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왕따 현장을 목격했다면?

by 잡초

장 보러 가는 길에 세 명의 학생이 한 명을 에워싸고 머리에 이를 잡듯이 머리를 툭 툭 건드리고 있었다.

세 명은 검은 머리였고 한 명은 노란 머리.

‘뭐지? 터키애들이 우크라이나 애를 때리려는 건가? 아니면 독일인인가?’

자전거 타고 지나가며 쳐다만 볼 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난 말이 안 통하는데. 어쩌지? 여기에서 경찰 부르면 몇백만 원 내야 한다던데. 어쩌지?‘

그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냥 길을 지나쳤다. 내가 이곳을 몰라서 그런가? 여기 애들은 다 저렇게 노는 건가? 내가 저 애들한테 따질 수도 없지 않나? 독일어도 못하는데 저 애들에게 웃음거리만 되지 않으려나?

별별 생각을 하며 그냥 지나쳤다. 문득 내가 너무 무능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기력함, 어딘가에서 데자뷔 되는 한 기억.

대학생 때였다. 이른 아침에 학교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목격했는데 차 3대가 연쇄 충돌했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학교에 갔다. 아무도 걸어서 나오지 않았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다가 내 갈 길을 갔다. 누구도 피를 흘리거나 하진 않았고 세게 부딪힌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순간, 구급차를 불러야 할지 경찰을 불러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 명이 걸어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 이 기억이 조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도 난 참 무능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장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란 머리 학생은 풀려나있었고 다른 아이들 서넛이 더 추가되어 모여있었다. 내가 잘 못 본 걸 거야, 확인이라도 하듯이 폭력의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노란 머리 아이는 건재했고 머리를 정돈해 준 걸 거라고 굳게 믿고 싶었다.


혹시라도 저 노란 머리 아이가 내 아이라면 어쩌지? 내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면 어쩌지? 이런 불안감은 늘 가지고 다닌다. 낯선 나라에서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데 잘 다닐 거라고 믿고 싶은 건 순전히 내 이기심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는 얼마나 떨리고 불안할까. 이 못난 어미는 맛난 밥상을 정성껏 차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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