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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rA Jun 17. 2023

계획형 엄마의 반성문

반듯하고 가지런한 시간표를 좋아한다. 내게 주어진  일들이 깔끔하고 정돈된 채로 흘러가기를 원한다. 생각지 않은 운을 크게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성실함과 근성이 만들어낸 괜찮은 결과를 기대한다.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것보다는 매 순간을 밀도 있게 꽉꽉 채우는 것이 좋다. 그러다 어떤 형태의 성과에 잠시 우쭐다. 남들보다 시작도 늦고 가속을 위한 예열의 시간도 상당히 걸린다. 그런 과정 안에서 자책하며 속을 꽤나 지만, 결국 끝까지 간다.


이런 나를 다르게 풀어보면 이렇다.


뭐든 계획해야 한다. 무턱대고 일어나는 일에 대해 취약하다. 불확실성이 제일 싫고, 만약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질 때대처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즉흥적이진 않지만 순발력없다 보니 미리 준비하기 위해 매 순간 에너지를 쏟다. 성실하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작은 결과라도 얻기 쉽지 않다. 소심한 관종이 과정 속에서 작은 인정은 필수다. 지금을 즐기기보다는 항상 시선 미래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현재가 늘 바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동물은 개구리다.

어릴 적 과학수업 해부시간 때 마주친 개구리의 기괴한 표정과 큼큼한 냄새, 미끄덩거리는 피부, 사방으로 뻗어 굳어버린 사지(왜 굳이 개구리 해부만큼은 친절하게 체험수업이었는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여하튼 그때 악몽 같은 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다름 아닌 예측불가능한 개구리의  움직임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리의 불확실 동작이 개구리의 징그러움을 더욱 증폭시켜 나를 철저하게 무기력하게 만다.


이런 성향내가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다.

단언할 수 있다. 육아의 영역은 불확실성의 최고봉이다. 계획과 준비로 무장할 수 있는 그런 영역이 아니다. 물론 매 순간 물질적, 물리적, 정신적 에너지를 갈아 넣어야 하지만,  성실함과 근성만으로는 한없이 부족하다.


불확실성을 극도로 싫어하는 난 아이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준비하고, 계획하고, 그러면서 잔뜻 날을 세우면서 아이를 키워왔다.


다행히 아이는 개구리 같은 녀석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예측 가능한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몸도 마음도 눈에 띄게 성장하면서 이상하게 난 녀석의 고단함이 느껴졌고, 이를 모른 척 지나칠 수 없었다.

 

생각에 빠졌다. 아이는 미지의 세계 이곳저곳을 궁금해하며 자유롭게 뛰어보고 싶은데 그때마다 내가 단단한 벽을 만든 건 아닌지, 나와 성향이 비슷하다고 단정지은 채 아이도 매 순간 너무 열심히 살기를 강요한건 아닌지, 내가 만든 계획에 확신도 없으면서 마치 그게 정답인양 아이에게 강요한건 아닌지...


엄마 때문에 내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지? 자기를 제일 모르는 사람은 엄마였다고 하면 어쩌지?

 

어느 하루, 아이한테 말을 건넸다.

"아들! 지금 제일 해보고 싶은  뭐야?"

"음... 있긴 있는데..."

"뭔데?"

"시험 볼 때, 잘 봐야겠다는 부담 없이 마음대로  아무 번호 시원하게 찍고 남은 시간 쿨쿨 자보는 것!"

"...?"


내 아이는 개구리일지도 모른다. 나만 몰랐던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심도 된다. 나보다 훨씬 유연하고 배짱 두둑하고, 그리고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내가 예측하지 못해도 좋다. 멋지게 도약하기기대해 본다. 자신의 꿈을 향해 뜀박질하는 개구리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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