또(lava jato)사건은 더욱 크다. 세계적인 기업이었던 브라질석유공사에서 곶감 빼먹듯 돈을 유출한 것이다.


또 룰라도 전국 대형건설사로부터 뒷돈을 받은 것으로 밝혀지며 실형을 선고 받았다. 수 많은 돈의 출처를 묻자 죽은 아내가 외판원으로 모은 것으로 모른다고 발뺌하기도 했다. 지금도 노동당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이미 그의 명성은 다 까발려졌다. 수많은 지지자도 등을 돌렸고 살려고 거짓말과 헛소리 하는 그의 모습에 진저리 치는 사람이 많다. 그래도 아직 그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도 있다. 역사의 판단은 시간이 지나야 하는데 특히 실존인문에 대한 것은 오래 걸릴 것이다. 시간이 지나야 진실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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