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사랑과 휩쓸리는 사랑의 차이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급류』, 104쪽)
1.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영어에서도 'fall'이라는 단어를 활용해 'fall in love'라고 표현하며, 일본어에선 'おちる(오치루 - 떨어지다, 빠지다)'를 활용해 'こいにおちる(코이니오치루 - 사랑에 빠지다)'라며 사랑을 표현합니다. 스페인의 20세기 대표적 철학자인 오르테가 이 가세트도 자신의 저서(『사랑에 관한 연구』)에서 사랑은 '빠진 상태'임을 강조합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 능동적인 감정이며 특정 대상에게 온 정신이 '빠져' 있어야만 성립되는 감정이므로 그렇습니다.
다만 무언가에 '빠진' 상황은 소설에서도 언급하듯 대개 부정적입니다. 또한 늪과 함정과 절망처럼 사랑도 한번 빠지면 좀처럼 나올 수가 없습니다. 늪과 함정과 절망보다 더 깊은 구렁텅이를 사랑이 만들기도 합니다.
『급류』는 그런 밀도 높은 사랑에 빠져버린 '도담'과 '해솔'의 이야기입니다. 도담과 해솔은 여러 사건을 겪으며 사랑의 좌절을 겪지만, 끝내 이겨내려 노력합니다. 그들은 그런 사랑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과연 소설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요?
2.『급류』 줄거리
[1부]
소설은 "불길한 예감은 결국 현실로 닥쳐왔다." 하고 이야기를 엽니다. 두 남녀의 시신이 서로 엉겨 붙은 채로 진평강 하류에 떠내려왔기 때문인데요. 남자는 도담이네 아빠 '최창석', 여자는 해솔이네 엄마 '전미영'이었습니다. 마을에선 다른 집 사람인 둘을 향해 불륜과 치정이라며 입을 모아 말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일 년 전, 열일곱의 해솔이 진평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도담은 자신과 또래인 해솔을 진평강에서 처음 마주치는데요, 소방관이자 수상 구조 교관으로도 근무했던 아버지를 둔 도담과 달리 해솔은 어설픈 수영 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해솔은 헤엄치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시작하는데요,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해솔을 도담이 구해냅니다. 그렇게 도담은 해솔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됩니다.
유속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데도 물살을 거슬러 소년이 있는 곳까지 헤엄치기란 쉽지 않았다. 힘겹게 도착한 도담이 가라앉고 있는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소년은 눈도 못 뜬 채 필사적으로 도담에게 매달렸다. 소년이 어떻게든 떠오르려고 몸부림치며 도담의 머리를 물속으로 찍어 누르는 모양이 됐다. (19쪽)
가슴 두근거리며 누군가를 좋아해 본 경험이 없었던 도담은 해솔의 등장 이후 사랑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해솔과 등하교를 함께하고, 진평의 구석구석을 같이 걸으며 쉼 없이 대화를 나누던 그녀는 해솔을 점점 사랑하기 시작하고 결국엔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도담은 말하고 있는 해솔의 입술을 바라봤다. 한번 입을 맞춰 보고 싶었다. 그 느낌을 상상하며 자신의 손등에 입술을 대고 연습을 해 보기도 했었다. (30쪽)
도담은 앞서 걷고 있는 희진 몰래 해솔의 손을 간질이고 만지작거렸다. 해솔의 손바닥은 굳은살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아기 피부 같았다. 어쩜 그렇게 부드러운지 만지고 있는데도 손만 떼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계속 만지고 싶었다. (33쪽)
"근데 난 진평에 오게 돼서 좋아."
"이런 시골이 뭐가 좋아."
"진심이야. 네가 날 구해 줬잖아. 나 서울에서는 늘 외로웠는데 너랑 있으면 외롭지 않아. 너랑 만나려고 진평에 오게 된 것 같아."
그 고백에 도담은 가슴이 뭉클해져 해솔을 끌어안았다.
(…)
도담이 해솔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도 네가 진평에 와서 좋아." (50쪽)
다만 도담은 친구 희진에게 의아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바로 도담의 아빠 창석과 해솔의 엄마 미영이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희진이 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창석은 분명 도담에게 태혁 삼촌과 낚시를 간다고 했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도담은 점점 창석을 의심하기 시작하는데요. 심지어 창석의 아내 정미는 심한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한 상황. 결국 도담의 의심은 해솔과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확신으로 변해가고, 도담은 그들에게 벌을 주기로 마음먹습니다.
도담은 해솔의 품에서 빠져나와 해솔을 똑바로 봤다.
"너네 엄마 어쩔 거냐고. 공범이잖아."
해솔은 도담의 표현에 화가 났지만, 싸우고 싶지 않아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없어?"
도담은 답답해하며 짜증을 냈다.
"넌 뭐, 무슨 생각이 있는데?"
해솔이 맞받아쳤다. 짙은 물안개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벌을 주자."
(…)
"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 (63~64쪽)
도담과 해솔은 창석과 미영이 오늘 밤 칠성폭포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정황은 충분했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기에 그들은 랜턴을 챙긴 후 그들을 미행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둘은 상의를 벗은 채 물속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번쩍하고 번개가 치면서 창석과 미영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두 사람은 상의를 벗고 그대로 물속에 들어갔다. 둘만의 낙원에 있는 것처럼 오히려 더 신나서 두 팔을 벌리고 수면에 떨어지는 비를 만끽했다. 천둥이 우르릉거렸고 미영이 꺅 하고 웃었다. (72쪽)
해솔이 더는 안 되겠다는 듯 랜턴을 빼앗아 들어 스위치를 눌렀다. 예상치 못한 해솔의 행동에 놀라서 도담이 손을 뻗었지만, 스위치가 눌리자마자 빛은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도달해 용소를 환히 비췄다. 어둠 속, 보이지 않던 세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용소에 몸을 담그고 있던 두 사람은 환한 빛에 깜짝 놀라 허둥댔다. (73쪽)
다만 해솔이 켠 랜턴에 놀라 창석과 미영은 계곡 속에 몸을 숨기려다 그만 급류에 휩쓸려버리게 됩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도담은 눈물로 흐릿해진 눈을 비볐다. 랜턴의 빛이 지나가며 계곡 아래쪽에서 창석과 미영이 서로를 꼭 붙잡은 채 급류에 떠내려가는 게 보였다. (76쪽)
[2부]
그 사건 이후 한 달 뒤, 해솔은 결국 서울의 할머니 댁으로 가게 되어 둘은 이별하게 됩니다.
"나 서울에 할머니네로 가."
해솔이 울먹이며 말했다. 더는 도담을 보는 게 괴로웠다.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팠다. 도담은 해솔의 눈을 마주 보려 하지 않았다.
"엄마 있어. 가."
"잘 지내야 돼. 연락할게. 안녕. 연락할게."
해솔은 다급하게 말했지만, 목이 잠겨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현관문을 벌컥 열고 정미가 나왔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네가!"
정미는 매서운 눈으로 해솔을 쏘아봤다. 정미에게서는 소주 냄새가 진동했다. 놀란 해솔은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떨었다. 도담이 울면서 정미를 말렸다.
(…)
"너희는 악연이야. 얽혀서 좋을 게 없어. 절대로 연락하지 마."
정미가 거세게 기침하며 도담의 손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이 집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해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철문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닫혔다.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83쪽)
그렇게 이별한 뒤 시간이 흘러 도담과 해솔은 어느새 대학생이 됩니다. 도담은 성인이 된 이후 학교 선배와의 연애에서 실패를 겪습니다. 그 이후에도 불순한 목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들로 인해 냉소에 빠지게 되어 그녀는 술과 담배에 의존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누군가에게 쉽게 빠졌고 쉽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도담은 고백해 오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나를 싫어하게 될 거야.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
대신 도담은 냉소에 빠졌다. 결국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소통보다 침묵을 더 신뢰했다. 심각하지 않고 한없이 가벼워지고 싶었다. (104쪽)
누가 사랑이라는 치사한 말을 발명했을까. 자신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을 두 글자로 퉁치는 것처럼, 사기처럼, 기만처럼 느껴졌다. 사랑 노래 가사를 들으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해솔이 떠오르는 것도 싫었다. (107쪽)
같은 시기의 해솔은 다른 대학의 약대를 다니게 됩니다. 도담과 달리 해솔은 대학에 가서도 술은 조금도 입에 대지 않습니다. 그날 폭포에서 있었던 일을 끊임없이 복기하며 다시는 끔찍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사고 이후 해솔은 이성이 아닌 감정을 따르는 것을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금지합니다. 다만 도담과 달리 해솔은 여전히 도담을 그리워하는데요, 다만 전화번호를 바꿔버린 도담에겐 연락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 스물한 살이 된 도담과 해솔은 우연히 술집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고 있었던 해솔은 학교 인근 호프집에서도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곳에 도담이 학교 사람들과 함께 동아리 회식을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담의 옆엔 연인으로 보이는 남자 '무경'이 앉아 있습니다. 도담이 동아리 선배 무경과 연애를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도담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도 지켜봤다. 해솔은 한참 망설이다가 뒤따라 나갔다.
"도담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던 도담이 해솔의 목소리를 들었다. 꿈결 같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도담은 해솔을 보고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두 사람은 눈을 맞춘 채 한동안 숨도 쉬지 못했다. 도담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나 여기서 일해. D대 다녀."
해솔은 호프집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나는 B대 다녀."
(…)
도담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놀라고 당황한 듯했고 반가운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힘든 기억을 떠올리기 싫은 걸까. 해솔은 초조했다. 어색한 시간이 흘러갔다. 무거운 침묵 속에 도담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했다. 그때,
"도담아."
무경의 목소리였다. 술집에서 나온 무경이 도담과 해솔을 번갈아 바라봤다.
"안 오길래 걱정돼서."
"나, 가 볼게."
도담이 해솔에게 말했다.
(…)
해솔은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119~121쪽)
그날 밤 해솔은 도담 생각으로 심장이 뛰어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요. 그래서 해솔은 도담이 다니는 대학교 정문 앞에 무작정 서 그녀를 기다리기로 합니다.
"여기서 뭐 해?"
도담이 물었다.
"기다렸어."
두 사람이 말을 할 때마다 흰 입김에 생겨났다.
"기다렸다고?"
"어제 번호를 못 물어봐서……." (123쪽)
그렇게 그들은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데요, 도담은 무경에 대한 마음보다 해솔에 대한 마음이 훨씬 크다는 걸 깨닫고 해솔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갑니다.
"나, 너무 외로웠어."
"나도야."
두 사람은 헤어졌던 그날처럼 그치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둘은 서로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날은 안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당장 외롭지 않게 안아야 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댐의 수문을 연 것처럼 지난 세월의 사무친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 냈다.
(…)
동아리 사람들이 볼 수도 있었다. 학교에 소문이 날 수도 있었다. 걱정이 고개를 들어도 도담은 멈출 수 없었다. 무경과 극장에 다니는 것도 잃고 싶지 않았고 좋아진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도담의 감정은 명확했다.
(…)
도담은 떨고 있는 해솔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두 사람은 3년이란 시간의 공백을 없애려는 것처럼 안았다. 다급하게 하나가 됐다. 두 사람에게 세상은 너무 시렸고 한시바삐 서로를 안아야 했다. (125~126쪽)
그러나 술과 담배, 유흥을 끊을 수 없었던 도담은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새벽 늦게까지 친구와 클럽에서 놀다 들어오기 일쑤였습니다. 해솔은 그런 도담의 모습이 싫었고, 도담은 해솔이 자신을 대책 없는 사람으로 보는 눈빛이 싫었습니다. 그들은 점점 다투기 시작하며 결국 도담은 진평에서의 이야기까지 들추게 됩니다.
"아, 진짜 싫어!"
"싫어? 내가 싫어?"
"그레! 넌 아무것도 몰라!"
"내가 뭘 몰라!"
"넌 몰라. 내가 거기서 어땠는지! 넌 진평에서 도망갔잖아!" (151쪽)
그럼에도 그들은 싸우고 화해하길 반복하며 나름대로의 인연을 이어갑니다. 다만 창석과 미영의 기일 아침, 도담의 엄마 정미가 집으로 찾아오면서 관계에 큰 균열이 생깁니다. 그렇게 그들은 또 한 번 헤어집니다.
한숨 쉬며 현관문을 연 해솔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현관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정미였다. 해솔과 도담의 입이 벌어졌다.
"엄마."
"아, 안녕하셨어요."
당황한 해솔이 잔뜩 주눅 들어 인사했다.
(…)
"하, 아예 살림을 차리셨어?"
정미는 기가 차서 탄식했다. 그러고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도담을 노려봤다.
(…)
"이미 충분히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니? 이제는 어미랑 연 끊게 만들려고?"
"……."
"바로 짐 싸서 이 집에서 나가. 그리고 다시는 도담이랑 만나지 마."
해솔을 남겨두고 정미가 문을 닫고 나갔다. 텅 빈집에 해솔 혼자 남겨졌다. (164쪽)
"우리가 왜 헤어져."
해솔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담은 체념한 듯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해솔은 싸늘하게 식은 그 표정에 겁이 났다.
(…)
"도망가지 마. 너도 책임이 있잖아.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
해솔이 아이처럼 울부짖었다. 해솔은 스스로 입을 다물어 버리고 싶었다. 도담을 붙잡으려고 상처 주고 죄책감을 자극하는 말을 꺼냈다. 그러나 도담은 흔들리지 않았다.
"잘 지내."
도담이 자리를 떠났다. 해솔은 붙잡을 수 없었다. 도담의 마지막 눈빛이 단호했다. 해솔은 서 있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도담은 돌아보지 않았다. (170~171쪽)
그렇게 두 번째 이별을 맞이하게 된 도담과 해솔. 시간이 흘러 스물네 살이 된 해솔은 소방서에서 의무 소방대원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고, 다양하고 처참한 현장 상황을 직접 맞닥뜨리며 험난한 군 생활을 이어갑니다.
해솔은 휴가를 나와 캠퍼스를 배회하던 중 도서관 앞에서 동기인 선화를 만나게 됩니다. 선화는 휴가를 나왔는데 왜 혼자냐고 물으며 같이 놀자고 말합니다.
"휴가 나와서 도서관 왔다고? 약속은?"
"없어."
해솔이 멋쩍게 웃었다. 선화가 이상한 애라는 듯 큰 눈으로 해솔을 바라봤다.
"술 마시자. 휴가 나왔으면 술 마셔야지!" (180쪽)
그렇게 해솔은 선화와 시간을 보낸 뒤, 함께 한강 공원 둔치에 앉아 있게 됩니다. 그 순간 묵직한 뭔가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크게 나는데요, 해솔은 수면에서 허우적거리는 허연 팔을 보자마자 사람을 구하러 물에 뛰어듭니다.
해솔은 선화가 붙잡기도 전에 순식간에 강물로 뛰어들었다.
"야, 미쳤어!"
선화가 비명을 질렀다. 해솔은 꽤 멀어 보이는 거리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180쪽)
해솔은 결국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게 되고, 선화는 이 일을 계기로 해솔을 사랑하게 됩니다. 둘은 머잖아 만남을 이어갑니다.
[3부]
3부로 접어들며 6년이란 세월이 흐릅니다. 해솔은 군대에서의 경험을 살려 소방관이 됩니다. 다만 선화와는 헤어지게 되었는데요. 구조대 일을 하며 자주 크게 다치는 해솔의 모습을 더는 보기 힘들었던 선화가 이별을 고한 것이었습니다.
도담은 물리치료사가 되어 재활 치료실에서 일하게 됩니다. 도담은 네 살 연상인 승주와 1년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승주는 도담과 같은 물리치료사로, 도담에겐 1년간 함께 일한 동료이자 선배입니다. 파혼해 본 경험이 있는 승주는 도담과 똑같이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냉소 클럽'을 만들어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연인 비슷한 사이가 됩니다
술잔을 내려놓으며 승주가 말했다.
"사랑이란 건 거대한 마케팅 같아요. 제가 보기엔 잘 포장된 욕망과 이기심인데. 자기들 멋대로 핑크빛으로, 하트 모양으로 정하고. 그게 장사가 되니까요. 사과 로고처럼."
"맞아요.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고 하는 타이타닉도 결국에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을 위해 대신 죽을 정도로 도취되었던 거 아닌가요? 그 둘이 살아남았으면 결국 레볼루셔너리 로드처럼 진절머리 나는 결혼 생활을 했을 걸요."
도담의 말에 승주는 공감하며 웃었다.
"이거, 우리 냉소 클럽이라도 만들어야겠는데요."
승주가 짠 하자는 듯 잔을 들어보였다. 도담이 잔을 부딪치며 웃었다.
"해요, 우리. 냉소 클럽."
(…)
그 이후 두 사람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연인 비슷한 사이가 되었다. 승주는 도담에게 잘했다. 그는 충족시키기 어려운 기대와 요구로 도담을 흔들지 않았다. 도담은 승주가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그런다는 것도, 자신을 꽤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199~200쪽)
다만 승주는 처음 했던 약속과 달리 좀 더 도담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는데요. 도담은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으므로 승주의 마음을 은근히 거절합니다.
그랬던 승주가 만난 지 1년 정도 되자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이렇게 쭉 서로 위해 주면서 사는 것도 좋지 않냐며 은근히 물어 왔다.
(…)
도담은 승주와 이대로 좋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만나는 게 나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지난 몇 년 간 마음이 잔잔하게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더는 마음이 시끄러운 게 싫었다. 결혼 같은 건 생각이 없다고 거절하면 승주도 태도를 바꾸고 다른 남자들처럼 떠나려나. 나는 그럼 가끔 승주와 커피를 마시는 전 애인이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왔다. (200쪽)
다만 도담은 승주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던 도중 식당 티브이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티브이 속 뉴스에선 안에 아이가 있다는 다급한 아이 엄마의 말에 치솟고 있는 불길을 뚫고 아이를 구해낸 소방관의 모습을 보도하고 있었는데요, 영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해솔이었습니다.
"이 소방관은 고온의 화염에 녹아 버린 헬멧과 장갑 부위에 화상을 입고 입원했습니다. 영상의 주인공은 해원 소방서 구조대 이해솔 소방교. 그에게 슈퍼맨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도담은 놀라서 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사기로 된 컵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도담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티브이를 바라봤다.
(…)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잊으려 애썼지만, 사실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이름이었다. 어디선가 수면을 요란하게 때리는 장대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202~203쪽)
우연히도 해솔은 도담이 일하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요, 심지어 도담이 해솔의 담당 물리치료사로 배정됩니다. 도담은 정말 자신이 아는 해솔인지 확인하고 싶어 병실 앞에서 서성입니다. 다만 해솔 앞에 서 있는 여자에게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해솔과 두 달 전 헤어졌던 전 애인 선화였습니다. 헤어졌음에도 뉴스를 보고 걱정이 돼 해솔을 보러 온 것이었습니다.
일주일 뒤, 도담은 해솔의 재활 치료를 위해 다시 그의 병실에 방문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회포를 풀며 과거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그러다 해솔은 도담에게 함께 진평에 가보자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들은 피하고 싶었던 12년 전의 트라우마를 직접 마주하려 합니다.
"잘 지내는 거지?"
해솔이 물었다.
"응."
"만나는 사람은 있어?"
도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얼마 전에 헤어졌어."
도담은 병실에서 본 여자가 떠올랐지만, 그 사람은 누구냐고, 자신이 병실까지 찾아갔던 사실을 밝히고 묻기 부담스러웠다. 도담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도 잘 지내는 거지?"
"응." (221~222쪽)
"여전히 물이 무서워?"
"모르겠어. 그냥 대학 때는 내내 겁에 질려 있던 것 같아. 다들 엠티 간다는 데 나 때문에 진평에 안 갔었잖아. 그땐 겨울이라 물놀이할 것도 아니었는데."
도담은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때도 둘이서 여행 한번 함께 가지 못했다. 해솔은 운전하게 되면 어디든 도담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그때 못했던 것들, 해 주고 싶었던 것들을 전부 함께하고 싶었다. 갑자기 해솔이 말했다.
"가자."
"어딜?"
"진평에. 가 보자."
도담을 바라보는 해솔의 표정이 진지했다. 12년이나 지났는데 말 못할 게 뭐 있냐고 말한 건 도담 자신이었다. 못 갈 게 뭐가 있어. 도담은 싫다고 하지 않았다. 피하기만 하던 진평과 마주하고 싶었다. (243~244쪽)
도담과 해솔은 직접 진평을 마주함으로써 과거에 멈춰 있었던 자신들을 용서하게 됩니다. 해솔은 도담에게 이제 우린 헤어져선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린 이제 다시는 헤어지면 안 돼."
해솔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도담은 해솔의 적극적인 모습에 놀랐다. 해솔이 자신과 비슷하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말할 줄 알았다. 도담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신이 없어. 우린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잖아. 다시 또 그렇게 되면……."
도담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해솔이 도담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봤다.
"한 번 깨진 관계는 다시 붙일 수 없다고 하는 건 비유일 뿐이야. 이렇게 생각해 봐. 우리는 깨진 게 아니라 조금 복잡하게 헝클어진 거야. 헝클어진 건 다시 풀 수 있어."
(…)
"지금 너는 행복이 두려운 거야."
해솔이 도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도담의 눈을 바라봤다.
"도담아, 슬픔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슬픔에도 중독될 수 있어. 슬픔이 행복보다 익숙해지고 행복이 낯설어질 수 있어. 우리 그러지 말자. 미리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걸 다 겪자." (254쪽)
그렇게 도담과 해솔은 결국 다시 만나게 되는데요. 해솔은 선화에게, 도담은 승주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결국 선화와 승주는 큰 상처를 입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 네가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인 줄만 알고. 넌 너밖에 모르는 아주 이기적인 인간이야."
높아진 선화의 목소리에 공원의 사람들이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흔히 보던 길에서 싸우는 연인의 모양새가 된 것 같아 창피했지만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선화가 울음을 터뜨렸다.
"방금 너는 우리가 보낸 시간을 모욕한 거고. 내 6년을 다 쓰레기통에 처박은 거야." (262~263쪽)
"사랑에 빠진 거야?"
도담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해솔에 대한 도담의 마음은 연애 감정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과는 달랐다. 오히려 할머니의 사랑과 비슷할 것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하는 사랑처럼 한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 이건 한때 끓고 식는 종류의 마음이 아니다.
(…)
"난 빠진 게 아니라 사랑하기로 내가 선택한 거야."
승주는 한동안 말문이 막힌 채 도담의 확고한 표정을 바라봤다. (288쪽)
[4부]
이야기는 4부를 마지막으로 끝납니다. 도담과 해솔은 창석의 추모를 위해 추모선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바다에 한 소녀가 빠지게 되고, 해솔과 도담은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들어 소녀를 구하러 갑니다.
도담이 애타게 해솔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파도에 가려졌던 서로의 얼굴이 드러났다. 해솔이 소녀와 함께 있는 도담을 발견했다. 두 사람 사이를 너울거리는 파도에 서로의 얼굴이 보이다 말다 하며 어른거렸다. 도담은 해솔에게 가까이 가닿고 싶었다. 그때 조류에 밀려나 두 사람이 멀어졌다. 둘은 물결을 가로질러 서로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해솔과 도담은 손을 뻗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298쪽, 이야기의 마지막)
3. 휩쓸리는 사랑
그들이 급류에 휩쓸리듯 사랑에 빠지고, 그것에서 나오려 애쓰는 동안 주변 많은 사람들은 큰 상처를 받습니다. 작중 승주는 '도덕이나 약속으로 어쩔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덮치는 일', '연인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그와 같은 일'을 두려워했는데요, 결국 도담과 해솔은 도덕과 약속, 혹은 주변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사랑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결국 『급류』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난관을 겪고도 결국엔 사랑을 성취하는 도담과 해솔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나누는 감정은 불처럼 타올랐다 쉽게 꺼지는 사랑이 아니라, 빠져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게 만드는 휩쓸리는 사랑입니다. 도담과 해솔은 함께하는 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독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거센 물살을 이겨내고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게 되네요.
읽는 내내 결국 도담과 해솔은 자신의 부모와 같은 길을 걷게 된 건 아닌지, 승주와 선화 모두 아무 죄 없이 큰 상처를 받게 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도담과 해솔의 이야기에 몰입해 읽게 된 것 같습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책이라고 하던데 전 재밌게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