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점' 너머로
고통은 어느 하나 예쁘지도 유쾌하지도 않지만 그것은 우리 각자의 것으로 고유하며, 그렇기에 그것을 통과하는 인간의 모습은 의외로 귀엽거나 매력적일 수 있다. 우리가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때, 이유리의 소설 속에서 그런 일이 가능해진다. - 박서련(소설가)
달린다는 것은 뭐랄까, 몇 초 전의 나를 끊임없이 뒤에 두고 오는 일 같았다. (「달리는 무릎」, 210쪽)
1. 세컨드 윈드
한창 달리기에 빠졌을 때, 세컨드 윈드를 느껴보고자 무리해서 달린 기억이 있다. 군대 후임과 10k를 목표로 삼아 대연병장을 마주 보고 달렸을 때였나. 후임과 약 반 바퀴를 분기로 마주칠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기로 약속하고 뛰기 시작했다. 초반에야 자신감 넘치게 뛰었으나, 곧 숨은 턱 막히고 다리는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무거워졌다. 나이키 런클럽 오디오 가이드가 러닝 시작 전 일러준 올바른 러닝 자세와 동기부여도 까맣게 잊고 10k만 향할 뿐이었다. 포기할까, 그만할까, 싶다가도 맞은편에서 열심히 달려오는 후임을 봐서라도 꾸역 해냈다. 세컨드 윈드는 무슨, 나는 10k를 달성하자마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물론 뿌듯하기야 했지만.
세컨드 윈드는 '지구력 운동 중 극심한 피로나 숨 막힘을 겪다가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운동 초반에 느껴지는 호흡곤란, 가슴 통증으로 운동을 중지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데, 이 시점을 '사점'이라 한다. 사점을 잘 넘으면 고통이 줄어들고 호흡이 순조로워지는 '두 번째 바람'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유리의 소설집 『비눗방울 퐁』은 이별이라는 '사점'을 넘어 '세컨드 윈드'를 맞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이야기의 대주제는 곧 이별이다. 이별의 대상은 가족(「크로노스」)이나 연인(「그때는 그때 가서」,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담금주의 맛」, 「보험과 야쿠르트」, 「비눗방울 퐁」)에 머물지 않고, 동물(「퀸크랩」)과 외계인(「달리는 무릎」)까지 확장된다. 이유리는 SF적 상상력을 곁들여 다양한 이별을 명랑하고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앞서 서술했듯, 『비눗방울 퐁』의 등장인물은 모두 이별한다. 결코 사소하지 않을 이별을 통과하며 인물들은 "나는 얼마나 별거 아닌 사람이었던 걸까"(「담금주의 맛」)라며 자조적으로 묻기도 하고, "그럼 나는? 나는 어떡해?"(「비눗방울 퐁」) 하고 상대를 원망하기도 한다. 물론 이별은 너무나 보편적인 일이라, '내 일이니 특별하고 괴롭지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그렇군 하며 들어 넘겼을 스토리(「담금주의 맛」)'가 된다. 무릇 사람이라면 겪는 지난한 이별. 다만 각자의 이별 극복 방법은 참 다르다. 소설 속 인물은 어떻게 사점을 넘어 세컨드 윈드를 맞이했을까?
2. 『비눗방울 퐁』
소설집 한 권 속엔 '가상 세계'를 넘나들거나 '감정 전이'나 '기억-담금주'라는 미묘한 요소에 매료되는 인물, 혹은 '비눗방울이 되는 약'을 먹어 퐁 터지는 인물도 등장한다. 심지어는 '외계인'과의 소통과 이별을 경험하는 인물까지. 이유리의 작품 세계는 가히 넓다.
그 세계에서 이야기의 화자는 대부분 타의에 의해,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이별에 푹 내던져진 사람이다. 「담금주의 맛」은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한 화자가 '인간의 기억을 우려내 담그는 술'을 구매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담았다. 큰 유리병에 술을 붓고 안에 들어가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면, 술이 익는 속도와 동시에 관련된 기억이 몸에서 천천히 우러난다는 '기억-담금주'. 마음이 편안해졌다 싶은 순간에 주조를 멈추고 술맛을 보기만 하면 된다.
잘될까. 잘되면 무엇이 될까. 지찬규를 사랑하지 않았던 때처럼, 아니 아예 몰랐던 때처럼 돌아갈까. 무의 상태가 될까. 그게 잘될까.
퐁당, 술 표면에 발을 담갔다. (「담금주의 맛」, 152쪽)
화자는 유리병에 몸을 담그며 남편의 배신을 알게 된 날부터 남편과 상간녀가 함께 집으로 찾아온 날, 혹은 의외로 즐거웠던 시절까지 세세하게 떠올린다. 그럴수록 화자는 아픈 기억과 이별의 상처가 점점 희미해지는 묘한 경험을 한다. ’확실히 단단하게 웅크려 얼어붙어 있던 마음 가장자리가 조금 노골노골해진 것 같’고, ‘남의 일인 양 고개를 돌리고 서 있던 지찬규를, 이제는 떠올릴 수‘ 있었다. 정말 담금주 덕분일까, 그저 무뎌진 걸까. 그럼에도 확실한 건, 전 남편 때문에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머쓱하게 변명하는 소리를 듣다가 문득, 아주 오랜만에 지찬규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지찬규는 아침에 뭐였더라. 밥이었나 빵이었나, 아니면 커피 한 잔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쪽이었던가. 분명 아침마다 함께 뭔가를 먹긴 먹었던 것 같은데 그게 구체적으로 뭐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담금주의 맛」, 172쪽)
「달리는 무릎」에서 묘사하는 이별은 외려 가볍다. 화자의 결심과 성장이 이별로 완성되는 서사가 주축을 이룬다. 새벽에 달리기를 하다 천변 아래로 되게 넘어진 화자는 오른쪽 무릎에 아주 큰 상처가 나버린다. 두터운 바지는 세로로 쭉 찢어졌고, 그 안엔 흰 뼈마저 보인다. 겨우 119를 불러 속으로 여덟 바늘, 겉으로 아홉 바늘을 꿰맸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막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에 꿰매 놓은 무릎 안쪽에서 누군가 “마침내 들어왔구나” 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는 외계인이었다. 심히 다쳤던 무릎도 하루아침에 낫게 해 주고, 계속 말도 걸어온다. 그는 우주가 만들어지기 전 투표로 진행된 빅뱅으로 몸이 갈가리 쪼개져 우주 전체에 흩뿌려진, 이를테면 피해자였다. ‘공동체에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이를 선별’해서 그들의 육체를 빼앗기 위해 진행된 투표가 지금 우리가 아는 빅뱅으로 이어졌다. 외계인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나’의 운동 에너지를 직접 흡수하고 증폭시켜 추진력으로 바꾸기 위함이다. 지구 중력을 벗어나 우주로 나가기 위해. 외계인은 돌아가서 그 투표가 옳았는지 아닌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옳지 않았다면 싸울 생각이다.
화자는 무릎을 다쳐 심히 아픈 와중에도 내일 가야 할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걱정하고, 외계인이라도 대화할 대상이 생겼다는 이유에 즐거워하는 인물이다. 본인은 ‘돈 많고 똑똑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 외계인과의 대화에서도 자신감을 잃고 주저하던 화자는 외계인이 우주로 떠나가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외계인과 다르게 자신은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화자는 외계인이 싸움에서 이겨 돌아오는 그날까지는 ’찾아 두고 싶다‘고 다짐한다. 뭘 찾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엇이든지 말이다.
선생이 되면 돌아와서 자랑하겠다고 했었지.
그때가지는 나도 찾아 두고 싶다. 나는 땅에 발을 구르며 생각했다. 뭘 찾고 싶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외계인이 돌아온다는 건 싸움에서 이겼다는 뜻일 것이다. 그걸 알리러 기나긴 길을 달려온 그에게 난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소리나 하고 있을 순 없으니까. 실패하든 성공하든 뭐가 됐든 좋으니 일단 가 본 다음에, 그게 맞았는지 아니었는지 이야기해야지. 그땐 더 비싼 술 마셔야지, 네 캔에 만 원짜리 말고.
나는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다 돌아섰다. 집 반대쪽으로 천천히, 곧이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무릎」, 소설의 마지막)
3. 사점 너머로
달리는 내내 바람은 불어온다. 아니, 불어온다기보단 내가 직접 바람을 만들어낸다. 상쾌하고 기분 좋은 바람을. 다만 사점에 가까워질수록 상쾌하게 느끼던 바람은 온데간데 사라진 것만 같고, 그저 힘들다. 그러니 반드시 사점을 넘어야 한다. 그래야 두 번째 바람이 불어온다.
미처 소개하지 못한 다른 작품의 인물들도 모두 사점을 넘으려 부단히 애쓴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깨닫는 이들도,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물론 아직 깨닫지 못했더라도,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에겐 꼭 세컨드 윈드가 불어올 것이다.
소설가 박서련의 발문에 따라, 결국 ‘이별을 견뎌낸 존재는 마침내,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다. 결국 사람은 이토록 보편적이고 참으로 아픈 이별을 너머로 더욱 나은 ’나‘가 된다. 물론 상실은 언제 겪어도 참 쓰라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