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요정의 『퇴사이야기』 1

첫 번째. 회사가 망했다

by 이직요정

첫 편부터 강하다. 회사가 망해버렸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망하기 직전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회사를 오래 다닌 직장 선배가 귀띔해줬기 때문이다. 회사 자금이 바닥날 시기라고, 아직까지 투자가 들어온 곳이 없어서 월급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사실 이곳은 나의 첫 직장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나는 많이 어리바리했던 것 같다.


틈틈이 다른 회사에 지원을 했고, 종종 면접도 보러 다녔다. 하지만 고작 수개월의 경력을 가진, 직무와 연관된 포트폴리오 하나 없던 나를 선뜻 뽑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그러다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내가 원하는 직무는 아니었지만 내가 가진 능력들을 필요로 했기에 이직을 결정하게 되었다.


입사일을 받아들고 이제 다니던 회사에 통보할 차례였다. 도대체 뭐라고 말하면서 그만둬야 할까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하고 대표를 찾아갔다.
“해외에서 좋은 조건으로 입사 제안이 들어와서, 거기에 꼭 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만두겠습니다.”
대표는 예상외로 선뜻 축하한다고 했고, 지난날의 고민이 무색해질 정도로 빠르게 퇴사 처리가 이뤄졌다. 그리고 팀원들에게는 내가 어디 좋은데 스카웃되어서 떠난다며 과하다 싶을 정도로 포장하며 축하해줬다.


여기까지였다면 참 아름다운 마무리였을 텐데. 퇴사 후 며칠이 지나도 마지막 월급이 안 들어온다. 조심스레 연락해봤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그렇다고, 곧 투자금 들어오는 대로 보내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월급은 여전히 안 들어온다. 나는 그동안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마지막 월급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다음 주에 보내줄게요’가 다음 달이 되고, ‘정말 다음 달엔 보내줄게요’가 쌓이고 쌓여 6개월이 흘렀다. 나에게 회사 사정을 귀띔해준 직장 선배와는 종종 연락을 하며 지냈었는데, 다른 직원들도 평균 3개월치의 월급이 밀려서 그만두지도 못하고 있다는 상황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몇몇은 노동부에 신고한 상황이라며 나에게도 일단 신고를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 했다.


난생처음으로 노동부에 찾아갔다. 회사 관할 지역의 노동부로 가야 한다고 해서 한참 헤맨 뒤에 도착했다. 신고 절차는 허무하리만치 간단했다. 주어진 서식만 작성해서 내면 끝. 추가적으로 주고받은 문자의 캡처 사진 등의 증빙자료가 있다면 함께 제출한다. 그리고 그 뒤로 몇 번 출석하라는 통보가 온다. 두어 번 또 다녀왔다. 직장인이라면 번거로워서라도 못할 듯싶다.


그냥 없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신고는 했으니 못 받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았기 때문이다. 대표로부터 간간이 언제까지 돈을 보내줄 테니 먼저 신고한 것을 취하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친한척하며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게 얄미웠다. 나도 똑같은 말투로 친한척하며 알았다고 하고는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럼 또 얼마지않아 취하했냐고 연락이 오면, ‘아, 맞다! 또 깜빡했네요~ 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라며 너스레를 떨고는 그냥 잊고 살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대표도 여기저기 신고 들어온 게 많아서 급해진 건지 월급의 일부가 입금됐다. 그리고 나머지는 또 다음 주에 입금하겠다고 하며 취하를 부탁해왔고, 나는 알았다고 대답만 했다. 또 몇 주가 흘렀고 이번엔 정말로 입금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지, 갑자기 가격을 깎기 시작했다. 저기요? 여기 시장 아닙니다만. 마지막 발악을 끝으로 나머지 금액이 온전히 입금됐다. 지난 일 년을 생각하면 너도 고생 좀 해봐라 하며 임금 지불 내역을 직접 증빙해서 취소하도록 하고 싶기도 했지만,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서 취하해줬다. 신고와 마찬가지로 서식 하나만 작성해서 내면 취하도 손쉽게 이뤄진다. 여기서 잘 알아둬야 할 점은, 취하를 한번 해버리면 다시 신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들은 여린 마음에 ‘곧/다음 주/다음 달에 입금해준다’는 말에 취하해주는 경우도 여럿 있을 것이다. 나는 옆에서 알려주는 선배가 있었느니 참 다행이었다. 짧았던 첫 회사에서 참 많은 경험을 하고 배웠다.


'이보다 더한 회사는 앞으로 없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과연 앞으로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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