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

영문학에서 배우는 사랑

by 조창

사랑의 정의는 국가별로 상이하다고 한다. 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정의 내리려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아직도 이 감정의 명확한 정의는 없다. 그럼에도 여러 작가들이 문학 작품 속에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이 무엇인지 탐구한 흔적을 살펴보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이 곧 작가이고, 그런 작가들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그건 충분히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문학의 주제를 한마디로 축약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에 귀착된다. 동서고금의 모든 작가들은 결국 이 한 가지 주제를 전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장영희, 2005)"라고 하듯이, 문학을 통해 사랑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래 문학 작품과 대목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 2005)에서 발췌





1. <어린왕자> - '길들임과 사랑'


어린왕자(1943)


"내게 넌 아직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아이에 불과해. 하지만 네가 날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지. 내겐 네가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만일 네가 날 길들인다면, 마치 태양이 떠오르듯 내 세상은 환해질 거야. 나는 다른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네 발자국 소리를 알게 될 거구. 저길 봐!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먹지 않으니까 밀밭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어. 그건 슬픈 일이지. 그러나 넌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까 네가 날 길들인다면 밀은 금빛이니까 너를 생각나게 할 거야. 그러면 난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사랑하게 되겠지. 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행복해질 거야."




'어린왕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시대를 넘어 전해지는 고전의 명작이다. 작품 속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나기 전, 자신의 별에서 한 송이의 장미를 갖고도 본인을 부자라고 생각했다. 다만 여행 중 우연히 아름다운 장미가 가득 피어 있는 정원을 보고 지금까지 단 하나의 장미를 갖고도 부자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초라해져 그만 풀밭에 엎드려 울고 만다.




여우는 길들이는 과정을 통해 같은 대상이라도 나에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같은 인형이라도 소중한 사람이 내게 직접 선물해 준 인형이 가지는 가치는 상당히 다른 것처럼, 어린왕자가 사랑했던 장미꽃 한 송이 또한 다른 무수한 장미에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저 대목 속, 여우의 말을 빌려 사랑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길들임'은 곧 '사랑'을 의미한다. 여우는 자신을 길들이게 된다면 금빛 밀만 봐도 어린왕자의 금빛 머리칼을 떠올릴 것이고, 심지어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마저 사랑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어린왕자 속 가장 유명한 구절인 '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또한 사랑은 그 대상을 기다리는 시간마저 사랑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사랑하게 되면 평소에 그저 지나쳤던 광경들이 특별해지곤 한다. 같이 봤던 거리, 그 거리 속 특이한 간판들과 네잎클로버 밭까지 전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아마 생텍쥐페리는 아이들에게 그 주변의 별거 아니게 보였던 것들까지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가 말해준 사랑을 생각하면 예나 지금이나 사랑에 대해 정의 내릴 순 없지만 그 본질은 언제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상처받고, 이겨내고, 다시 사랑을 한다. 어린왕자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지만, 역시 이 책은 사랑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어른이 읽어야 할 것 같다.





2.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사랑의 자격'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1929)


"우리는 어려운 것에 집착하여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어려운 것을 극복해야 자신의 고유함을 지닐 수 있습니다. 고독한 것은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아마도 내가 알기에 그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고 다른 모든 행위는 그 준비 과정에 불과합니다. 젊은이들은 모든 일에 초보자이기 때문에 아직 제대로 사랑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배워야 합니다. 모든 존재를 바쳐 외롭고 수줍고 두근대는 가슴으로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초기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합일, 조화가 아닙니다. 사랑은 우선 홀로 성숙해지고 나서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도 등장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독일 문학계의 거장으로, <말테의 수기>로 유명한 작가이다. 사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제목 그대로 릴케가 1903년부터 1908년까지 어느 시인 지망생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퍼낸 책으로 문학 작품은 아니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글이라 넣었다.




사랑은 가슴 뛰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릴케는 아니라고 한다.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들은 대부분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한 사랑의 이야기,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무수한 영화를 보며, 사랑을 노래한 시시한 수백 가지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라고 말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특권이며,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보편적 감정 중 하나인 것이고, 현대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사랑의 자격'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니 애초에, 사랑에 자격이 존재할까? 그저 누군가가 자연스레 좋아지면 그게 사랑이지 않을까. 하지만 릴케는 사랑하기 위해선 먼저 고독한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말한다.




왜인지, 현대 사회로 치달을수록 사람들은 편한 사랑만을 갈구하는 것 같다. 몇몇 사람들은 일회성 만남을 즐기며, 이성과 사랑보다 쾌락을 중요시하곤 한다. 다만 사랑이 없는 성행위는 한순간을 제외하고는, 두 인간 사이의 간격을 좁혀주지 못한다고 한다(에리히 프롬, 1976).




편한 길이 편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고독함과 외로움을 혼자서도 잘 이겨낼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3.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좌), 로버트 브라우닝(우)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그녀의 미소 때문에… 그녀의 모습… 그녀의

부드러운 말씨…… 그리고 내 맘에 꼭 들고

힘들 때 편안함을 주는 그녀의 생각 때문에

‘그녀를 사랑해’라고 말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나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해 변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렇게 얻은 사랑은 그렇게 잃을 수도 있는 법.

내 뺨에 흐르는 눈물

닦아 주고픈 연민 때문에 사랑하지도 말아 주세요.

당신의 위안 오래 받으면 눈물을 잊어버리고,

그러면 당신 사랑도 떠나갈 테죠.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사랑의 영원함으로 당신 사랑 오래오래 지니도록.




이 시는 영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연인으로 손꼽히는 로버트 브라우닝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이 나눈 연시는 두꺼운 책 두 권에 달한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브라우닝과 소위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며 사랑을 성취한다.




그녀는 조건 없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조건 없는 사랑'이란 뭘까?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즉 겉으로 보이는 '미소', '모습', '말씨'로 말미암은 사랑이 아닌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하는 것'을 뜻한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상대방의 결점마저 사랑할 수 있는 사랑 또한 결국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지인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결점 따위는 전혀 눈에 밟히지 않게 된다고, 오히려 그 결점을 안아주고 상대의 발전 가능성을 믿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상대방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




이런저런 조건에 급급한 사랑을 할 바엔,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너무 많은 걸 재고 따지는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





이렇게 문학 속 여러 사랑 이야기를 살펴봤다. 작가들의 사랑의 가치관은 서로 사뭇 다르지만, 모두 매력적인 이야기다. 최근 지인에게 사랑의 정의가 뭐냐고 물었더니, '사랑은 책임지는 것'이라는 멋진 답변을 받았다. 사랑은 결국 누구에게나 미묘하게 다른 의미를 지니지만, 오답은 없다. 이찬혁이 노래한 것처럼, 80억 인구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는 셈이다. 사랑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을 지니고 짧은 인생 사랑하며 살면, 죽을 때 후회는 없지 않을까.



이찬혁 - 멸종위기사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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