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요정의 『퇴사이야기』 2

두 번째. 가족회사는 가기 전에 두 번 생각하자

by 이직요정

가족회사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족끼리 운영하는 회사에 입사를 생각하고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뜯어말리고 싶다. 물론 모든 가족 회사가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겪었던 회사의 특징을 몇 가지 나열해 보자면 이렇다.

1. 규정이 없거나, 있어도 소용없다. '가족 끼린데 뭐 어때~'의 마인드
2. 인맥만 있으면 만사 OK.
3. '너도 우리 가족'/'너는 가족도 아니면서 뭘'. 편의에 따른 이중잣대
4. 가족이 아닌 자에 대한 불신과 감시. 이간질은 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회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갔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엔 나도 이직이 급했고, 인터넷에는 회사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 외에는 정보가 없으니 입사 전엔 알 길이 없었다.

"이야~ 키가 커서 좋네요. 마음에 드네."
공항으로 마중 나온 대표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때부터 기분이 묘하게 싸했다.
'도대체 키가 무슨 상관이람'

회사에 가보니 열댓 명 있다는 직원은 온데간데없고, 대표와 실장, 새로 온 신입과 나, 네 명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한 명이 더 와서 총 다섯 명. 다른 책상에도 이름표는 군데군데 있었지만, 내가 그만두는 날까지 다른 직원은 본일이 없다.
대표와 실장은 부부였지만 직원들에게 비밀로 했다. 둘의 관계와 관련해서 거짓말을 많이 했는데 어딘가 많이 허술하고 치밀하지 못했다. 차라리 아무 말 안 하는 것이 더 나았을 텐데, 대표가 자기 남편 친구라느니, 자기 부인은 한국에 있다느니,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만 이상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나와는 상관없기도 했고, 관심도 없어서 모른척해 주고 있었는데, 자꾸 거짓말을 하니 그게 더 짜증 날 지경이었다. 나중에 하는 변명으로는 가족이 경영하는 회사에 대한 인식이 안 좋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평소 대표는 직원들끼리만 모여있으면 꼭 면담이라는 이름으로 한 명씩 불러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추궁했다. 근데 듣다 보면 우리끼리 말한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꼭 다른 직원이 일러바친 것처럼 말을 했는데, 소름 끼치게도 사무실에 마이크가 내장된 웹캠이 달려있었던 것이었다. 오전에 출근은 안 하고 집에서 직원들을 감시하고 있었던 거다. 무슨 얘기를 하나 귀 기울이면서. 나는 그 웹캠을 내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이 장면도 보고 있냐 하면서. 대표와 실장은 차마 나를 불러서는 뭐라고 못하고, 애꿎은 막내 직원만 계속 불러서 내가 왜 사진을 찍었는지, 뭐라고 말했는지 추궁했다. (웹캠이 있다는 것을 안 뒤로는 사무실에서 아주 작게 말하거나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쨌든 대표와 실장은 나를 컨트롤하지 못했다. 실장의 말로는 내가 포스가 너무 강해서 내 눈치만 보게 된다고 했다. 내가 위협을 가하거나 일을 안 하고 그랬던 건 아니다. 그저 웹캠의 존재를 감지한 이후로 칼퇴를 하고 가족처럼 지내자는 그들에게 선을 긋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나의 이런 행보에도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결국 다른 지사로의 이동을 제안을 했다. 다른 지사 같은 건 있지도 않으면서 끝까지 있어 보이는 척하려는 모습이 참 같잖았지만 아직 월급을 못 받은 상태였기에 참았다. 나도 진작에 때려치우고 싶었던 회사였지만 큰맘 먹고 해외로 나왔던 거라 계속 참아왔던 거였다. 그리고 한국식의 계약서도 현지에서는 효력이 없었기 때문에 월급 못 받으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기도 했다(물론 찾으면 있겠지만 너무 귀찮은 일들이다). 나는 정중히 제안을 거절하며 귀국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간 현지 통화로 월급을 지불했었는데, 마지막 월급은 한화로 달라고 했다. 애초에 계약서에는 한화로 계약을 했었지만, 지급은 현지 통화로 받았었다. 당일 환율에 따라 매달 지급받는 금액이 달라졌는데, 마지막에는 환전했을 때 20만 원 정도 손해 보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랬더니 실장은 냉랭하게 그럼 바로 지급해 줄 수 없다면서 길게는 2주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매우 화가 났지만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앞으로 몸 건강히 잘 지내시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허술했던 나의 상사는 내 마지막 메시지에 감동했고, 바로 다음날 월급을 넣어줬다. 한화로, 정확하게 계산해서.

나를 필두로 해서 나머지 직원도 차례로 그만뒀다. 동료 직원 중 하나는 내가 하는 것 이상으로 대표나 실장에게 까칠하게 대했지만, 기술직이니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역시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를 느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전직을 해야겠다는 결심의 씨앗이 되었다.

내가 좀 더 똑똑했더라면 안 할 수도 있었던 경험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기술직으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고 전직에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짧았지만 해외에서의 직장 생활도 신선하니 재미있었고, 얻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며 나를 위로해본다.
(이후 이직요정은 또 한 번의 가족회사를 경험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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