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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대로 말하면 안되는 이유

자업자득

by 잡초

한여름에 팀장이 하얀색 로퍼를 신고 왔다.

"팀장님! 하얀 고무신 사셨어요?"

웃자고 한 농담이었는데 팀장 얼굴이 시뻘게졌다. 주위 사람들 다 웃었지만, 팀장 얼굴이 굳어졌음을 뒤늦게 눈치챘다. 다음날 팀장의 백구두는 자취를 감췄다.

점심시간에 운동을 시작하면서 렌즈를 착용하게 되었다. 안경을 벗으면 바로 앞 사물도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렌즈를 끼게 되었다.

"잡초 과장님, 안경 벗으시니 훨씬 낫네! 앞으로 렌즈 끼고 다녀요"

팀장이 웃으며 칭찬처럼 한마디 해주셨다. 사무실에서 아무도 내 안경의 존재를 몰라줬는데 달라진 내 외모를 칭찬해 줘서 고마웠지만, 말은 반대로 나갔다.

"아이 셋 딸린 애엄마가 외모에 신경 써서 뭐 하겠어요, 누가 봐준다고"라고 말하면서 아차 싶었다. 스스로 내 외모를 비하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하고 말았으면 되었는데...


다음날, 회식자리에서 팀장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 셋 딸린 애엄마라 옷도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시는데..."


내가 옷을 막 입고 다닌다고 상사가 생각하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참고로 팀장이 그토록 사랑하는 젊은 남자 직원은 청바지차림으로 다닌다) 나는 금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은 정장을 입고 다녔다. 상의는 니트티를 입었지만 하의는 정장바지를 늘 갖춰 입었고 민원인이 오시면 늘 정장재킷을 착용하고 응대했다.

어제 나 스스로가 한, 자기 비하 발언이 팀장 머리에 각인이 된 것일까. 항상 애 셋 딸린, 애 셋 딸린, 이란 말을 스스로 하고 다녀서 남들 뇌리에도 그렇게 각인이 된 걸까. 팀장이 렌즈껴서 외모가 나아졌단 지적도 불편했고 옷차림에 대해 훈수둔 것도 기분이 나빴다. 팀장도 내가 백구두에 대해 언급할때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백구두를 고무신이라고 말한 것처럼, 팀장도 별 뜻 없이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외모나 외적인 것에 대해 말할 땐 조심해야겠다 다짐하면서, 내 옷차림과 말투 등 나의 언행에 대해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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