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4큰아들 군기잡다 내가 군기잡힌 날
저녁 8시 30분. 식사를 마친 남편이 단원평가를 앞둔 4학년 첫째 수학공부를 봐주고 있었다.
"자세 똑바로 앉지 못해?!!!"
거실을 뒹굴거리며 만화책 봐야 할 시간에, 풀기 싫은 수학문제라니. 큰아들은 연체동물처럼 책상에 비스듬히 드러누워있다가 남편의 호령에 90도로 각 잡고 앉았다.
"뭐하려고 돈 버는 거야? 애들이 망가지고 있다고! 애들 이모양으로 키우려고 회사 다니는 거야?"
아이의 잘못은 왜 항상 엄마에게 화살이 돌아오는 걸까?
"공부 잘 못해도 된다며. 갑자기 왜 애 공부를 가르치고 그래? 애는 나만 키워? 왜 내 탓이야?"
몇 번의 고성이 오갔고 아이들은 대성통곡을 했다.
" 엄마 아빠 싸우지 마, 엉엉 "
다음날 큰아이는 시험지를 집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시험지 어딨냐는 물음에,
쓰레기통에 버렸어"
"진짜? 진짜?"
"응"
"왜?"
"서랍에 넣어뒀어"
"지금 학교 가서 가져와! 당장!"
어둑한 7시에 학교로 내쫓았다. 시험지 가져오라고. 거짓말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며.
그런데 40분이 지나도 애가 오지 않는다.
분노가 걱정으로 바뀌면서 나는 학교로 울면서 쫓아갔다. 불이 꺼진 학교 복도는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다. 휴대폰으로 후레쉬를 켜며, 우리 서준이는 휴대폰도 안가져갔는데 칠흙같은 이 어둠을 뚫고 교실에 들어가있을까, 교실에 못 들어가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있을까, 동네 어디선가 혼자 방황하고 있을까 오만가지 걱정이 다 되었다.
"서준아! 서준아~!!"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교실로 뛰어갔지만, 40대 아줌마도 무서운 학교 복도를 애 혼자 왔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에 숨이 턱 막혀왔다.
텅 빈 교실엔 아이가 없었다. 책상 서랍엔 시험지도 없었다.
엉엉 울면서 집으로 전화했더니 퇴근한 남편이 전화를 받는다.
"서준이가 없어졌어. 어떡..."
"집에 나랑 같이 왔는데?"
안도와 함께 미친년이 되었던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난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이건 명백히 아동학대다. 아이는 불 꺼진 복도를 지나 교실로 가서 시험지를 가져왔다. 앞으로는 거짓말을 안 하겠다는 다짐도 받아냈다.
내일부터 회사 안 나겠단 내 거짓말은 뭘로 회개해야 할까. 나도 아이들 앞에서 쉽게 거짓말하면서 아이들에겐 왜 성실, 정직을 강요하는 것일까. 이 모순덩어리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