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요정의 『이직이야기』 3

3. 역시 먹고살려면 기술이 있어야 해

by 이직요정

개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선택하게 된 나의 첫 이직지에서는 개발은커녕 기획조차 하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IT 회사라고 했던 그 회사는 온라인 유통회사에 더 가까운 모양새여서 혼란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회사 주변 환경이 좋았고, 해외까지 나왔는데 차라리 이 근처 다른 회사를 찾아보자는 마음에서 일단 버티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10년 경력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한 분 계셨는데,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했고 감정에도 숨김이 없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회식자리였다. 대표가 이것도 먹어보라며 디자이너 접시에 음식을 놔줬다. 그랬더니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제가 알아서 먹겠습니다" 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와, 나도 저 정도는 아닌데. 까칠하시네. 멋있는데? 나도 저럴 수 있을까?'

그 뒤로 디자이너의 언행을 주의 깊게 지켜보게 됐는데, 정말 거침없었다. 그렇다고 무례했던 것도 아니다.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고, 대표도 꼼짝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경력도 많았고 실력도 좋았다.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니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서 나는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인력이었다. 그래서 대표는 제멋대로 나의 포지션을 바꾸고, 처음 계약 시에 말했던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시키곤 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 업무 외의 다른 일을 시키면 바쁘다며 절대 하지 않았지만, 특정한 일이 없었던 나는 시키는 일들을 해야 했다. 그게 창고에서 화장품 박스를 정리하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참아왔던 나의 인내심은 사무실에서 소리까지 전달되는 감시용 웹캠을 발견함으로써 바닥이 났다. 그 웹캠을 내 핸드폰으로 촬영했고, 이후로 더 이상 회사에 나를 맞추려 하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고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았으며 내 일을 마치면 칼같이 퇴근했다. 그런 나의 눈치를 보며 매일 막내만 불러다가 내가 왜 웹캠을 찍어갔는지 추궁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렇게 내 눈치를 보기를 몇 날 며칠, 실장이 날 부르더니 다른 지사로의 이동을 제안했다. 코웃음이 나오며 '니들이 지사가 어디 있냐'고 비웃어주고 싶었지만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했다(월급 정산 전이었다).


실장과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디자이너가 나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은데 나만 잘랐다? 왜?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내가 잡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를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기술을 가진 그를 대신할 사람은 구하기 힘들다는 것. 그래서 결심했다. 나도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되겠다고, 기술을 배우기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개발자가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사실 꼭 기술직이 아니어도 대체 불가능한 인력은 얼마든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버텨야 한다. 그것도 꽤 오랜 시간을. 나는 긴 시간을 한 분야에 쏟을 자신이 없다. 그러기엔 포기해야 할, 또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이 아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엔 힘들어도 비교적 발전이 빠르다고 생각되는 기술직을 택하게 된 것이고, 아직까지는 잘한 선택이라고 느끼는 중이다. 그리고 해외로 나가서 살고 싶다는 목표도 있기 때문에 나중에도 더욱 유용하게 쓰일 듯싶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버티고 있는 모든 직장인들을 응원하며, 당신의 성공적인 이직을 기원합니다☆




이번 편에서 언급한 회사에 대한 에피소드는 아래에서 자세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직요정의 『퇴사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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