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미래」 - 김연수 / 미래를 기억하라

"올 여름방학에 우리도 동반자살을 할 계획이거든요."

by 조창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단편소설



"이게 뭐죠? 당황스럽네. 줄거리가 꼭 미래를 예언하는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무슨 미래를 예언해?"



외삼촌이 물었다.



"올 여름방학에 우리도 동반자살을 할 계획이거든요."



나와 외삼촌은 동시에 지민을 쳐다봤다. (17쪽 中)






1. 줄거리


(" "는 모두 소설에서 따옴)



세 등장인물 '나', '나'의 미래 아내 '지민', '나'의 '외삼촌''미래를 상상'한다는 조금은 이상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소설의 배경인 1999년은 "사회 전반적으로 역술이나 점, 단학 따위가 판치는 모든 게 어수선했던" 시기이다. 노스트라다무스와 같은 예언가들의 한 마디가 세상을 뒤흔들던 시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기억되지만 사람들은 "예측 불허의 현실 속에서 다들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 때라 그런 비과학적인 말들에서 위안”을 찾은 것이다.




'나'는 1999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해 한 학기 내내 짝사랑하던 지민에게 고백했을 때, 지민은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고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지민은 유신 체제를 비판하는 그녀의 엄마를 정신병으로 몰아 자살에 이르게 한 아빠와 그 가족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따라서 지민은 1999년 여름, 자살을 계획하고 있었고 자신에게 고백한 '나'에게 동반자살을 권유하고 '나'는 이를 받아들인다.




'나'와 지민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출판사에서 일하는 '나'의 외삼촌을 찾아간다. 이유인즉, 소설가인 지민의 엄마가 쓴 '재와 먼지'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서점에서도 찾을 수 없던 '재와 먼지'를 구하고 싶어 "해방 뒤에 출간된 책을 다 읽지는 못했어도 한 번씩은 만져"본 경험이 있다는 외삼촌을 찾아간 것이다. 그 소설은 10월 유신으로 판금 되어 출간되자마자 서점에서 사라졌지만, 출판문화에 큰 관심이 있던 외삼촌은 천금을 들여서 '재와 먼지'를 구해 읽었다.




'재와 먼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동반자살을 했다가 미래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인생을 한 번 더 살아가게 된 연인이 등장했다. 그들은 시간을 계속 거슬러올라가면 자신들이 처음 만나는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 두 번째 삶에서는 거꾸로 그 만남을 향해 살아가면서 두 사람은 그 만남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을 먼저 경험한다. 둘은 미래,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과거를 적극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둘은 가장 좋은 게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에게는 희망이 생긴다. (…)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가장 좋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를. 그렇게 시간은 거꾸로 흘러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마지막 순간에 이르고 그들은 그 순간을 한 번 더 경험한다. (…) 이토록 놀랍고 설레며 기쁜 마음으로 우리는 만났던 것인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둘은 오랜 잠에서 번쩍 눈을 뜬 것처럼 서로를 바라본다. (…) 그리고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흐르고, 이제 세 번째 삶이 시작된다." (29 ~ 30쪽 中)




소설의 내용을 알게 된 '나'는 줄거리가 자신들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 같아 당황한다. 지민은 내용을 듣고 외삼촌에게 "올 여름방학에 우리도 동반자살을 할 계획"이라고 말하는데, 외삼촌은 당황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민 씨의 엄마가 쓴 소설은 연인이 세 번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끝납니다. 세 번째 삶은 첫 번째 삶과 같은 방향으로 시간이 흐르니까 그들은 다시 한번 살아가는 셈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두 번째 삶의 방식대로 살아간다는 것이죠. 즉 인식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어 이미 일어날 일들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만약 지민 씨와 준('나')이 앞으로 결혼하게 된다고 칩시다. 그 일을 원인으로 지금 이렇게 두 사람이 내 앞에 앉아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


"그게 아니라 엄마의 자살이라는 과거의 불행한 일로 두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또 어떻게 될까요?"


(…)


"앞으로 두 사람이 결혼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 함께 있다고 말하면 싱거운 얘기라며 웃고 말겠지만, 어린 시절에 엄마가 불행하게 죽은 일이 원인이 되어 두 사람이 이번 여름방학에 동반자살을 결심하게 됐다는 말에도 그럴 수 있을까요? 둘 다 생각일 뿐이지만 차이는 분명합니다." (28 ~ 29쪽 中)




외삼촌은 '재와 먼지'를 활용해 지민을 설득한다. 엄마의 '자살'이라는 과거의 불행한 일로 그들이 모인 시간선과, 그들이 모인 일이 미래의 '결혼'으로 향하는 원인이 되는 시간선의 차이는 크다. 외삼촌은 과거는 분명히 겪은 일이지만, 앞으로 우리가 결혼한다는 건 결국 가능성일 뿐 아니냐고 반문하는 지민에게 이렇게 말한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삼촌의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어찌 된 일인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날마다 만나며 서로를 안고 만졌다. 결국 동반자살을 생각했던 '나'와 지민은 결혼하게 된다.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나'의 독백으로 끝을 낸다.




1999년 여름, 1학기 종강 파티가 끝나고 지민이 내게 자신은 곧 죽을 사람이라고 말할 때만 해도 나 역시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다. 어릴 때 내가 상상한 미래는 지구 멸망이나 대지진, 변이 바이러스의 유행이나 제3차 세계대전 같은 끔찍한 것 아니면 우주여행과 자기부상열차, 인공지능 등의 낙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1999년에 내게는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미래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과 일어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34 ~ 35쪽 中)






2. 미래를 기억하라



고등학교 2학년의 나는 성적 슬럼프로 자존감이 바닥을 기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대유행까지 겹치며 집에만 박혀있던 나는 더욱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일처럼 느껴지지만, 그때는 쉽사리 오르지 않던 성적과 코로나 대유행의 영향으로 푹 쪄버린 살이 나를 괴롭혔다. 수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한 나로선 쉽사리 포기할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슬럼프를 무시한 채 우직하게 공부할 수 있는 정신력도 없었다.




나는 그래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공부에 할애하던 시간을 조금 줄여 영화를 본다던가,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 학업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우연히 오정세 배우의 남자 조연상 수상 소감을 본 적이 있는데, 크게 위로를 받아 일기장 귀퉁이에 일일이 적어 내려간 경험이 있다.




" (…) 어떤 작품은 성공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심하게 망하기도 하고, 또 어쩌다 이렇게 좋은 상까지 받은 작품도 있었는데요. 이 모두가 결과가 다르다는 건 좀 신기한 것 같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다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열심히 했거든요.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제가 잘해서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고, 제가 못해서 망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에는 참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 보면 세상은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꿋꿋이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실망하거나 지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그 일을 계속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하다 보면 평소에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들을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저한테는 동백이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곧 반드시 여러분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힘든데 세상에 못 알아준다고 생각할 때 속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곧 나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요. 여러분들에게 동백꽃이 곧 활짝 피기를 오정세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동백꽃 필 무렵' 남자 조연상 수상소감, 배우 오정세)




나는 수상소감을 듣고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의 나는 대학에 입학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 거라고, 나는 반드시 나만의 동백을 찾아 행복한 미래를 살아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오글거리지만, 나는 이러한 내용을 일기장 맨 뒷장에 '스무 살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종이에 적고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배우 오정세의 수상소감 덕분에 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고, 대학생이 되어 읽어본 쪽지엔 그렇게 대단한 미래가 적혀있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미래, 올곧게 달려간다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미래였다.




사실 미래를 상상하는 순간, 그건 상상이 아니라 '기억'이라 부를만하다. 우리는 괴로울 때 미래를 기억해야만 한다. 괴로운 순간에 떠올리는 미래는 거창한 것이 아닌, 그저 평범한 미래다.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 하는 것이 아닌 "기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누군가 괴로움에 빠져 있다면, 지금 미래를 기억해 평소와 똑같이 하다 보면 언젠가 그동안 받지 못했던 나만의 "동백"을 찾게 될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