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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디 Mar 26. 2020

엔지니어가 하는 일 - 연구개발(R&D)

산업용 로봇 연구개발(R&D) 업무

취업을 할 때 '어느 회사에서 일하느냐'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무슨 일을 하느냐'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회사에 취직하더라도 하는 일이 몸에 맞지 않으면 업무 성과가 나오지 않거나 의욕이 떨어지기 쉽다. 한번 뿐인 인생을 후회없이 재미있게 살고 싶었기에, 경영대학부터 공과대학까지 캠퍼스를 누비며 부지런히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맞이한 가장 큰 고민거리는 전공을 살려 엔지니어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새로운 분야(고시, 컨설팅, 창업 등)에 도전하느냐 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엔지니어가 하는 일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대학원 과정을 거치고 입사지원서를 작성하면서 엔지니어의 직무가 '연구개발(Research and Development, R&D)'과 기타 분야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대학원생처럼 나는 '연구개발' 분야에 지원했고, 가장 희망하던 회사에 합격하여 '연구개발 본부 로보틱스 연구실'에 배정 받았다. 첫 회사에서 부여받은 직함(Job Title)은 연구원(Researcher)였다.


기업체 연구소는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연구 및 개발 업무를 담당한다. (회사마다 다를 수 있으며 미래 기술 연구소 등 당장 제품화하지 않는 연구를 수행하는 곳도 있음) 내가 속한 로보틱스 연구실에서는 자동차 및 디스플레이 제조를 위한 산업용 로봇을 개발했는데, 크게 기구팀과 제어 플랫폼팀, 그리고 모션 및 응용 소프트웨어팀으로 나눌 수 있다. 기구팀에서는 3D CAD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로봇 팔을 설계하고 해석 툴을 이용하여 기계적인 강성, 소음, 진동 등을 분석한다. 참고로 기계적 설계 또한 영어로는 '디자인'인데, '비주얼'에 초점을 맞춘 '패션 디자인'과 달리 '기능'을 우선시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디자이너가 기계 설계팀에 오면 힘들 수도 있겠다. 로봇 팔은 제어기로 동작시키는데 전기전자 장치인 제어기(일종의 컴퓨터)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곳이 제어 플랫폼팀이다. 이곳에서는 회로설계(전자공학), 전원공급장치(전기공학),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컴퓨터공학)에 대한 경험 및 지식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내가 속했던 모션 및 응용 소프트웨어팀은 로봇 팔의 동작과 응용 기능에 대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로봇역학 이론을 적절히 활용하며 모션 제어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C언어 등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해 이를 구현한다.


기업체 연구원들은 직접 개발한 제품이 실제로 판매되고 사용된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연구개발 담당자들은 회사 내에서 기술을 가장 깊이 있게 이해하게 마련인데, 주변 부서에서는 기술을 선도하는 '지식인(intellectual)'으로 인정해줄 것이다. 취업한 선배들은 어차피 회사가면 업무를 새로 배운다며 대학교 전공 수업을 부정하곤 했는데, 연구개발은 상대적으로 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써먹을 기회가 많다. 전공을 살린다는 점 또한 기분 좋은 일이다. 다만, 연구개발 분야로 취업한다고 모두가 전공을 살려 일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 별로 필요한 인원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특히 대기업 신입공채의 경우 전공과 다른 보직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런데, 최첨단(State-of-the-art) 기술에 대한 연구를 기대하는 엔지니어들에게 제품 연구개발은 생각보다 지루하고 실망스러울 수 있다. 순수 연구는 새로운 이론을 시도하고 이것이 '동작'한다면 의미 있는 성과로 간주될 것이다. 하지만 제품 연구개발에서는 기능이 '동작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세련된(Fancy) 최신 기술 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미 검증된 기술에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산업용 로봇 모션 제어 알고리즘은 수십년 전에 개발된 로봇역학 및 제어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프로세서나 센서 등 주요 부품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에 적용하지 못했던 알고리즘을 제품에 접목시키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기술 또한 과거에 등장한 이론을 근거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만약 최첨단(Cutting edge) 신기술에 집중하고 싶다면 산업체 연구소 보다는 국가기관나 학교에서 운영하는 연구소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이윤 추구라는 기업의 목적에 따라 기업체 연구소는 돈을 벌어 주지 못하면 조직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연구개발의 결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거나 원가 절감에 기여해야 회사에서 인정받게 될 것이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회사 상황이 워낙 좋아 새로운 기술 및 제품 연구에 주력했는데, 유럽 금융 위기로 조선 등 주변 사업분야가 어려워지면서 제품 라인업 확장 등 당장 매출로 이어지는 업무로 연구개발 로드맵이 변경되었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회사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는데 연구소는 인원 감축 1순위였다. 


최근에는 전형적인 연구개발 직무는 아니지만,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연구개발 업무를 위해 등장한 새로운 직무들이 눈에 띈다. 제품담당자(Product Manager)는 시장성과 기술 양면을 고려하여 제품 요구사항 및 기술사양을 수립하고, 연구개발 방향성이나 R&D 엔지니어들이 어떤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지 기획한다. 프로젝트 관리자(Project Manager)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일정에 맞게 성공적으로 완료될 수 있도록 관리하며, 스크럼 마스터(Scrum Master)는 애자일 개발 방법론의 지휘자로서 팀원을 코칭 하고 프로젝트의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데브옵스 엔지니어(DevOps Engineer)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툴과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등 개발 및 운영 전체를 관장한다. 사용자 경험에 초점을 둔 UX/UI 디자이너 또한 수요가 매우 높은 직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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