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촬영 중 아역 배우를 학대한 감독을 계속 추앙해야 하는가. 이 소설의 미덕 중 하나는 계속 추앙할 수 있는 사람과 이젠 그럴 수 없는 사람 사이의 차이, 즉 ‘겪은 만큼 분노하는’ 그 차이의 존재가 공동체의 윤리적 난제임을 알고 있다는 데 있다. -신형철(문학평론가)
어쩐지 죄를 저지르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흥분되었다.
그건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그래서 더더욱 허무한, 어떤 모럴.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183~184쪽)
1. 조진웅 논란, 소설로 읽기
나의 아버지는 경찰이라 수사물을 좋아하신다. 피는 못 속이는지 나도 아버지와 취향이 대개 비슷하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 봤던 수사물 중 손꼽히는 명작을 뽑자면 역시 <시그널>이 빠질 수 없다. 오래된 미제 사건을 과거로부터 연결된 무전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형사들의 이야기라니.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에게도, 오랜 경찰 생활을 해오신 아버지에게도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시그널>이 시즌 2가 나온다니. 10년 만에! 꼭 본방사수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나… 최근 조진웅 배우의 과거 범죄 이력이 뒤늦게 알려지며 <두번째 시그널>의 방영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소년범’이었던 배우가 ‘경찰’ 역을 맡는다고?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나. 윤리적인 입장에선 시즌 2의 방영은 당연히 무산되어야 한다. 그런데 <두번째 시그널>은 티브이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로 제작된 드라마고, 10년을 기다린 팬이 있고, 모든 에피소드의 촬영과 편집은 이미 마무리 단계, 심지어 조진웅은 드라마의 핵심 인물이라 통편집도 불가능한 상황… 제작사는 ‘조진웅 파문’과 ‘팬의 기대‘ 사이에서 열띤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와 『2025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수록 작품,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바로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 속 ‘나’는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수려한 외모와 언변’을 가진 감독 ‘김곤’을 열렬히 지지한다. 그런데 김곤이 촬영 중 아역 배우를 폭행했다는 추문과 낭설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를 계속 사랑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이런 ‘나’의 자기성찰이 소설의 주된 줄기를 이룬다.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2.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 『2025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소설 대목을 인용함.
이른바 나만 알고 싶은 감독인 김곤. ‘나’는 N차 관람에, 영혼 보내기(표만 예매해 집계 관객 수를 늘리는 행위)까지 불사하는 김곤의 골수팬이다. 그래서 김곤이 자신의 작품 <안타고니스트> 촬영 중 아역 배우를 폭행했다는 낭설이 돎에도 일단 그를 끝까지 사랑해 보기로 한다. 물론 그녀의 남편(길우)과 지인들은 그 사건 이후에도 변함없이 김곤을 추앙하는 그녀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자긴 그런 인간을 소비하고 싶어?
길우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내 윤리의식에까지 의구심을 품었고, 끝내는 어디에 단단히 홀린 게 아니냐며 화도 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단단히 홀린 건 내가 아니라 길우였다. 그의 반응은 아무것도 모르는 대중의 반응과 유사했다. (…) 어째서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나락으로 보내려 안간힘 쓰는 걸까. 도대체 왜 사실관계도 명확하지 않은 사건을 멋대로 공론화하고 거짓말까지 얼기설기 덧붙여 온갖 데로 퍼 나르는 걸까. (144쪽)
친구들은 어떻게 아직도 김곤을 지지할 수 있냐고, 그건 비윤리적이며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 그들 앞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김곤을 변호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잖아. 그리고 원래 인터넷에선 별별 말이 다 도니까……
친구들이 기막혀하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네 아이한테 같은 일이 일어나도 그 인간 감쌀 거니? (154~155쪽)
그녀에게 있어 김곤은 혐오스럽기는커녕 오히려 안쓰러운 존재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예민해질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으니까. 다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자신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친구들 말처럼 내 아이의 일이었대도 김곤을 변함없이 추앙할 수 있을까. 그녀는 그 질문 앞에만 서면 말문이 막힌다. 골수팬인 그녀에게도 김곤을 순수하게 믿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실수라 해도 일곱 살 난 아이에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친구들 말처럼 만약 그게 내 아이의 일이었대도 나는 김곤의 영화를 몇 번씩 관람하고 굿즈를 소비할 수 있었을까. 늘 헷갈렸지만 그럼에도 김곤의 신작을 기다렸고 그의 기사에 선플을 달았다. 그 사건이 가십으로 불거졌을 때에도, 열기가 식고 냉소와 무관심만 남은 뒤에도 변함없이 그를 엄호했다. 뒤에서 남들 모르게. 친구들 앞에서는 그래, 너희 말도 맞지, 적당히 맞장구쳐주었지만. (154~155쪽)
김곤을 비호하면서도 의문을 감출 수 없던 순간들이 떠올라서였다.
익명의 네티즌이 기사 밑에 남긴 ‘얘 고딩 때 일진이었음’ 같은 댓글을 읽으면서 이게 진짜일까? 마음이 흔들렸던 순간. 김곤의 영화를 다시 보다 이전에 감지하지 못했던 폭력의 전조나 코드를 목도하고 감독의 모럴이 투영된 건 아닐까? 의혹에 빠졌던 순간. (159쪽)
그녀에겐 그런 사건이 있었음에도 김곤을 순수하게 사랑하겠다는 뻔뻔함이 없다. 또한 주변 사람 앞에서 자신 있게 김곤을 변호할 용기도 없다. 이제 그녀는 온갖 낭설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똑같이 김곤을 우러르며 함께 행복을 나눌 동료들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녀는 ‘길티 클럽’ 모임에 들어가게 된다. 김곤의 세번째 작품 <길티 플레저>의 이름을 따온 듯한 길티 클럽엔 거르고 걸러 초대되었다는 그의 골수팬 스물여섯 명이 모여있다. 바깥과 다르게 ‘모욕과 혐오가 비집고 들어올 수 없는 든든한 바운더리’를 두른 공간에서 ‘나‘는 또 다른 골수팬들과 맺는 나름의 유대를 즐긴다.
길티 클럽의 총대는 오프라인 정모를 제안한다. 김곤의 신작 <안타고니스트>가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기 때문에, 그 생중계를 보기 위한 정모였다. 심지어 시상식이 끝난 후엔 김곤과의 영상통화까지 마련돼 있다. 그녀는 남편에게 출장이 잡혔다는 거짓말을 하며 정모가 열리는 이태원으로 향한다. ‘어쩌다 김곤을 좋아하게 되었나’와 같은 예상 질문까지 준비하면서.
정모에 모인 인원은 그녀를 포함해 총 여덟이다. 그녀 옆에 앉은 여자는 막 돌이 지난 아이가 있는 주부(미지 선생님)였고, 나머지 여섯 명 중 네 명은 영화과 재학생 혹은 졸업생, 둘은 프리랜서 창작자다. 그녀 눈엔 주부를 제외한 이들이 모두 시네필 내지는 평론가처럼 보인다.
<안타고니스트>의 각 장마다 다른 화면비가 사용된 것을 두고 ‘김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인간의 가변성이다’ ‘아니다. 기성을 향한 반항과 탈주다‘ 논쟁했고, (…) 시네마스코프니 레터박스니 블랙바니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직 정식 개봉도 안 한 영화를 본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부럽기도, 한편으론 소외감이 들기도 했다. (152쪽)
저들 틈에 끼기엔 그녀의 ‘영화 보는 눈’은 한참 모자란 것이었다. 그렇다고 멀뚱히 앉아 있기도 민망했던 그녀는 자신처럼 멋쩍게 앉아 휴대폰만 보던 옆자리 주부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한다. 다만 주부는 그녀의 질문에 반응하긴 하나 귀를 기울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에겐 남편과 지인들과는 다르게 오롯이 김곤을 지지하는 그들과의 자리가 참 소중하다.
인격자라도 된 듯 돌을 던지는 사람들과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르겠지. 오늘만큼은 ‘길티’ 없이 ‘플레저’만 향유할 수 있을 테지. (156쪽)
나 역시 김곤을 순수하게 믿고 싶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었다. 대중의 규탄을 외면하고 싶었다. 저변에서 스멀스멀 밀려오는 의심의 목소리도 무시하고 싶었다. 그의 작품에 대한 애정을 떳떳하게 공유하고 싶었다. 내 순수한 사랑을 죄의식 없이 드러내고 싶었다. (160쪽)
그러나 그들은 은근히 파벌을 형성하며 그녀를 우습게 만든다. 그녀와 주부의 대화를 들은 그들은 김곤을 향한 그녀의 진지한 애정을 귀엽다거나 소녀 같다는 말로 일축한다.
-아니 저 선생님들 너무 귀여우셔.
-왜요? 뭐라고 했는데요?
-감독님 영화 뭐 좋아하냐고. <인간 불신>이 특히 좋으시대. 너무 귀엽지 않아?
총대의 말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진짜 귀여우시다.
-되게 소녀 같으세요.
소녀. 그 말이 썩 달갑게 들리진 않았다. 사람들이 왜 우리를 두고 웃는지 그 저의도 알 수 없었다.
(…)
그들이 낄낄댈 때마다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156~157쪽)
그들은 요상하고 현학적인 말만 해대며 그녀와 주부를 살며시 무시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순 없다. 아직 시상식은 시작되지도 않았고, 기대되는 김곤과의 영상통화도 남아있다. 그녀는 그들에게 소외될수록 주부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주부와는 어려운 비평이나 해석 말고, 오로지 김곤과 그의 작품을 향한 애정을 공유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주부는 처음으로 ‘영상통화 언제 하는지 아세요?’라고 그녀에게 묻는다.
-영상통화 언제 하는지 아세요?
그녀 역시 김곤과의 영상통화를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반색하여 답했다.
-선생님도 기다리셨구나. 저도 그거 때문에 여기 온 건데. 저는요……
그녀가 내 말을 끊었다.
-모르세요?
-네?
-영상통화요. 제가 지금 막차 시간이 한 시간밖에 안 남아서…… 마음이 급한데.
(…)
-제가 감독님한테 정말 드릴 말씀이 있어서 통화만 하고 가고 싶은데, 시간이…… (163~164쪽)
주부는 그 자리에 모인 다른 이들과 똑같이 김곤과의 영상통화를 애타게 기다린다. 다만 주부가 영상통화를 기다리는 이유는 그들과는 좀 달랐다.
-그런 일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도 있었다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
콕 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미지 선생님은 분명 그 사건을 겨냥하고 있었다. 점점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총대가 황급히 말을 보탰다.
-에이, 선생님. 영화판 원래 그래요. 크고 작은 실수 다 있어요. 감독님도 실수로……
-그건 실수가 아니잖아요. 눈물 연기 못한다고 애 팔뚝을 피멍 들 때까지 꼬집은 게 어떻게 실수로 포장돼요?
(…)
-애를 낳아보니 알겠더라고요. 그게 실수가 될 수 없다는 걸요. 끔찍한 일이에요. 그건.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몇 번이고 가다듬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감독님께 물어보고 싶었어요. 감독님은 한 번도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잖아요. 미안하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게 없던 일이 될 순 없겠지만…… 사람은 변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테이블 밑에 감추어져 있던 폭탄을 굳이 꺼내 불을 붙이고 있었다. 머리가 굳고 입술이 말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떨떠름한 얼굴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170~171쪽)
주부는 모두가 외면하던 그 사건을 굳이 꺼내든다. 다만 총대도, 총대 옆에 앉은 학생도, 프리랜서 둘도 이에 부정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만 바라본다. 그래서 그녀는 ‘나‘라도 항변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나’는 ‘지독한 사랑에 빠져 있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더 가혹한 거 아닌가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입증된 것도 없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사건을 어떻게 사실이라 단정 짓는지, 왜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모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게 더 가혹한 일 아니냐고 나는 말했다. 그 여자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힘주어 덧붙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믿어야죠. 우리는 그래야 되는 거 아녜요? (171~172쪽)
주부는 영상통화까지 끝내 기다리지 못하고 술자리를 피해버린다. 막차 시간이 임박해 그랬을지, 자리가 불편해 피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녀는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내 사랑을 제대로 입증했다’고 생각하며 이내 만족한다.
다만 아쉽게도 김곤과의 영상통화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총대는 감독님께 연락을 받았는데, 현장이 너무 어수선해서 도저히 통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안타고니스트>의 GV를 하니 그때 보자며 미안하다는 듯 말을 보탠다.
얼마 후, 그녀는 GV에 일찌감치 도착해 <안타고니스트>가 상영되길 기다린다. 그러나 상영 시간이 임박해 극장 불이 꺼질 때까지도 길티 클럽 회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홀로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그녀는 영화의 정교하고 밀도 있는 구성에 감탄하다가도 아역 배우 사건이 떠올라 찜찜해진다.
<안타고니스트>는 시작부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데뷔작부터 이어온 김곤표 숏과 과감한 롱테이크, 단선적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작품 속에 밀도 있게 담겨 있었다. 선악의 경계에서 반동하는 인물을 보며 감탄하다가도 시선과 마음이 문득 엉뚱한 곳으로 향할 때도 있었다. 문제의 그 장면은 언제 나올까. 누군가 비난을 퍼부으며 자리를 뜨진 않을까. 얘네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서사가 극으로 치달을수록 나는 작품에 더 깊이 매료되었다. 아역 배우가 등장하는 문제의 장면은 전부 편집되어 있었다. 애초 그 장면은 찍지도 않은 것처럼 말끔하게. 안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찜찜했다.
그치만…… 이게 맞겠지.
정교하게 맞물리는 서사에 집중하며 찜찜함을 애써 묻었다. (175쪽)
GV는 영화가 끝난 후 예정대로 진행됐다. 행여 누군가 그 사건을 언급하진 않을까 두려웠지만 우려와 달리 GV는 티 한 점 없이 유쾌하게만 흘러간다. 김곤은 그녀를 포함한 관객들과 질문을 주고받으며 신중하고 유머 있게 대화를 이끌어나간다.
모든 질의응답을 마치고, 소감 한 말씀 부탁한다는 사회자의 말에 김곤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바로 김곤 자신의 낭설과 추문에 대한 이야기를. 김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자기 안의 무언가가 펑 터지는 느낌을 받는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난 이 년간 저는 하루하루를 참담한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주변이 고요해졌다.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김곤이 말을 이었다.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쳤다는 것 잘 압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작업했던 스태프들, 그리고 제 작품을 사랑해 주신 관객분들께 죄송합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영현군에게도 진심으로 사죄하려 합니다.
김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거듭 말하며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깊이 수그렸다. 그리고 그 순간……
펑.
내 안에서 무언가 터졌다. 매캐한 연기가 사방을 감싸듯 눈앞이 뿌예졌다.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왜 이러지.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
관객이 떠난 뒤에도 나는 객석에 홀로 앉아 있었다. 김곤의 사죄는 담백했고 진정성이 어려 있었다. 구차한 변명도,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다는 식의 군더더기도 없었다. 그런데 왜…… (178쪽)
그런데 왜 생각할수록 더…… 허무해질까. 모든 게 흠 없이 온전한데 왜 나만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살점이 다 뜯겨 너덜너덜해진 것처럼 괴로운가. 왜 이리 지독히도 헛헛한가. (179쪽)
소설은 GV를 끝으로 그녀가 남편과 함께 치앙마이에 여행을 간, 몇 년 뒤의 시점으로 옮겨간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김곤의 팬이 아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주목받는 감독인 김곤이 신작을 내도, 구태여 찾아보진 않는다. 들끓던 관심과 애정도 이제는 증발되었으니까.
그녀와 남편은 치앙마이 패키지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타이거 킹덤 체험'을 즐긴다. 다만 그녀는 체험 내내 느껴지는 악취로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다. 남편과 패키지여행 일행 모두 느끼지 못하는 지독한 악취를 참아 가며 자이언트 타이거 체험 줄을 향한다. 안전을 위해 발톱과 송곳니를 뺀 호랑이는 혀를 길게 늘어뜨린 채 미동이 없다. 그녀의 눈에 호랑이는 참으로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체험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상황에 익숙해지고, 본인을 괴롭히던 악취 또한 사그라드는 경험을 한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그녀의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자기도 한 장 찍자.
길우가 자리를 내주었다. 망설이다 반석 위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호랑이의 등에 손도 얹어보았다. 상황에 익숙해지자 골을 뒤흔들던 악취도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호랑이가 불편한 듯 근육을 움찔될 때마다 척추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쩐지 죄를 저지르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흥분되었다.
그건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그래서 더더욱 허무한, 어떤 모럴.
떨쳐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미 일어난 일은 없던 일이 될 수 없으니까. (183~184쪽)
3.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이 소설은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라는 한 단어로 느슨하게 압축할 수 있다. 길티 플레저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큰 쾌락을 얻는' 심리를 뜻하는 용어다. '피지 짜기'나 '잔털 뽑기', '치석 제거'와 같은 콘텐츠를 남몰래 보며 쾌락을 느끼는 것이 한 예다. 소설 속에선 추문이 있었음에도 김곤을 변함없이 지지하는 팬들의 모습이나,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호랑이 체험을 즐기며 쾌락을 얻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의 주된 내적 갈등은 ’길티‘ 없이 ’플레저'만 향유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또한 그러한 갈등은 앞서 이야기한 <두번째 시그널> 문제와도 깊이 연결된다. 조진웅 파문은 팬들에게 크건 작건 부담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물론 확실하게 본인 의견을 정할 수 있는 이들은 부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조진웅은 이미 과거에 모든 죗값을 치렀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범죄자'가 '경찰' 역을 맡냐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혹은 '인간 조진웅'과 '배우 조진웅'은 아예 별개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보인다.
다만 작품 속 주인공처럼 자신의 마음을 딱 잘라 결정할 수 없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들은 '길티'와 '플레저'라는 양가감정 사이에서 심히 갈등한다. 10년을 기다린 드라마라 기대되지만… 피해자를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고… 그들에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참 야속할 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GV에서 있었던 일이 계기가 되어 김곤을 향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정할 수 있었다. 그녀는 김곤의 해명을 들으며 자기 안의 무언가가 '펑' 터지는 느낌을 받는데, 그 무언가가 사라진 자리엔 허탈과 허무만이 남는다. 아마 그건 김곤을 지지하던 그녀의 마음이었나 보다. 그녀 속에서 오랜 시간을 밀도 있게 차지하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니 참으로 헛헛할 수밖에.
이 소설의 묘미는 주인공의 타이거 킹덤 체험에서 드러난다. 그녀는 체험하는 내내 심한 '악취'를 느낀다. 그 악취는 결국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동물 체험에 임한다는 '죄책감'이었고, 김곤을 향한 입장을 잘 정리한 경험이 있는 그녀만 느낄 수 있는 냄새였다. 이는 그녀가 GV 사건을 계기로 한 단계 성장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녀는 체험하면 할수록 악취가 점점 옅어지는 느낌을 받고 묘하게 흥분하기까지 한다. 인간에게 있어 '길티 플레저'라는 심리가 얼마나 중독적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실 정답이 없는 문제 같기도 하다. 과연 '경찰', '정의'라는 윤리적인 메시지를 핵심으로 전개되는 <두번째 시그널>에 '소년범 배우 조진웅'이 별다른 조치 없이 드러나게 된다면 우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그리고 그 입장을 변함없이 고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