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는 자꾸 영아때 떠났던 여러 형제들 중에서 잘 살아내라고 '순할 순' 자와 '아들 자'자를 이름으로 받으셨다.
진짜로 부모와 주변의 믿음과 사랑을 듬뿍 받는 자랑둥이셨단다. 외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들리실 때마다 " 니 엄마를 믿고 살았다. 네 엄마는 내가 믿어" 라고 하셨다. 625전쟁때 출산후 의료사고로 급사하신 외할머니를 많이 닮아서 더 애잔하셨으리라.
경황없이 친척들의 주선으로 맞은 새외할머니는(부인을 무척 그리워하셨던 외할아버지 덕분에), 영특한 어머니의 학업을 중단시켰고 월급 3달치씩을 가로챘단다. 며느리로 인기있던 둘째딸을 부자집에 시집보내 호강받고 싶어했던 계모는, 언니가 소개한 남자에게 시집 가려는 어머니를 매몰차게 저주했다.
친정아버지의 만류에도 언니형부의 말을 믿고 계모를 벗어났던 어머니는, 전라도 7남매의 맏며느리가 되셨다.
가풍과 경제력이 친정과 너무나 달랐던 시집풍경과 상황파악없이 자존심 강한 남편에 지쳐서, 강물에 뛰어들려 했던 어머니는 첫아이 때문에 살아야 했다신다.
그래서 간혹 " 너 때문에 못 죽고 살아서 이 고생을 한다 "고 하셨다. ( 에이~ 그래도 저승보다는 이승이라는데^^♡ )
그리고 남동생 둘이 태어났고, 야무진 살림과 외유내강의 신념으로 남편과 시집의 빚을 갚아 내며 자수성가 하셨다.
대책없는 욕심쟁이 을해생 남편을, 돌아가신 외할머니처럼 왕처럼 모시고 살았던 울어머니. 이제는 본인도 여든셋의 나이로 등이 굽으셨고, 매일밤 앓는소리로 잠꼬대를 하신다.
살면서 다쳤던 마음과 신체들 때문에 밤마다 통증에 겨워 하시는 거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어머니의 시계를 결혼전 24살 꽃처녀로 돌려 놓고 시간을 기록해 드리고 싶다. 시간의 발자국을 바람처럼 날려 보내면서 바위같은 한숨들이 풀려 나와서, 꽃으로 다시 피어났으면...
그렇게 남은시간들은 ' 순자의 전성시대 '로 남겨지고 기억되도록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