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직 준비는 재직 중에
앞선 『퇴직 이야기』 시리즈를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나의 첫 직장은 망했다.

회사가 망할 때는 어느 날 갑자기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징조들이 나타난다. 특히 규모가 작을수록 더 잘 보이는데, 그 징조 중 확실한 하나는 월급이 밀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경영난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면 좋겠지만, 이 회사의 경우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많이 희박해 보였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탈출해야 했다. 어차피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받기 힘든 월급, 사장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다음 달엔 주겠지...'하며 버틸 것이 아니라 빨리 그만둬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이직할 곳을 정하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원해서 면접도 보고 확실하게 입사 확정을 받아야 한다. 나는 직장 선배를 통해 회사의 자금이 거의 떨어졌다는 정보를 듣고 바로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입사 3개월 만의 일이었다. 몇 줄 안 되는, 사실 쓰기도 민망한 경력이지만 그래도 새롭게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여기저기 열심히 입사지원서를 넣었다. 짧지만 그래도 경력이라고 이전에 비해 여러 게임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 볼 기회도 자주 주어졌다. 왜 벌써 이직을 하려냐는 질문도 꽤 많이 받았는데, "회사가 망할 것 같아요..."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숙연해졌다.
나는 게임 기획으로 커리어를 쌓을 것이라는 처음 계획과는 달리, 개발자 겸 기획자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중국에 위치한 IT 회사를 선택했다. 이 선택에는 꽤 많은 요소들이 작용했는데, 무엇보다도 아직 개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컸다. 다음으로 연봉도 맞춰주면서 숙소와 식대 등을 지원해 준다고 한 것과, 외국어를 향상시킬 기회가 있다는 것 등도 마음에 들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구두로만 진행되어 찝찝함도 있었지만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입사를 확정 지었다. 입사일을 정하고 나면 이제 드디어 회사에 퇴사 의사를 전달할 타이밍이다.
돌아올 기약 없는 여행을 앞두고 있거나 건강상 큰 문제가 있다면 일단 회사부터 그만두는 게 맞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외의 다른 이유라면 절대 퇴사가 먼저 되어선 안된다. 재직 중 이직 준비와 퇴사 후 이직 준비는 자신감의 정도부터 다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면접에 임하는 나의 자세를 좌지우지하고, 면접관에게 주는 인상에도 큰 차이를 만든다. 여기에는 아주 뚜렷한 근거가 있다.
1. 나 지금 회사 다니고 있어. 여기 오면 좋겠지만 안 와도 그만이야.
2. 나 지금 회사 다니고 있어. 어딘가에 뽑힐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퇴사를 먼저 하는 경우에는 기쁨과 해방감도 잠시, 며칠 쉬고 나면 불안과 걱정이 밀려온다.
1. 내가 왜 대책 없이 그만뒀을까.
2. 내가 다른 데 갈 수 있을까..
3.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날 뽑아 줄까...
4. 다음 달 카드 값은....
5. .....
끝도 없이 이어진다. 지금 말은 이렇게 이성적으로 해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 잘 알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조금 더 버티면서 빨리 이직 자리를 알아보자. (절대 버티기만 해서는 안된다!)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 자리를 알아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회사 일도 바빠 죽겠는데 웬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신경 써서 하기 힘들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직 준비에 들이는 시간과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입사와 동시에 이직 준비를 한다(속닥속닥). 그렇다고 내가 입사를 하면서 '여기도 빨리 그만둬야지~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나도 괜찮고 좋은 회사 오래 다녀보고 싶고, 퇴직금이란 것도 받아보고 싶다. 근데 워낙 이상한 회사들을 많이 거쳤기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이직 준비라는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매우 간단한 것들이다.
1. 이력서에 새로운 직장 및 직무, 근무 시작일 입력
2. 자소서의 경우 '현재 ㅇㅇ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와 같은 문장을 수정
3. 지난 직장에서의 세부 경력 사항 추가 및 수정
길어봤자 10분도 안 걸리는 작업이다. 이제 열심히 새 직장을 다닌다. 재직 중에는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틈틈이 포트폴리오를 만들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 정도만 적어둔다. 그리고 나는 구직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인데, 3개 정도의 사이트에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이력서를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항상 공개로 해놓는다(*전 직장과 현재 직장은 꼭 차단 목록에 넣어둔다). 그러면 기업이나 헤드헌터로부터 면접 제안 등을 종종 받을 수 있는데, 그들이 생각하기에 내 이력이 자신들이 뽑고자 하는 포지션과 적합해서 연락을 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직접 채용 공고를 찾아서 지원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나는 뭐 하는 회사인지만 찾아보면 된다. 이런 식으로 현재 직장을 포함한 여러 회사를 경험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기회를 놓쳤다고 해서 상심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준비하면 된다. 기회는 다른 형태로 또 돌아온다. 놓친 비행기는 탈 수 없지만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딱히 이직을 준비하고 있지 않더라도 어떤 좋은 제안이 갑자기 들어왔을 때 허겁지겁 급하게 준비한 이력서보다는 평소에 잘 다듬어놓은 이력서를 여유 있게 줄 수 있다면 시작부터 가벼운 기분이 들지 않을까.
오늘 하루도 열심히 버티고 있는 모든 직장인들을 응원하며, 당신의 성공적인 이직을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