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주 전에 글쓰기로 생계를 이어가시는 분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창 회사를 때려치고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누가 내 생각을 훔쳐보기라도 하나, 누가 내 이야기를 훔쳐 듣나. 인스타 알고리즘이 날 어느 강의 홍보글로 이끌었다.
강의료도 저렴했기에, 고민도 하지 않고 수강신청을 했다. 저녁 7시 반쯤 하는 강의였다. 퇴근하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꼭 저녁 일정이 있는 날에는 일이 몰려 칼퇴를 하지 못한다. 제기랄. 얼른 때려쳐야 하는데.)
강사 분(강사명은 밝히지 않으련다. 프라이버시!)의 경험 위주의 강의였고, 강사 분은 강의를 경험 공유회라고 명명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글과 관련된 과거 경험들을 나열하며, 각 경험에 대한 장점과 단점, 수익에 대해 공유해줬기 때문이다.
퇴근 후인지라 피곤하고 몸이 쑤셨지만, 의미 있던 강의었다. 글쓰기로 얼마 정도 벌 수 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글쓰기로 떼돈을 벌 수는 없다. 떼돈이 뭔가, 최저 임금 받고 아르바이트하는 게 나을 지경이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쓸 때가 온 것인가.) 절망하진 않았다. 어느 정도 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로 밥 벌어먹기가 정말 힘들다는 것을.
몇년전에 이병률 시인의 북토크에 간 적이 있다. 그 분이 했던 많고 많은 말 중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글쓰기는 굉장히 노동 집약적이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이라고. 맞는 말이다. 인풋 대비 아웃풋을 보장할 수 없는 일이다. 에너지는 엄청 쏟아야 하지만, 쏟은 만큼 괜찮은 문장들이 탄생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현실적인 것만 보자면, 글은 일기장에만 쓰고 착실하게 회사에 다니는 게 맞다. 근데 착실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인가? 끓는 물 가득 담긴 냄비처럼 다닐 게 뻔한데. 분명히 내가 속한 곳은 틀렸다. 글렀다. 흥미도 떨어졌고, 없던 정도 떨어졌다.
스타 작가가 되지 않는 이상, 전업 작가로는 현실을 살아가기 힘들다. 집에 돈이 많은 금수저라면야, 뭐든 할 수 있겠다만.(이런 근본적인 고민도 안하겠지!) 나는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1인 가구의 가장이다.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내가 굶어죽는다.
그렇기에 경험 공유회를 이끌었던 강사 분은 본업을 따로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그 본업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걸 밝히지 않으셨을 뿐더러, 글쓰기에 관련이 없는 일인데 더 궁금해해서 뭐하나.
강사 분이 순수하게 글쓰기로 벌어들이는 한 달 수익도 공유해주셨으나, 이 글에서는 밝히지 않겠다. 글쓰기의 현실을 알고 싶다면 내가 들었던 강의를 듣는 게 좋겠다.
주 60시간에 육박하게 일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의지 박약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을 쓰기도 쉽지가 않았다. 회사 탈출, 독립 준비는 고사하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요즘이니까.
글 소식이 뜸하다고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 덕분에, 일을 줄여주지는 못할 망정 근무 시스템 상 초과근무시간 덜 입력하자고 종용하는 누구 덕분에, 돈 받는 값 제대로 못하는 누구 덕분에. 다시 글을 써낸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이, 이 에너지를 쏟아내야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더러운 꼴 안 보려면 열심히 살아내야지. 뭐라도 해야 여기서 이 꼴을 안 볼 것 아냐.
어제 친구와 나눴던 대화 중 노동에 잠식되지 말자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현생 살기 정말 힘들지라도,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해낸다. 돈 벌기 뭣 같아도, 버티는 게 뭣 같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벗어날 준비를 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