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서평

독자의 윤리와 서사 본능을 시험하는 세겹의 거짓말

by 조범준

1권은 살아남기 위해 윤리를 내려놓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잔혹한 본성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순간, 그것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아이의 모습으로 더욱 잔혹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처음에 ‘어쩜 이리 못됐을까, 어쩜 이리 잔인할까’ 하며 읽기 시작하지만, 점차 그들에게 동조하고 이해하게 된다. 짧고 냉담한, 일기 형태의 진술처럼 보이는 문체는 이러한 동조를 더욱 가속시킨다. 독자는 판단하기보다 기록을 읽는 사람이 되고, 어느 순간 그 기록의 윤리를 함께 짊어진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마치 클라이맥스처럼 2편을 기대하게 만들며 끝난다. 이 악마 같은 아이들이 갈라서게 된 데에는 분명 더 큰 서사가 있을 것처럼, 우리는 거대한 이야기의 서막을 본 기분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독자는 2권으로 던져진다. 시간이 흐르고, 남겨졌거나 떠나간 인물 중 한 명은 놀라울 만큼 차분해 보인다. 마치 1권의 치열함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은 우리가 1권을 읽으며 무의식적으로 붙잡고 싶었던 합리화, 즉 ‘전쟁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더 잔인해질 수 있겠는가’라는 믿음을 오히려 증명해 주는 듯 보인다. 주인공은 세상의 짐을 짊어지고 묵묵히 살아간다. 견뎌낸다. 그러나 1권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상황들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긴장한다. 움찔거리며 어떤 폭발을 기다리지만, 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과 사건이 흐르는 동안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글을 남기려 애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글 안에, 1권을 읽으며 이미 동조해 버렸던 우리의 죄책감을 밀어 넣는다.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은 인물의 속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자기기만을 폭로하는 장치가 된다. 우리는 그 글을 통해 1권에서 함께 저질렀던 윤리적 동조를 뒤늦게 단죄받고, 동시에 용서받고 싶어 한다.


잔혹한 동화 같기도 하고, 호러 영화 같은 장면들을 지나, 작가는 갑자기 지극히 현실적이고 가난하며 구차한 세계로 우리를 데려온다. ‘이제 현실이구나’, ‘이제 진실이구나’라는 감각이 든다. 마치 앞선 두 편이 모두 이 지점을 향해 달려온 서막이었던 것처럼 느끼게 하며, 작가는 대단원의 본극이 시작된 듯한 착각을 유도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드라마 속에서 남겨진 자들의 아픔과 원망은 서로를 향하지만, 누구도 누구에게 화살을 돌릴 수는 없다. 고통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삶 그 자체의 조건처럼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치 쇼펜하우어적인 인생관을 체현하듯, 설명되지 않는 고통 속에서 그저 살아간다. 그렇게 독자는 이 모든 세 가지 이야기가 결국 주인공이 남겨놓은 단 한 권의 소설로 귀결될 것이라 기대하게 되지만, 끝내 그것은 좌절된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결국 모두 다른 이야기였다.


우리는 이렇게 서사의 흐름에 속아 존재를 우리의 환상 속에 가두어 끌고 간다. 이 작품은 어쩌면 가장 본능적인 인간의 서사 구조를 자극하는 소설이다. 음악을 들을 때 특정 코드 다음에 자연스럽게 이어질 코드를 기대하듯, 우리는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할 것이라 믿는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본능을 정면으로 이용한다. 각 권이 던지는 철학적 메시지도 뛰어나지만, 이 작품이 진정 실험적인 이유는 형식 때문이 아니다. 독자가 끝까지 믿고 있던 ‘이야기는 결국 하나로 수렴할 것’이라는 서사적 본능을 끝내 만족시켜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놀라울 만큼 대중적이며 강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실험적 작품이 이토록 치밀하고 매혹적인 방식으로 독자를 끌어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오랜만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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