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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초 Feb 01. 2024

팀장이 점심시간에 불렀다

"팀장님, 식사하러 안 가세요?"

"잠깐 나 좀 보지"

팀식인데, 몸이 안 좋은 관계로 팀 식을 거르고 일을 하고 있던 나는, 아직 식사하러 가지 않은 팀장에게 한마디 건넸다가 자리로 오라는 요청을 받았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정신 안 차리고 일할래? 아무리 바빠도 일 대충 하지 말고 꼼꼼히 보라고 했지?"

"제가 결재를 잘못 올렸나요?"

"도대체 내가 얼마나 봐줘야 하는 거야? 매번 틀리니, 이거 봐봐, 이게 금액이 얼만데 팀장전결이야?"

"아... 틀렸나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몰랐습니다"

"지난주엔 A부서에 보내야 할 문서를, B로 보내질 않나. 애가 아파서 정신이 딴 데 가있는 건 알겠는데, 일은 똑바로 해야지!"

"네, 죄송합니다. 결재 다시 올리겠습니다."


내 자리로 돌아와서 문서를 회수하고 다시 작성하려는데, 점심 먹으러 나가려는 팀장이 또 한 소리를 덧붙인다.

"문서 수정도 말이야, 내가 잡초 과장 기안문을 수정하고 있으면, 옆에서 뭘 수정하나 봐야지, 바쁘다고 자기 자리로 휙 돌아가서, 할 일 하나? 자네 거잖아. 내가 수정하고 있으면, 어디에 뭐가 틀렸는지 옆에서 지켜봐야 할 것 아니야!"

"아...! 팀장님, 마음이 많이 상하셨군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수정하겠습니다."


직원들이 식사하러 사무실에서 나가기만을 기다렸나 보다. 한소리 하려고 작정한 듯, 팀장은 나에게 퍼부어댔다. 만 6일째 열이 나고 있는 큰아이에게 옮은 나는, 38도가 넘는데도 해열제를 먹어가며 회사에 나와서 일하다 반차 쓰고 나가려는 찰나, 팀장의 한소리는 차마 컴퓨터를 끌 수 없게 만들었다.

 

 애가 아픈 건 알겠는데


이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지난주 금요일에도 열이 38도 후반대를 찍는데도,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시간마다 열체크해서 문자 보내라고 시킨 다음, 출근했다. 2023년도 회계마감되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날은 휴가날이었는데, 회계가 닫히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왜 매일 일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걸까.


 결혼 전에도 그랬다. 일을 유독 못하는 직원이었다. 꾸역꾸역 다니면서, 결혼하고 임신했을 때, 더 이상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쉽사리 애도 3명이나 줄줄이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회사에 대한 도피처라고나 할까. 10년 만에 복직하니,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은 좋지만, 누군가에게 누를 끼치고 일 못한다고 까이는 소리를 들으니, 회사 다니기가 비참하다.


오늘은 2년 차 후배에게 엑셀자료를 넘겨받으면서, 피벗테이블을 물었더니,

"피벗 할 줄 모르세요?"

라고 말한 뒤, 친절하게 가르쳐 주길래, 이 기회다 싶어 하나를 더 물어봤다.

"이 자료에서 3월을 더할 때에는, 함수를 쓰세요?"


 쓱 쳐다보더니,

 

그건 과장님이 알아서 하셔야죠"

조용하지만 무안한 일침이었다.


10살 이상 차이나는 어린 후배들에게, 10년 동안 잠자고 있었던 냉동인간인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그야말로 신입사원. 직급은 과장'대우'이지만, 노친네 취급받는, 노땅.



10년 동안 나는 마우스를 몇 번이나 잡아 봤던가. 애 셋을 키우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도 집안일은 내 적성에 안 맞다고 구시렁대었는데, 지금 회사일은 또 어떤가. 많은 남성분들을 보면서, 저분들도 때려치우고 싶었을 텐데, 가정을 위해 회사로 나오는 사람들이구나 싶으면,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던 많은 차장님들의 애환이 느껴지고 내가 지금 당하는 것처럼 젊은것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마구마구 전달해드렸을까 봐 죄송하다.


저녁을 먹으며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남편이 한소리를 했다.

"지금 후배한테 까인 엑셀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야! 회사 업무 규정을 제대로 보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사실... 규정이 너무 많다. 꼼꼼히 보려고 해도 너무 두꺼워서 보다가 덮어버렸다. 내 업무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건 맞다. 변명하자면, 일이 너무 많다. 6시간 단축근무하는 나는, 화장실도 뛰어가지만 늘 시간에 쫓긴다. 일을 할라치면 애 셋이 번갈아가며 아프고, 열이 나서 휴가를 써야 하고. 막내 하원하러 가면 다크서클이 눈 아래까지 내려온 채로 두 눈이 뻐끔한 아이가 안쓰러워, 단 몇 분이라도 빨리 퇴근하고 싶은데. 일은 언제 하며 규정은 언제 보며 업무는 언제 숙지한단 말인가. 집에 오면 애들 씻기고 밥 차리고 청소하고 이불 깔면, 업무 공부는커녕 내 얼굴 씻을 겨를도 없이 잠에 곯아떨어지게 된다.


 병약한 아이들은 내가 복직하면서부터, 더 자주 아프다. 바쁘단 핑계로 아이들을 잘 못 챙겨줘서 더 자주 아픈 것 같아 아이들에게도 죄스럽다.


오늘부터 겨울방학이라, 오후 반차내고 집에 와서 점심 차려주려고 했는데, 점심시간에 팀장한테 한 소리 들으니,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2시까지 일하다 집에 왔더니, 아이들이 배가 고팠는지 전기밥솥에서 흰밥만 퍼서 먹었다. 그것도 얼마 안 남아있어서 둘이서 조금씩 나눠먹었단다.


"냉장고에 반찬 있는데, 꺼내먹지..."


기특하기도 하면서 애잔해서 별 말은 안 하고 밥상을 차려줬다. 6일째 열이 나는 큰아이는 연신 기침을 해대며 몇 숟갈 뜨질 못했다.


"엄마가 회사에서 오늘 팀장한테 혼났어. 회사 관둘까?"

조용히 고개를 푹 숙이고는 살짝 흔들흔들.

"엄마가 일하는 게 좋아?  돈 벌어서?"

끄덕끄덕.

요새 초등학생들조차 세상물정을 너무 잘 안다.


회사를 관두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 친정엄마 아빠 전부 뜯어말린다. 월 350만 원 어디 가서 벌어 오냐고. 대학 나오고 해도 10년 동안 집에서 살림하다가 나가서 월 350만 원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거다. 나는 그동안 뭐 했던가, 아이들이랑 붙어있을 때 집도 좀 깨끗하게 보살피고 재테크도 좀 했으면 파이어 족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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