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모닝 11일차
기상시간: 4:30 AM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는 직장으로 이직한 뒤, 내 삶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6시 반에 집밖으로 나오면서도 발을 동동구르며 지하철을 놓칠까봐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되는 일. 북적이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과 닿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일.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제발 내렸으면 하고 속으로 기도하는 일. 화장하는 시간이나 오늘 뭐 입지? 같은 사소하고도 중요한 일에 더이상 마음을 써도 되지 않는 일. 기타 등등등 모든 출퇴근의 번뇌가 사라졌다.
조금더 잘 수 있고, 화장하지 않고 편안한 복장으로 출근할 수 있다니. 너무나 매력적이다 못해 행복하기 까지 한, 재택근무 라이프가 너무 좋았다.
사실, 재택근무하는 직장으로 이직한 것은 아이 때문이었다. 새벽 6시에 눈도 못뜨는 아이를 깨우고 억지로 옷을 입혀 카시트에 태우는 일은 정말이지 못할 짓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나마 시댁의 도움으로 여지껏 연명해왔던 일이었다.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던 길은 또 왜 이렇게 고단하던지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지? 라는 물음이 따라올 때마다 나는 좌절했고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며느리로서도 직원으로서도 어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은 나를 자꾸 밑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다 잘할 수는 없지, 다들 이렇게 살아.' 라고 마음을 다독여봐도, 다들 정말 이렇게 사는걸까? 어떻게 견뎌내는 걸까? 라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일 밤 나를 짓눌렀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으로 옮기고 우리 가족의 삶은 부드럽게 굴러갔다. 아이를 푹 재우고 등원 시킬 수 있었고 심지어 남편의 아침도 챙겨줄 수 있었다. 나도 출퇴근에 소모되던 체력을 내 안으로 집중시키면서 삶이 윤택하게 달라지는 듯 했다. 번아웃이 오기 전까지는.
이직한 직장은 재택근무를 하는 대신 업무의 강도가 매우 높았다. 의자에서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업무가 휘몰아쳤고 화장실 가는 것도 잊었다가 퇴근 후 긴장이 풀려서야 겨우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이 하원 시간을 잊고 몰아치는 업무를 처리하다가 하원 버스 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적도 있을만큼 여유가 없었다.
나는 점점 휘발되고 있었고, 주말근무까지 매주 지속되자 더이상 못견디겠다고 선포했다. 남편은 가만히 지켜보다 그만두라고 말을 꺼냈고, 나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만 둘수는 없었다. 퇴직금 문제와 대출금(망할) 문제는 그만둔다고 결심한 나를 자꾸 흔들어댔다. 당장은 그만 둘 수 없으니, 나를 달래려고 시작했던일이 미라클모닝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책을 읽는 일로 시작한 단순한 일은, 나를 매일 아침 브런치에 글을 쓰게 만들고 있다.
5월부터 시작한 일이 벌써 3달이 지났다. 신기하게도 나는 미라클모닝을 시작한 뒤로 나는 더이상 휘발되지 않고 있다. 기체로 흩어지지 않기 위해 적어내려가는 이 글이 나의 휘발점을 높여주고 있다. 다시 삶의 바퀴가 돌아간다. 오늘도 잘 버텨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