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의 의미
언제나 늘 숙취 없는 취기를 누리고 싶다. 그건 나에게 국한된 사치스러운 바람일지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에 누군가는 이러한 숙취 없는 취기라는 축복을 누리고 즐거운 음주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운동을 하다 보면 때로는 즐기자고 시작했지만, 죽자고 달려 들며 잘해내고 싶어 안달이 나는 운동들이 많다. 주로 승부가 가려지는 운동들이 그러한데, 그래서 나는 달리기라는 운동이 참 좋은가보다. 그저 홀로 묵묵히 그렇게 꾸준히 해낸 만큼 내가 너보다 잘하는 운동 이라서랄까. 매우 평등하다. 이 같은 평등을 매일 누리고 싶어 난 매일 그렇게 달리는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가지고 태어난 것도 평등하지 않고 누리고 살아가는 운 또한 평등하지 않다. 억울하다면 한없이 억울한 것이 인생이고, 그렇지 않다면 한 없이 지루한 것이 인생이기도 한 것이다. 때로는 이러한 불평등한 상황에 분노가 치밀어 지처 쓰러지기도 한다. 그저 그 분노는 내 안에서 폭발하여 내 스스로만 불타오를 뿐이다. 나를 둘러싼 그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바람은 불고 계절은 바뀌고 시간은 흐를 뿐이다. 곱게 치장한 머리칼을 아침 바람에 망가진다고 화내 보아야 스스로만 바보가 될 뿐이다.
우리는 도덕이라는 의미를 다시금 떠올릴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의 개념은 ‘Arete’ 즉 탁월함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인간은 반복되는 실천, 즉 덕을 통해 선함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떠한 배려의 의미 보다는 개인적인 자아의 완성에서 오는 탁월함을 의미한다. 즉 덕이란 우리를 선하게 만드는 습관인 것이다.
올바른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야한다. 때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쪽으로 치우쳐 분노하고 힘들어 한다. 그 이전에 너와 나의 올바르고 평등하며 이타적인 자아가 고민되지 않는다면 우린 늘 언제 어디서나 분노에 차오르고 힘들 것이며, 그로 인해 이 모든 사회의 무질서가 계속될 것이다.
집단 이기주의가 난무한 이 세상에 누가 누굴 지탄할 수 있겠는가. 무릇 도덕이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영향 받을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똑같이 고려하면서 이성에 따라 행동 하려는 노력, 즉 그렇게 하는 최상의 이유가 있는 행위를 하는 것’ 이라고 제임스 레이첼스의 <도덕 철학의 기초>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요즈음 부쩍 어릴 적 도덕 교과서를 장난하여 도적이라고 바꾸어 놓은 사진을 본 것이 생각난다. 반짝반짝 빛나는 12월의 작은 촛불들의 온기에 2025년은 부디 더 따뜻하게 빛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