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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 Jobplanet Apr 12. 2023

"합격!"...근데 이런 서류까지 내라고?

[혼돈의 직장생활] 신원보증계약 서류 요구, 거부해도 되는 걸까



   

“김OO님, 최종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A 중견기업의 일반 사무직에 지원해 합격 통보를 받은 김 씨. 하지만 기쁨도 잠시, 메일로 날아든 입사 구비서류 안내에 머릿속이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찼다. 주민등록등본뿐 아니라 초본과 가족관계증명원, 심지어는 재정보증인 2인의 인감증명서, 재산세 납부증명서를 제출하라는 게 아닌가. 취업을 한 것인가 대출을 받는 것인가, 아니 대출을 받을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민감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이 회사, 입사해도 되는 걸까. 김 씨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 보증인 인감증명서가 대체 왜 필요해?


새로운 직장에 입사하게 되면 인적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회사가 요구하는 몇 가지 서류를 제출하게 된다. 주민등록 등본과 통장 사본, 최종학력 증명서, 경력증명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서류들은 직원이 입사 지원 당시 제출한 이력서의 진위 여부와 신원을 확인하고, 4대보험 및 소득신고를 진행하는 데 활용된다. 

그런데 회사가 필요 이상의 민감 정보 제출을 요구한다면 어떨까. 최근 <컴퍼니 타임스>에는 한 건의 제보가 들어왔다. 최종 합격한 회사에서 재정보증인 2인의 인감증명서와 재산세 납부증명서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는 것. 이게 대체 무슨 서류일까? 하나씩 뜯어서 살펴보자.

‘재정보증인’은 말 그대로 개인의 경제 상태를 보증할 수 있는 주변인을 뜻한다. ‘인감증명서’는 행정청에 신고된 것과 실물 인감이 동일함을 증명하는 서류로, 주로 중요문서의 작성자가 본인임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된다. ‘재산세 납부증명서’는 재산세 납세 사실을 증명해주는 문서이며, 보증인이 손해배상 금액을 감당할 재정 능력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서류이기도 하다.

함부로 내어주기 조심스러운 이 서류들을 요구하는 이유는 바로 ‘신원보증계약’을 체결하기 위함이다. 직원이 재직 중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때, 유사시 재정보증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연대보증을 약속하는 계약을 맺는 것이다. 

신원보증계약은 신원보증법이 규정하고 있는 합법적 계약이다. 따라서, 신원보증계약 체결을 위한 서류 제출 요청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제20조에서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으나, 대법원에서는 신원보증계약의 경우 위약예정금지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다. 신원보증계약은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책임 담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위약금을 예정하는 행위로 보지 않는다는 것.    


[대법 1980.9.24 선고 80다1040 판결] 
근로기준법 제20조는 사용자가 근로자와의 사이에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의 체결을 금하는 데에 그치므로 신원보증계약은 이에 해당한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입사자가 주변인들에게 연대보증을 요청하기란 쉽지 않은 일. 연대책임을 물을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더라도, 인감증명서나 재산세 납부증명서 등의 민감한 정보를 전달 받아 제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신원보증계약 대신 ‘신원보증보험’ 가입을 요구하는 회사도 있다. 보증보험 회사를 통해 신원보증보험 상품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인데, 직원의 불법행위 등으로 인해 회사가 입은 손해를 보험사에서 대신 보상한다.


◇ “임원이나 재무 관련 직무 아니라면 과한 요구”


전문가들은 인사행정에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정보가 아닌 서류를 요청하는 것은 과한 요구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임원이나 재무 관련 직무가 아니라면, 신원보증계약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다. 

배동희 대유 노무법인 대표노무사(법학박사)에게 회사가 민감 정보를 요구하는 이유와 대처 방법 등에 관해 물었다. 아래는 배 노무사와의 Q&A.


Q. 회사가 주민등록 초본, 가족관계증명원, 재정보증인의 인감증명서, 재산세 납부증명서 등의 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이유는?

주민등록 초본에는 개인의 주소 변동과 병역사항, 개명이력 등이 기재돼 있는데요. 회사는 근로자 본인의 거주 주소 등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초본 제출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주민등록번호 역시 회사가 임금대장에 의무적으로 기재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2호에 따르면, 법령상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족관계증명원이 필요한 경우는 크게 3가지인데요. 첫째, 가족수당을 지급하는 회사일 경우, 임금대장에 가족사항을 기재해야 하므로 서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자녀 학비 지원, 직계존속 건강진단, 주택 지원 등 가족 관련 복리후생이 제공되는 회사일 때 수집할 수 있고요. 셋째, 근로자 명부에 부양가족을 기재해야 할 때도 해당 서류 요구가 가능합니다. 참고로, 가족관계증명원을 제출할 때는 가족들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삭제한 후 발급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정보증인의 인감증명서와 재산세 납부증명서는 근로자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 요청하는 서류입니다. 재산세 납부증명서는 보증인이 회사가 청구하는 피해 금액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Q. 직원 고용 시 해당 서류들을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지?

앞서 설명했듯, 주민등록 등·초본과 가족관계증명원 등은 임금대장 및 근로자 명부 작성을 위해 회사에 사정에 따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재정보증인의 인감증명서와 재산세 납부증명서 등은 근로자의 인사행정상 처리를 위한 것이 아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명확히 하고자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해당 서류는 회사가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인정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회사가 입사자 본인의 인감증명서를 요구한다면, 반드시 목적을 확인하고 제출해야 합니다. 인감증명서는 인사행정업무 처리에 반드시 필요한 서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Q. 민감 서류 제출을 거부하여 입사가 취소되어도 문제가 없는 것인가?

해당 서류가 인사행정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면, 제출을 거부했다고 입사를 취소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16조 제3항에 따르면, 최소한의 정보 외의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화 또는 서비스의 제공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어길 경우, 동법 제75조 제2항에 의거해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Q. 민감 정보 제출을 원치 않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

채용된 사람의 입장에서, 사측의 서류제출 요청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정보는 매우 민감하기에, ‘반드시 지금 필요한 서류가 아니라면 먼저 필수 서류부터 제출하고, 추후 필요한 시점에 제공해 드리겠다’고 완곡하게 거부해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도 방법일 겁니다. 


◇ 잡플래닛 리뷰 보니…이런 것까지 내라고?


잡플래닛에도 회사가 과한 서류 제출을 요구한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리뷰가 여럿 올라왔다. 심지어는 면접 자리에서부터 인보증을 요구하거나, 서류상 주소지를 불신해 손으로 직접 거주지 약도를 그리라고 지시하는 회사도 있다고. 관련 리뷰들을 모아봤다.
     

-대표가 의심이 많아서 입사 시 다른 회사에서 요구하지 않는 거주지 약도와 보증인의 인감증명서 등 별별 이상한 서류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1.9 서울 제조/화학)

-면접에서 인보증을 얘기하는 회사입니다. 인감증명서를 떼어오라고 하네요. (⭐1.4 서울 건설업)

-입사할 때 사고 치면 부모님이 다 배상하게 한다고 부모님 인감증명서 요구하는 곳. 사고 치면 찾아가려고 입사 직전에 집 위치를 그려서 제출하라고 함. (⭐2.3 대구 제조/화학)

-입사 시 부모님의 인감증명서와 재산세 납부증명서를 요구합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회사에서 제조하는 제품을 분실했을 경우 보증인에게 청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2.1 경기 유통/무역/운송)



입사하기 전부터 회사와 직원 간 신뢰 형성은 이미 시작된다. 믿음과 신의를 차곡차곡 쌓아가야 할 노사관계를 서먹하게 만드는 과도한 요구, 가급적 지양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김 씨에게 인보증을 요구한 A 중견기업은 <컴퍼니 타임스>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직후, 재정보증 관련 절차 및 규정을 삭제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직까지도 무리한 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기업들에도 작은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기를 응원해본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 중이라면 알려주세요. 같이 고민해볼게요 



           ⭐️ <혼돈의 직장생활>은 절찬 연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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